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 눈물 나는 본토의 맛
비즈 드레스를 입고 하객의 팔짱을 낀 채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친구는 멀리서 봐도 아름다웠다. 신부 대기실은 완전히 열려 있는 구조였다. 실내였지만 생화와 식물이 가득해서 정원같은 느낌을 주었다. 펜트하우스 층이라 넓은 창 밖으로 멀리까지 탁 트여 보였다. 나도 저런 비즈 드레스를 골랐었다. 작은 비즈가 피부와 드레스의 직물 사이의 경계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디자인. 벌써 그날이 3년이 넘게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친구에게 다가가기 전에 가슴께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다행히 아직 깔끔했다. 나오기 직전에 수유를 하고는 수유 패드를 단단히 붙이고 나왔다. 그래도 두 시간 이내로는 돌아가야 안전할 것 같았다. 나는 가디건을 한 번 더 여미고는 친구를 향해 걸었다. 기분인지 정말 그런 건지 걸을 때마다 골반과 무릎이 조금 삐걱이는 느낌이 들었다.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고 있어서 이렇게 바깥 땅을 밟으면 약간 갓 태어난 새가 알을 깨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금세 얼굴에 함박웃음이 켜졌다. 신부가 이렇게 이 다 보이게 웃어도 되는 건가. 나도 절로 웃음이 났다.
“정말 안 와도 된다니까. 무리하지 말라니까.”
진심이었다. 나의 친구는 인사치레 같은 걸 잘 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따뜻할 뿐이다.
“누구 결혼식인데. 와야지. 이제 어디 다닐 만 해.”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섞었다.
“고마워. 진짜 고마워.”
“그리고 오늘 정말 예쁘다.”
친구는 나를 바짝 끌어당겨 앉혔다. 우리는 같이 렌즈를 응시했다. 셔터 소리가 들렸다.
축가를 들으면서 자리를 떴다. 가슴이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어 불안했다. 친구의 좋은 날 혹여나 모유로 옷이 젖은 흉한 모습으로 이목을 끌고 싶진 않았다. 2부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나는 가디건 양쪽을 단단히 끌어 모아 잡고는 식장을 떠났다.
햇빛이 따사로웠다. 지도 앱을 실행해서 중앙차로의 버스 정류장을 확인하고 걷기 시작했다. 거리가 꽤 있었다.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파란 버스를 타고 혼자 앉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주말인데도 운 좋게 가장 좋아하는 자리가 났다. 버스를 타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핸드폰을 꺼냈다. 남편이 보낸 아기 사진들이 와 있었다. 분유를 잘 먹고 방금 잠에 들었다고 했다. 자는 모습이 천사처럼 예뻤다. 내가 도착할 때 즈음이면 분명히 깨어 있을 예정이었다. 남편이 좀 쉴 수 있는 건 다행이었다. 중요한 미팅이 있다고 하더니만 이번 주에 유난히 스트레스 받아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도, 나도 정말 오랜만에 혼자 시간을 보냈다. 출산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까지 출근을 했다. 이후부터는 초보 엄마로서의 삶이었다. 임신 기간보다 수유가 더 힘들었다. 피곤해서 수유든 유축이든 좀 늦어지면 가슴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해보기로 했다. 아직 좀 남은 백일을 모유 수유를 마무리하는 마음의 기점으로 잡았다. 한편으로는 너무 짧은 것은 아닐까, 죄책감이 들었다.
토요일이어도 이 방향으로 가는 버스는 크게 붐비지 않았다.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댔다. 햇살이 눈두덩이에 닿았다. 버스의 진동이 몸에 전달됐다.
지금이면 친구는 사진을 다 찍고, 2부를 준비할 즈음이었다. 단체사진 속에 같이 남지 못해 미안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등을 기댔다. 창 밖으로는 늘어선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내 뒤로 달리고 있었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우리는 화상 채팅으로 청첩장 모임 중이었다. 아기는 밤잠에 들었다. 사실 재웠다고 생각했는데 깨는 바람에 잠시 미뤘다 다시 노트북을 연 참이었다.
“어딘지 맞혀봐. 너랑도 상관있다?”
나랑 관계있는 나라. 몇 군데 떠올랐지만 도저히 그중 특별히 어디로 좁혀지지 않았다.
“힌트 줄까? 자허토르테, 오케스트라.”
“빈, 오스트리아? 우와!”
나는 문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소리를 질렀다. 친구는 모니터 너머에서 깔깔 웃었다.
“응, 빈이랑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너무 예쁘다길래. 빈에서는 오케스트라 공연 벌써 예약 다해놨어. 신혼여행이니까 좋은 자리로.”
