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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쥐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거야

사람들은 콩쥐를 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by 최물결

방송국에 다니던 시절 매번 PD에게 혼나는 조연출을 보며 사람들이 말했다.

"쟤는 착해 빠져 가지고는 콩쥐 같다"

결국 그 PD님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연출을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삼 학년 때 속독 자격증을 따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지문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문제를 푼 적이 있었다. 지문 속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많이 접했던 콩쥐팥쥐였다. 뻔히 아는 이야기가 나와 반갑기도 해서 원래 이야기에 내 생각을 녹여서 쓸까 하고 한 10초가량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자꾸 팥쥐 이름에 눈이 갔다. 팥쥐는 왜 콩쥐를 못살게 굴었지?라는 생각에서 물꼬가 터졌다. 나는 팥쥐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없던 동생이 떡 하니 생겼지 않는가. 나 같아도 화 날 거 같다. 또 책을 보다 보면 콩쥐는 예쁘고 팥쥐는 못생겼다고 기록돼있다. 지금에야 옛이야기나 동화를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린이책으로 콩쥐팥쥐 이야기가 만들어지며 외모나 성격에 대한 주관적 평가나 묘사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또 콩쥐가 착하고 예쁘다는 사실은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도 당연하게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으니까 말이다. 착한 콩쥐는 외모가 예쁘고 팥쥐는 나쁘니까 못생겼겠다 라고 생각을 구분 짓게 하는 내용들. 그 내용들을 예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아 성격이 좋은 거야.라고 나름의 해석을 하기도 했다.




나는 원고지와 지문을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이건 콩쥐 입장의 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좀 더 넓혀보기로 했다. 잠시 후 콩쥐팥쥐에 대한 내 생각을 원고지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제목은 팥쥐에게도 사정이 있었을 거야다. 모두가 콩쥐만 불쌍하다고 말하는데 팥쥐도 원래부터 나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콩쥐팥쥐에 내용을 좀 더 생각하며 콩쥐에 대한 반문을 던졌다. 초등학교 3학년 치고는 모범적인 답안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독서논술 대회에서 그 반문에 대한 내용을 신선하게 보았는지 협회에서는 내게 장려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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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어쩌면 콩쥐보다 어쩔 수 없이 악역이 될 수밖에 없는 팥쥐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방송국 PD님은 차갑게 생겼지만 세븐틴을 좋아했고, 달달한 아이스크림과 분홍색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소녀감성을 지녔었다. 그리고 방송국을 오래 근무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PD님의 부사수 콩쥐 조연출은 일을 할 때 항상 실수가 잦았다고 한다. 생방송이라는 특성상 작은 실수를 하는 건 허용되지 않았고, 그 내용을 매번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자 PD님께서 화를 내게 됐단다. 한 번은 실수한 대본을 분쇄기에 넣어 갈았는데 출연진들에게 줘야 할 출연비 정산서까지 갈아버려서 더 크게 혼났다고 한다. 또 마침 그 모습을 사람들이 본 것이다. 졸지에 PD님은 악덕한 팥쥐가 되어있었다. 아무 말 없이 당하고 있는 조연출은 콩쥐가 되어 있었다. 내 제목에 팥쥐에게도 사정이 있었겠지 처럼. 두 사람은 본인들만 모르는 콩쥐 팥쥐가 되어 있었다.

콩쥐 조연출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PD님이 너무 무서워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실수할 때마다 오타가 있는 대본을 분쇄기에 갈았다가 본인도 모르게 출연진의 출연료 정산서가 있는 줄 몰랐단다. 너무나도 다른 두 명의 입장 차이. 나는 두 사람다 이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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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아니 어쩌면 요즘 시대는 못된 사람들이 더 잘 사는 세상이다. 나 또한 예스 걸에 다가 거절을 잘 못해서 정말 호불호 확실하고 똑 부러진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물러 터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모두의 외모와 성향, 성격이 다르듯이 그들만의 사정 즉 히스토리가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다. 팥쥐든 콩쥐든 내가 어떤 모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이야기, 사정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브런치 글을 보다 보면 신입 직장인의 슬기로운 회사 생활부터 신입을 거치고 주니어, 시니어가 되어 높은 직급에 오르고 보니 알게 된 단상들에 대한 글들이 참 많다. 나 또한 지금까지 회사생활들을 되돌아보면 안주거리만큼의 소재들이 참 많다. 그들에게 난 팥쥐였을까. 콩쥐였을까. 하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그냥 나로서 살 때 가장 아름다우니까. 눈치 보지 말자. 당하고 살지 말자.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위해 지나친 희생을 하지 말자. 어깨에 힘을 풀자. 모든 사람은 콩쥐도 아니고 팥쥐도 아니다. 그냥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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