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실수 앞에서 떠올린 나의 모습
“오 예 개이득” 안 그래도 옷 없는데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으로 반팔 티를 득템 했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친구들 단톡방에서 할인하는 생활용품, 먹거리 등 정보를 잘 공유해 주는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는 여름 티셔츠였다.
정말 싸게 잘 샀다는 생각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청나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름 있는 브랜드인 데다 면 티셔츠라 일할 때 입기 딱 좋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다음날 나는 취소 안내 문자를 받았다.
이유인즉슨 담당자가 공 하나를 빼먹어 가격이 대폭 내려간 것처럼 보였고 죄송하다 취소처 리 해 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지인들은 “담당자 경위서 쓰겠네” “실수 거하게 하셨구먼” “에이 기분 좋다 말았네” 등의 반응이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티를 못 사서 아쉬운 것보다 일 처리를 했던 담당자가 괜히 안쓰러워졌다. 뭐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아는 사람도 아니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동질감이랄까.
나는 한참 동안 스마트 스토어를 뒤적거렸다.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다. 떨이 상품처럼 헐값에 파는 줄 알았던 제품이라 결제했는데 직원의 실수라고. 고개 숙여 사과한다는 구구절절한 안내문을 본 적이 있었다.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실수하던 나와 얼핏 비슷해서였을까.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나는 에디터라는 직무를 맡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영상기획을 할 때도 출연자 섭외를 할 때도 보고서나 기획안을 서포터 할 때도 있었다. 또 때때로 택배를 옮기거나 싸기도 했으며 담당자를 컨텍하거나 영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A가 됐다가 B로도 변신했다가 C의 역할도 한 것이다.
스타트업은 다양한 직무를 자잘하게 익힐 수 있어서 좋으나 일이 우후죽순으로 많아지면 골치 아프다. 그날도 그랬다. 팀장님이 내게 스마트 스토어에 신제품을 오픈하는 일을 맡겼다. 신제품을 오픈하면 설정해야 하는 세팅 값은 물론 페이지가 잘 나오는지 결제는 잘 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목적을 잘 전달해야 한다. 우리는 오픈 기념으로 제품을 대폭 할인해 구매할 수 있게 하여 리뷰글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세팅값 하나를 잘못 만져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스마트 스토어는 처음인 데다 따로 가이드라인도 전에 담당했던 사람도 없어 문제상황을 빨리 보고했다.
결국 내 실수가 맞았지만 억울했다. 그럼에도 내 잘못이 맞았다. 가격 오류는 아니었으나 이벤트 메시지를 알려야 하는데 세팅을 잘못한 걸로 알고 있다.
팀장은 내가 허둥지둥 대자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동시에 모든 직원들이 다 보는 슬렉이란 곳에 대자보처럼 내 잘못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안 그래도 미안한데 창피하다 못해 대역 죄인인 나는 고개도 들지 못했다.
나는 왜 더 확인하지 않았을까. 한 번 더 보지 않았을까. 왜 물어보지 않았을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사람들은 신제품 론칭의 의도를 이벤트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되려 사람들이 자리로 찾아와 나를 위로하는 게 아닌가. 어찌 됐든 처음 하는 것이고 실수할 수도 있는데 그전에 팀장이 잘 봐야 했다며. 리더로서 버럭 화를 내는 모습이 어른스럽지 않았다며 나를 위로했다.. 그제야 팀장도 내게 언성 높이고 쏘아붙인 게 잘못인 걸 알았는지 사과했다. 나는 태연한 척했다. 울면 지는 것 같았으니까. 팀장한테 약하고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그날 실수 한걸 떠올리다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는 팀장이 미웠다기보다는 사람은 그렇게 중대한 일이면 왜 더블 체크를 하지 않았을까.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내 실수로 다른 사람들이 피해 본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었다.
버스에서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너는 혼자가 아니야. 혼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혼자였다.
가슴속에 고름처럼 뭉쳐있던 어떤 감정이 한 움큼 눈물로 떨어졌다.
참으려고 입술을 꾹 깨물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몇 날 며칠을 울었던 것 같다. 회사일은 힘들지 않냐며 걱정을 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내게 물가에 내려놓은 어린아이 같다고 말했었다.
엄마가 암 투병 중에 마지막 나누었던 말이 머릿속에 윙윙 모기소리처럼 맴돌았다. ‘회사는 안 힘들지?’ ‘괴롭히는 사람은 없고?’ 나는 쓴웃음을 삼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잘해준다고, 일하는 것도 편하고 재밌다고, 하얀 거짓말을 했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실수하기 싫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기 실어 더 아등바등거렸다. 일을 할 때는 물론이고 단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어깨와 표정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만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짝 긴장한 내게 나보다 열 살 어린 매니저가 말했다.
“물결님 방식대로 하세요. 뭐라 할 사람 없어요.”
“실수할까 봐 무서워요”
“실수는 누구나 해요.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우리는 종종 실수를 피해와 잘못으로만 나눈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그 단순한 구분은 흐려진다.
아마도 사람은 같은 자리에 서보지 않고는 완전히 알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실수를 겪고, 실수를 마주하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마트 스토어에 접속해 게시판에 글을 썼다.
ㅡ 담당자님 실수는 잘못한 게 맞지만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가격 정정 메시지 보내고 다시 올리면 되죠. 저도 세팅 값을 잘못 입력해 실수한 적이 있어요. 잘못은 맞지만 화는 내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