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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사라지면 안 되는 것들

by 최물결

오랜만에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 읽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마음 공장을 세웠나,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이 일을 하면 조금 더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어? 왜 안되지? 한 가지를 끌고 나가지 못할 때마다 나는 항상 방향을 틀었었다. 똑같이 시작한 것 같은데 옆 사람은 나보다 더 잘 된다고 느낄 때도 그랬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피아노를 남들보다 잘 칠 수 있었던 건, 잘하는걸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됐었다. 당시 내 부러움을 샀던 친구의 이름은 예진이었다. 예진이는 예뻤고 인기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 친구의 방에는 우리 집에는 없었던 최신 게임기, 장난감 등이 가득했다. 늘 부러운 마음이 자리한 마음은 예진이를 이기고 싶은 마음으로 변했다. 뭐든 예진이 보다 나아지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같은 학원에 다녔고, 예진이가 치는 피아노 진도보다 더 나가기 위해 선생님을 졸라 진도를 더 빼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내 첫 경쟁은 어쩌면 유치원 시절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시작됐었는지도 모른다. 이걸 선의의 경쟁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시절 누군가에게 칭찬과 주목을 갈구하던 나는 예진이 때문에 에너지를 얻어 뭐든 열심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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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 대학교 삼 학년 때 대외활동을 하며 발표하고 설명하는 게 그저 좋았다. 정확히는 내 목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목소리 좋은데, 말 잘한다고 반응해 준 게 좋았을 것이다. 그 후로 언론고시를 준비하겠다며 무작정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등록을 했다. 아나운서의 길을 가기 위해 3-4년을 크게 방황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절실하지 않았다. 뭔가를 하는 데 있어 중심을 잡고 진득하게 했어야 했는데, 하루가 지날수록 내 모습은 겉멋만 잔뜩 낀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 방송사의 시험을 칠 때면 올림머리를 해야 해, 이곳은 보수적이어서 무채색 옷을 입어야 돼. 살은 최대한 많이 빼야 해. 더, 더, 더 이미지를 만들려면 살부터 빼 선생님이나 스터디원의 목소리가 내 귓가 주변을 웅웅 겉도는 것만 같았다. '조명이 들어가니까 화장은 좀 더 진하게, 네게 갈색은 눈을 부어 보이게 하는 것 같아' 아니 아니 사실 그건 내 모습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직업이 너무 하고 싶었으니 준비했다. 그저 거저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다른 것을 권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경쟁력이 있으려면 영어점수가 좋아야 해. 영어 중국어 아나운서도 있잖니, 이참에 그런 거 준비하면 어때? 또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들을 조금씩 직면해 갔다. 그러다 보니 자꾸 바깥에 존재하는 친구들과 나를 포개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계속 준비생을 몇 년 동안 하다 보니 내 타이틀은 장수지 망생이 됐고, 나이는 차갔다. 플랜비를 준비해야 했다. 자신이 없었다. 3년 차가 되니 밥벌이로 뭘 해야 되는지 정말로 걱정이 됐다. 내 전공은 신문방송이고 할 줄 아는 건 글을 쓰고 말하는 것 밖에 없는데 할 수 있을까부터.

함께 스터디를 했던 친구 중 절반 이상이 크고 작은 방송국에 입사해 아나운서, 기자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도 아니면 승무원이나 대기업 은행원으로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방황하며 하루 종일 한강 주변을 거닌 적도 있었다. 마치 시험시간은 남아있는데 모두 다 빨리 풀고 가버려서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은 느낌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는 나를 정면으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매일 A B C D 누군가와 비교하는 삶을 살았다. 즉, 나는 나이지 못한 쟤처럼 해야지 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 애 정도는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나는 나로 불릴 때 아름답다는 걸 왜 몰랐을까. 무작정 살을 빼고 예뻐지면 될 줄 알았다. 그게 아니면 나만의 경쟁력 있는 뭔가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나로 못살아서, 그래서 수많은 날들을 흘려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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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가 내게 말했다. 나는 그날 나보다 잘 된 어떤 이를 보며 화가 나 있었다. '이 사람이 이렇게나 됐는데 나는 그러지 못해서 속상해 화가 나'. 나는 내 감정을 남자 친구에게 말했다. 남자 친구의 대답은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너는 너야'였다. 언젠가 꿈에서 기형도 시인을 만난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정말 질투가 힘이 됐는지. 나는 남을 질투하며 열정보다는 욕심을 얻었다. 그저 몸부림으로 지나지 않았던 지난 언론고시의 준비과정 속에서 내가 진짜로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언론고시에 실패했다고, 삶이 끊어지는 건 아니었다. 지금 나는 글을 쓴다. 다행히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다는 타이틀로 작은 방송국에 해설작가 겸 녹음하는 일을 하기도 했으니까. 이제 나는 끊임없이 타인이 아닌 나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차오르는 열등감이 아직은 있어 남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당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중심축은 나다. 예전 나를 움직이게 했던 것이 팔 할이 욕심이었다면 지금은 나를 중심으로 모든 일들을 돌아가도록 하려고 한다. 아니 그러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면 살고 있다. 모든 일들 앞에서 우리 눈치 보지 말자. 지금 이 삶을 살고 있는 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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