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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철저한 아나운서 실패기. 그러나

봄바람 가득한 4월 고층빌딩을 나왔다.

by 최물결

아아. 마이크 테스트. 내 이십 대 꿈은 아나운서였다. 글을 말로 빚는 사람이었다. 24살 때쯤이었나 언론홍보를 전공하며 대외활동을 했었는데 유독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재미났다. 그 당시 차기 기수를 뽑기 때문에 대학생들에게 홍보를 하기 위해 부스 안에서 직접 만든 포스터를 나눠주며 설명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나는 대외활동 취지와 장점들을 콕 집어 요약해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관심을 보였다. 뿌듯했다. 그렇게 아나운서라는 꿈이 마음속에서 움트고 있었다. 또 내가 직접 쓴 원고를 큰 소리로 소리 내서 읽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아 나도 무대에 서서 시원하게 말하고 싶다'라고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아나운서 준비, 언론고시를 시작했다.

아나운서 준비는 현실의 나와 싸워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냥 단순히 말만 잘한다고 하면 오산이었다. 왜냐하면 카메라 앞에서의 표정, 제스처, 자세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끊임없이 나 자신을 닦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더 이상 봐줄 게 없어 무슨 말인지 알지?


친구들에게 말하니 그거 좋은 말 아니야?라고 묻는 지인들도 있었지만 내게 썩 달가운 대답은 아니었다. 학원 수업 중에 한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봐줄 게 없다고, 발음, 발성은 다 되어 있어서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말은 그다지 좋은 말이 아니었다.

"음... 라라 너 어렸을 때 꽤 예쁘다 소리 들었을 거야"

왜 갑자기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할까. 어릴 때 이야기에 내 마음이 쿡 가시가 돋는 것 같았다. 그럼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리딩은 연습하면 잘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미지를 바꾸는 건 시간이 걸리는 문제였다. 언론, 방송 쪽을 준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미지, 작은 경력들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한 번은 카메라를 대여해주는 스터디룸에서 아나운서 실기 스터디를 한 적이 있었다. 스터디 인원들 중 한 오빠가 내게 살 좀 빼야 될 것 같다, 해줄 말이 정말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또 한 명은 '언니 성격 너무 사차원이에요. 두서가 없어요.'라고 뼈 때리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주변에서 비글 같은 성격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반 분위기, 사내 분위기를 바꾸려고 재밌는 농담을 던진다던지 언어유희를 써 얼어있는 상대방에게 말을 잘 건네는 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겐 그게 두서없어 보일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힘이 훅 빠졌다. 당시엔 쿨하게 넘겼지만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객관적으로 내가 살이 많이 쪘나? 하고. 앞 뒤, 옆면을 보며 내 모습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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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 서려면 나를 좀 더 가꿔야 하는 건가”

그때 깨달았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은 단단한 강철 멘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결론적으로 나는 객관적 나 만들기에 실패했다. 카메라 앞에 서려면 지금보다 10kg은 더 빼야 한단다. 그런데 나는 선천적으로 볼에 살이 많았다. 살을 빼면 다리, 복부 순으로 아래에서 위로 빠지는 체질인데. 볼살을 숫자로 환산했을 경우 10kg이나 뺀다고 해도 내게는 2-3 정도 빠진 것처럼 보였으니까.

게다가 먹는 건 어찌나 좋아하는지, 사실 나는 축복받은 체형이다 남들이 피자 한 조각을 먹을 때 나는 한판까지 먹는다. 1을 먹을 때 10을 먹고도 이 정도 찌는 거면 대단하다고 주변에서 늘 찬사를 받아왔었다. 그런데 10kg은 족히 빼라니. 만약 10kg을 뺀다 해도 볼살이 완전히 빠진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아나운서 준비를 하며 학원 추천을 통해 겨우 방송에 투입되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바로 투입되지는 못했다. 여전히 내 표정과 외모에 대해 몇 가지 보완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트라이얼 (Trial) 정식이 아니라 나는 체험판 대기자에 가까웠다. 또한 내 마음도 그랬다. 그때의 나 자신이 외적으로 완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과연 내가 이곳에 발을 담그게 되면 행복할까? 엄밀히 말해 내 마음을 정하는 Trial 기간이기도 했다.

아나운서 준비과정에서 실패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동안 나는 나 스스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넘어서서 살짝 자만의 궤도 언저리에 있었던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계기가 돼주었다.

사실 아나운서들은 참 대단하다. 나는 현직에 있는 아나운서들을 존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일을 끝끝내 이뤄냈으니까. 내가 아나운서 준비를 할 때만 해도 다이어트를 하고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아직도 그런 친구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비슷하게 준비해 오던 동생은 결국 학원 두 세 군대를 더 다니고 작은 경력들을 발판 삼아 지금 지방 모 방송국의 앵커를 하고 있다. 결국 꿈을 이뤄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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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고 과감히 포기한 것에 대해


누군가는 열심히 준비했는데, 준비한 과정이 아깝지 않냐고 묻는다. 심지어 면접을 볼 때도 이 말을 듣는다. 어떤 곳에서는 지방에서라도 다시 시작해보지 라며 나를 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이 좋다. 아나운서를 했을 때 나는 한 없이 작아졌고 세상에서 제일 낮은 존재가 되었으니까. 사람마다 기준점이 있지만 준비를 하면서 내 모습을 잃는 것 같아 힘들었다. 특히 목소리보다 외모, 평가의 잣대 속에서 눈치 보고 있는 나를 마주하며 내 존재를 잃어갔기 때문에.

그리고 그해 봄 과감히 꿈을 접었다. 생각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 언어로 말하고 싶은 사람이다. 열심히 했었고, 나 자신을 들여다 보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한 것뿐이었다. 그뿐이었다. 그냥 난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닐 수 있고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이 모습이 좋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왜 실패에 대한 책은 없는 것일까? 성공은 완벽하다고만 생각하는데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실패 속에서 얻은 것들도 성공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주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중에 내 철저한 실패담을 글로 써 내려가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봄햇살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방송에 투입되려면 3개월의 수습을 거쳐야 하는데 나는 그 제안을 뿌리치고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낮 고층 건물을 빠져나오며 한적한 거리를 걸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에 맞춰 내가 여의도 공원을 걷고 있었다. 봄햇살이 투명하게 내 몸에 다가와 네 선택이 옳았다고 안아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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