친구가 핸드폰을 보더니 예약 조회 화면을 찾아서 보여주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 그때 자허토르테 엄청나게 먹었던 거 기억하지?”
나는 그 옛날을 회상하는 사람처럼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시늉은 아니었다. 자허토르테를 찾아다닌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대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만났다. 친구는 첼로, 나는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공연 대열에서 옆자리에 배정받아 연습하다가 친해졌다.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이 있다. 단 몇 분만 대화해 보아도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 편안한 사람이라는 감이 바로 오는 사람.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를 알아보았다.
성격이나 관심사가 비슷해서 자연히 친해질 기회도 더 많았다. 연습이 있으면 우리는 20분 즈음 빨리 도착해 준비하는 부류였다. 폐 끼치기 싫어 이것저것 신경 쓰는 일이 많다 보니 다소 예민한 구석도 있었다. 어쩌다 서로의 뾰족함을 발견해도 우리는 스스로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우정은 귀중했다.
다만 다소 예민하면서도 대단히 마른 편은 아니었는데, 빵과 디저트에 조예가 깊은 탓이었다. 우리는 맛있는 디저트가 있다고 하면 편도 두 시간 거리의 베이커리까지도 기차를 타고 가 본 경험이 있었다. 때로는 택배 배송이 되는 제주도의 쑥빵이라던지, 강릉의 딸기크림빵이라던지, 경주의 휘낭시에라던지, 해남의 고구마빵이라던지 등등을 경쟁적으로 시켜본 다음 나눠 먹고, 내가 주문한 게 더 맛있지 않냐며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였다. 그런 우리가, 그중에서도 집중적으로 꽂힌 디저트가 있었다.
“근데 본토 맛으로 먹어 보고 싶다. 너무 궁금한데?”
강의실을 나서면서 친구가 먼저 말했다. 같이 교양 수업으로 신청한 ‘유럽 문화와 예술’ 수업이었다. 대강의실에서 진행해서 수백 명이 같이 듣다 보니 나가는 문이 혼잡했다. 친구가 나가던 사람의 배낭에 손을 살짝 부딪혀 프린트한 강의 자료를 떨어뜨렸다. 내가 재빨리 줍고는 첫 장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말하는 거지? 나도 똑같은 생각했어.”
컬러 프린트 된 강의 자료에는 진한 초콜릿 케이크 사이에 두껍지 않게 적당히 발린 살구잼, 케이크 표면에서 빛나는 다크 초콜릿 글레이즈가 먹음직스럽게도 인쇄되어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디저트, 자허토르테.
그때부터는 집요한 검색이 시작됐다.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부터 공략했다. 아쉽게도 맛은 있었지만 진한 초콜릿 케이크 이상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2호선 순환 노선의 절반 정도를 지나 소문난 베이커리에도 가봤다. 오스트리아 베이커리에서 직접 배워 자허토르테를 만들기로 유명한 집도 방문했다. 남해 독일마을에서 배송하는 자허토르테도 먹어봤다. 그렇게 여섯 군데 정도 맛을 보니 자허토르테 소믈리에도 가능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다. 친구의 말에 답이 있었다. 더 맛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우리는 ‘본토’의 맛이 궁금했다. 사대주의 같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한식에 관심 있는 미국인이었다면, 한국 땅의 김치를 지독하게 궁금해했을 것이다. 그저 오리지널이 궁금했을 뿐이다.
“기다려 봐. 내가 뭘 좀 찾은 것 같아.”
자허토르테 원정이 막을 내렸다고 생각했을 때 즈음 친구는 내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학생회관에서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끈기 있고, 한결같은 편이며, 조금 안 좋게 말하면 집요한 구석이 있냐고 묻는다면 우리의 의견은 늘 일치했다. 누가 보아도 친구 쪽이었다. 나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 더 쉽게 싫증 내는 경향이 있었다.
악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중학생 때 같은 반에서 가까운 친구들이 어쩌다 두 명이나 바이올린을 배우길래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케이스였다. 연습은 그야말로 적당히만 했다. 예술적 소양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스펙 용이기도 했던 것 같다.
