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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회사에서 표정관리가 쉬워졌다

코로나는 슬프지만 표정관리는 하기 쉬워졌어

by 최물결

회사 동료와 점심을 기다리다 '코로나' '마스크'에 대한 말이 오갔다. 요즘 나오는 KF94 마스크는 너무 두툼해서 갑갑해. 내가 숨을 들이마시는 격이지 뭐야, 이산화탄소를 너무 들이마시니 머리가 띵해. 차라리 비말 마스크를 쓰는 게 낫겠어. 순댓국이 나오는 동안 K과장님과 마스크로 인해 달라진 일상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것은 마스크 규제, 거리두기, 온도 재기, 손 소독뿐만이 아니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여자들의 화장법도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다. 설핏 유튜브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일명 얼굴 위쪽만 화장하기 스킬이라고 한단다. 얼굴 전체에는 선크림 정도로 가볍게 바르고 오히려 오픈된 눈 화장(아이 메이크업)을 강조하는 것이다. 시선이 아래로 갈 일은 없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입술은 바를 필요가 없다. 마스크를 써야 하니 인중 아래부터는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이 화장법은 존재했다. 일명 코로나 화장법. 실제로 잘 보일 사람들이 없는 작은 회사나 여자들끼리 모여있는 회사에서는 그렇게 하고 다닌다며 K과장님은 나보고 자국 남지 않게 반만 하라는 웃픈 농담을 던지셨다. 반은 진담이셨을 것이리라. 밥 먹기 전 상위에는 코로나로 인한 숱한 상황들로 하여금 깔깔깔 웃음이 깨소금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언택트 시대라도 나는 화장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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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코로나 화장법"

코로나 화장법도 웃기지만 코로나가 시작돼서 막 마스크 사재기를 했을 무렵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마스크를 쓰니 복면가왕이라도 된 것 마냥 편해진 것들이 분명 있다고. 사실이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마스크 속에 숨어 버린 내 표정이었다. 나는 활짝 웃지 않는 이상 '화나 있는 것 같다''뚱해 있는 것 같다'라는 소리를 듣는 편이다. 실제로 옛날에 남자 친구를 사귈 때도 본인을 보는 표정이 똥 씹는 표정 같다고 했나라는 시답지 않은 이유로 헤어짐을 통보받기도 했다. 사실 표정에 문제가 많다고 하지만 그만큼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 얼굴이기도 했다. 사실 나는 좋으면 넋 나간 사람처럼 까르르 웃고, 하기 싫으면 바로 정색하는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네 할게요라고 말은 하지만 표정은 탐탁지 않아하는, 그러면 상대방이 먼저 내 표정을 읽고서 제안했던 요구사항들을 다시 거두는 일들이 빈번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코로나라고 해서 마스크에 가려진 피부가 답답하다고만 할 노릇은 아니었다. 나는 표정 가리기에 능수능란한 마스크가 편했기 때문에. 또 실제로 코로나 때문에 청년실업이 넘쳐흐르고 일자리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를 빈번하게 접했는데 나 같은 경우는 달랐다. 코로나가 터진 후에 오픈한 학원에서 학원 데스크 일자리 제의가 들어왔고 마스크를 쓴 채 면접을 보고 일자리를 단박에 얻은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또 그 해 정규직 제품 브랜드 에디터로 면접을 보고 합격해 공백기 없이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다. 뭔가 일의 진행상황이나 업무 내용을 지시받을 때 표정을 드러낼 수 없으니,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너무 과하지 않은 표정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나도 그러했듯이 당신의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바야흐로 눈으로 대화하는 시대다. 나는 눈 맞춤을 좋아한다. 얼굴 부위 중 다른 데는 몰라도 눈에는 자신 있기 때문이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확신에 차 있는 눈, 흐리딩딩 밍밍한 눈, 귀찮은 눈, 졸린 눈. 눈의 생김새가 아니라 분위기가 천태만상이다. 마스크 덕에 얼굴 전체는 볼 수 없지만 내가 상대에게 눈짓을 보내면 상대방도 내게 시그널처럼 말을 하며 눈으로 전달이 됐다. 그러나 마스크 속 이면에 담긴 진짜 표정은 아무도 모르는 법, 다른 사람이 표정관리 안 되는 내 속내를 모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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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이 아닌 복면 마스크 시대"

11월 13일부터 지하철 내에서 마스크를 안 한 사람들은 벌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을 여러 가지 매체들을 통해 접했다. 실제로 코로나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내가 느끼는 확실한 것은 불편함 속에서 느끼는 '사회적인 편안함'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정말 싫은 상사 앞에서 썩은 표정을 짓는 나 같은 사람도 하하호호 아 그렇구나 예예 하는 뉘앙스를 풍겨 낼 수 있다는 것. 몇 년 전부터 시작해 아직도 길게 유지를 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복면가왕'이 생각난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출연진들은 모델, 개그맨, 연기자를 막론하고 가면 속에서 올곧이 목소리 하나로 무대를 평정한다. 완전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지는 않지만 엇비슷한 맥락이랄까? 불편하지만 사회적 관계의 '진짜 불편함'을 숨길 수 있는 도구가 돼버린 마스크. 그나저나 코로나 19는 언제 끝날까? 나는 그때까지 다시 사회성을 장착해 표정관리가 잘 될까? 표정관리 연습이나 해야겠다. 지금 막 거울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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