패션 독서, 헌팅 독서,라고?
변질된 독서 문화

서점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관계 맺기 방식

by 최물결

쇼츠를 넘기다 재밌는 영상을 봤다.

요즘 MZ 세대는 서점에 책은 안 읽고 번호를 따러 간다는데 ……. 영상의 내용들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일명 번호 따기의 성지라고 불리는 대형서점에서 번호를 따는 방법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었다.


미션 수행을 하듯 이성과의 만남을 위해 일부러 서점에 가다니! 옛날 사람인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재밌네’ ‘귀엽네’하며 흘러가듯 본 소셜 미디어 속 내용이 뉴스에 나오기 전까지는 심각성을 전혀 몰랐다.


영화에서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눈이 맞아 서로를 쳐다보는 장면은 오글거렸지만 나름 괜찮았는데.


지금 이삼십 대 친구들은 솔직하고 저돌적이다. 어떻게 서점에서 이성 번호를 딸 생각을 할까. 누군가는 번호를 따고, 다른 누군가는 퇴치하는 법,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영상으로 알리기도 했다.


어쨌든 너도나도 해보려는 심리로 ‘정말 되나?’라는 호기심에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이에 광화문 교보문고 매장 곳곳에는 “소중한 독서의 순간이 낯선 대화나 시선으로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내게 책을 보는 공간은 조용한 휴식처와 같다. 서점을 한 바퀴 돌면 신간 책부터 오래된 책들까지 내가 찾는 책들이 다 있어 왠지 신이 난다. 내가 보고 싶은 책들을 다 살 순 없지만 이곳에 다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부자가 된 것 같으니까.


책을 고르고 독서하는 곳의 본질적인 의미가 흐려지면 서점에 갈 이유가 없어질 것 같다. 그럴 거면 인터넷으로 시켜서 보면 되니까. 서점이 좋은 이유는 많은 책들을 만날 수 있는 데다 책을 보는 분위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서서 짬을 내 독서를 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비면 그냥 앉아서 주야장천 보는 사람도 있다.


서점이 번따의 성지가 되며 하나의 트렌드처럼 여기저기서 말을 걸다 보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있는 걸 알고서도 딴다든지. 문득 얼굴을 봤는데 정말 마음에 들어서 상대를 하나도 배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속 따라다니며 번호를 달라고 떼를 쓴다든지 하는 것이다.


하나만 걸려라라는 느낌으로 포켓몬 잡듯이 줄 때까지 하는 픽업아티스트 들도 있다.


서점 번따 말고, 패션 독서를 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자만추와 독서트렌트가 맞물려 서점이 헌팅 장소로 변한 것이라는데. 자만추를 꿈꾸면 도서관이 아니라 길거리나 운동하러 가야 되는 게 아닌가? 아, 그건 너무 의도적인 장소인가?


패션 독서를 하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패션 독서는 책을 진득하게 보기보다 책을 읽는 나,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기 위한 독서 성향을 뜻한다.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SNS에 책을 펼쳐두거나, 제목을 찍어 인증 사진을 찍는다. 책을 읽는 나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어서일까.


특이하거나 멋있는 책 제목을 골라 펼쳐 들고 포즈를 취한 내 모습에 심취한 것이다. 책을 읽고 사진과 나란히 소개하는 글을 올리는 것과 무늬만 책을 읽은 척하는 사람들은 차이가 난다. 책을 정말 사랑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재밌고, 즐겁게 독서하는 법을 통해 책을 읽게 할 수는 없을까.

이번 연도에 들어서 브런치에서 책 읽기 러닝처럼 인증하는 방법도 신선하고 재밌어 보였다. 모두가 할 수 있는 독서문화를 위해 여러 가지 방식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랜만에 서점에 갔다. 사람이 몇 배는 많아진 것 같다. 여러 권의 책들 사이에 보이는 몇 개의 시선을 눈으로 읽었다. 책장은 넘기지 못했지만 사람은 몇 페이지쯤 읽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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