친구는 첼로를 켜기 위해 집안에서 조용한 투쟁을 했다. 초등학생 때 어린이 잡지에서 첼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는 첼로에 매료되어 버렸다. 집안 사정상 첼로처럼 큰 악기를 쉽게 구매하고 레슨까지 시켜주기에는 부담이었지만 친구는 그걸 알기엔 너무 어렸다. 좋아하는 첼리스트의 음반을 사서 시도 때도 없이 듣기를 한 달, 부모님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는 첼로를 사주셨다고 했다. 친구는 대신 레슨을 받으면서 열심히 연습했다. 고등학교 3학년 1년 정도만 케이스에 고이 보관하고는, 대학교 신입생이 되자마자 오케스트라 동아리 모집 공고를 찾아보았다고 했다. 친구는 동아리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이 가장 뛰어난 연주자였다. 말하자면, 근성이 있는 친구였다.
좋아하는 뽈로 그라탕을 먹다 말다 하며 계속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던 친구가 포크를 내려놓고는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봐, 이거 봐.”
화면에는 원조 자허토르테가 탄생했다고 알려진 오스트리아 빈 호텔의 해외 주문 페이지가 떠 있었다. 파스타가 반 즈음 말린 포크를 내려놓고 나도 덩달아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오 뭐야, 배송되는 거야?”
“기다려 봐. 지금 해볼게.”
친구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잔뜩 집중한 얼굴로 뭔가를 열심히 입력하더니 갑자기 ‘아!’ 하고 작게 외쳤다.
“왜 그래?”
친구가 화면을 보여주더니 고개를 감싸 쥐었다.
“아, 한국 배송이 안 되는 거야? 기대했는데!”
우리는 이내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파스타를 말고 그라탕을 뜨기 시작했다. 결국 풀리지 않은 궁금증을 안은 채 자허토르테를 향한 여정은 잠정적으로 막을 내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기가 울고 있었다. 수유를 할까 했더니 남편이 막 준비한 젖병을 들고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잘 자다가 방금 전 깼다고 했다. 빨리 씻고 나오겠다고 말했다.
수유 패드가 묵직했다. 얼른 떼내 버리고 샤워를 했다. 옷이 젖기 직전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우는 아기를 빨리 가서 한 번 안아줘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이 혼재돼 밀려왔다. 재빨리 물기를 닦고는 유축부터 했다. 한결 가벼워졌다.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하고 거실로 나가 아기를 안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나의 아가.
“이번 생일에는 무슨 케이크 먹고 싶어?”
남편이 물었다. 아직 열흘이나 남았지만 남편은 나에게 케이크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두세 달 전에 여러 케이크를 물색 후 마음을 정해 두었겠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 롤케이크 있잖아. 배달되더라. 그거 먹을까?”
남편의 얼굴에 의아함이 담긴 투명한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그 케이크를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 미리 예약을 하지도, 처음 가는 베이커리도 아닌 체인점의 케이크를, 당일에 그냥 앱으로 배달하여 생일 케이크로 먹겠다는 말이 맞냐는 의구심을 말 한마디 없이 두 눈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 진짜로 그 케이크 먹고 싶어.”
나는 그 뒤에 따라 나오려던 ‘괜한 돈 쓰지 말자’는 말을 삼켰다. 솔직히는 지금 케이크에 돈을 쓰는 건 사치로 느껴졌다. 출산이 한 달도 남지 않았을 때까지 출근을 했지만 어쨌든 이제 휴직을 했으니 수입이 줄어들 터였다. 아기 물건을 한꺼번에 사느라고 꽤 지출이 있었다. 약간의 가격 차이로 질이 달라 보여서, 이것도 저것도 좀 더 나은 것으로 고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조리원 비용이 엄청났다. 푹 쉬라는 가족들의 성화로 3주를 머물렀더니 손 떨리는 계산서가 나왔다. 게다가 산후 도우미 비용까지 더한다면. 몇 만 원 더 보태 호화로운 케이크를 먹을 여유는 없었다. 더 정확히는, 이런 상황에 내가 그 정도 대접까지 바랄 사람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직 임신 때 붙은 몸무게가 다 빠지지 않았는데도, 왠지 나는 좀 작아져 있었다.
이번에는 남편이 잠시 씻으러 들어갔다. 나는 아기를 안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아기와 둘이 있는 시간에 자주 듣는 클래식 협주곡 플레이리스트를 틀고,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했다.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나의 친구는 이 부드럽고 안정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첼로 소리를 사랑했다. 그러니 그렇게 배우게 해달라고, 자기만의 조용한 방식으로 졸라댔을 것이다. 친구는 얼마 전 엄마의 생신 때 ‘백조’를 연주해 드렸다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본전 뽑았다’고 말씀하시면서 휴지를 뜯어 눈가를 톡톡 찍어내셨다고 했다.
