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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를 나는 새 Apr 17. 2016

탈탈 털어보일 누군가

이 월요일 같은 금요일은, 아침부터 건조하고, 불편하고, 시끄럽게, 속을 마구 긁어댄다.

집 나서기 직전, 책장에 꽂혀 있던 어느 민트색 표지에 눈이 간 것도 

실은 그것이 내 공간의 몇 안되는 초록이기 때문이다. 

문득 펼쳐보니, 예전에 내가 발견했던 곳과 또 같은 곳에 와있다.


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좋을 한 사람쯤 있어야 한다. 그 한 사람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은 살면서 만나지기도 한다. 믿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

삶은 일방통행이어선 안 된다. 루벤 곤잘레스처럼 우리는 세상을 떠날때만 일방통행이어야 한다. 살아온 분량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그걸 탈탈 털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야 한다. 듣건 듣지 못하건 무슨말인지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다 털어놓을 한 사람. 

-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에게는 버틸 수 없는 것들까지 버티게 하는, 그런 것들이 때때로 필요하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꽤 하다보니,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에 소위 말하는 전략이란 것을 가지고 대하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가까이 하는 것에도, 잘 해주는 것에도, 또 누군가를 멀리하는 것에도 복잡한 잇속이 도사리고 있다. 겉으로 부드럽고 예의 바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 나쁜 인간들이 꽤 많이 숨어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사람들은 힘을 가지려고, 또는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려고, 자신의 장점을 부풀리거나 거짓말을 한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쓸모를 각인시켜 자신이 상대의 시간과 관심을 투자할만한 존재로 여겨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게임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하고, 창피를 당하거나, 배신을 당해도, 잃은 것은 돈이거나 지위인 것이 된다. 사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돈과 지위는 참 질투가 많은지, 자신 이외의 다른 것에 더 가치를 두는 자들에게는 결코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단다.


그래도 그런 것들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것들의 특징은, 조금 살아보면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같고, 더 오래 살아보면 그것만큼 덜 중요한 것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아니 덜 중요할 뿐 아니라 가장 허무하다. 특히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그렇다. 


아, 나는 그들이 없었다면 어찌 버텼을까.


한 친한 지인으로부터 받은 생일카드를 읽다 마음이 다시 털썩 내려앉는다.

- 그 동안 서로 도움 주고받을 수 있어 좋았고, 앞으로도 '빡침'을 공유하는 좋은 사이로 남자고.

무심한듯 툭 던지는 그녀의 말이 오디오로 들리는 듯하다. 지저분하게 앓고 있는 경쟁 사회의 피고름을 그렇게 빨아 뱉으며, 나름 강한 척 당당한 척 이겨내보겠다는 무언의 다짐으로 결론을 내리곤 하는, 

그런 사이. 친한 사이. 

아, 나는 그들이 없었다면 어찌 버텼을까. 


어차피 다시 지워질 짐이라도 그렇게 한번씩 털어내어버려야 다시 짐을 질 힘이 생기는 것이다. 

인생에서 불안할 것은 그런 이들을 잃는 것이고, 바라는 것도 그런 이들을 많이 얻는 것일 테다.


그리고 궁극의 어느 한 사람. 

다들 이 때문에 젊은 나이부터 인생을 걸고 위험도 감수한다.

아마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지나면서는 자기가 그랬었다는 것을 다들 잊어버리는 듯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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