나는 물론 바이올린 소리를 사랑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그러니, 적극적으로 활을 바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산을 앞두고 집에서 아기 손수건을 접어 두고는 쉬는 중이었다. 바이올린 소리를 뱃속 아기에게 들려줄까 싶어, 케이스를 열고 바이올린을 잡았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다. 약간 튀는 소리가 났다.
활 털이 또 끊어졌다. 몇 가닥 끊어졌을 때는 자르고 썼는데 유독 한쪽에서 끊어지는 일이 많았다. 자세히 보니 심하지는 않지만 활대가 휘어져 있었다. 워낙에 오래 쓰기도 했다. 바꿔야 할 때가 온 모양이었다.
“다음에 시간 되면 사려고. 지금은 이래저래 어렵네.”
화상 채팅으로 하던 청첩장 모임 중에 그 얘기가 나왔다.
“근데 그러면 바이올린 켜고 싶을 때 못하잖아. 괜찮겠어?”
“내가 그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 지금 활도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고.”
반은 진실, 반은 거짓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게 되면서 꽤 자주 바이올린을 잡게 되었다. 오랜만에 일을 하지 않고 있는 낯선 상황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그렇지만 아기를 만난다는 그보다 큰 기대감이 내 안에 섞여 마음속이 복잡스러웠다.
신기하게도 바이올린 소리는 그 감정을 정리해 주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또 수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흩날리려 할 때마다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활에 송진을 바르고, 악보를 골라 음표와 박자를 따라가는 데 집중했다. 내게는 일종의 명상 시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사실, 대단히 열성적인 연주자가 아님에도, 활에 문제가 생긴 상황이 문제이긴 했다.
평일에 찾아온 올해 생일은, 아직 엄마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지 못하는 아가와 함께였다. 남편이 끓여 주고 나간 미역국을 아침 겸 점심 삼아 푸짐하게 떴다.
이번 생일에는 미역국으로 충분하다고 내가 먼저 말했다. 어디 나가서 밥을 먹는다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 지금 어디 나가기도 어렵다고 한사코 선을 그었다. 이미 나라는 존재에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아서, 다소 지나친 액션을 취한 것 같았다.
수유를 하고, 고맙게도 방긋거리는 아기를 역류 방지 쿠션에 살포시 내려놓은 뒤, 옆에서 미역국을 먹었다.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조금 외로웠다. 미역국이 너무 맛있는지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잘 참아냈다. 아마도 아기를 낳고는 호르몬이 널을 뛰어서 그런 걸 거야.
미역을 또 한 젓가락 뜨고 있는데 핸드폰 메시지 알람이 화면에 떴다. 아직 오스트리아에 있을 친구의 메시지였다.
‘생일 축하해!’
귀여운 토끼가 하트를 들고 있는 이모티콘과 함께였다.
‘신혼여행 가서까지 왜 내 생일을 챙기고 있어!’
아직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결혼식장에 나타난 나를 본 친구의 마음이 약간 이런 것이었으려나 싶었다.
몇 시간 답장이 없더니 또 메시지가 왔다.
‘모레 잠깐 집 앞으로 가도 돼? 문 앞에서 잠깐 뭐 주고만 갈게.’
나는 선물 챙기지 말라고, 신경 쓰지 말고 여행 잘하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완강했다. 결국 내가 졌다. 이미 출산 선물도 받았는데 친구는 자꾸 아기에게 무언가 주고 싶어했다. 혹여나 귀여운 옷이 오려나 싶어 방금까지 손사래를 치던 모습이 민망하게도 약간의 기대가 일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아기 옷은 어떻게 생겼을지 좀 궁금하니까.
육아를 하다 보면 이틀은 정말 순식간이다.
대단히 꾸미지는 못할 테니 세수라도 잘해보기로 했다. 먼 여행을 다녀와 피곤할 텐데도 직접 찾아와 선물을 건넬 친구에 대한 예의였다.
잠깐이나마 친구를 본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들뜬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어느덧 약속한 오후 5시. 가고 있다고, 조금만 기다리라는 다급한 전화가 오더니 곧 호출벨이 울렸다.
“잘 있었어? 이거 받아. 너무 기울지 않게.”
현관문 앞에는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덮어 중무장을 한 친구가 서 있었다. 혹시나 아기에게 위험할까 봐 알아서 다 준비하고 온 것이 역시나 친구다웠다.
친구는 내게, 생각보다 아주 많이 커다랗고 묵직한 하얀 봉투를 건넸다. 선물이 하나가 아닌 모양이었다.
바로 가려는 걸 잠깐 아기를 보고 가라고 붙잡았다. 친구는 괜찮은지를 묻더니 손을 박박 씻고는 들어와 아기 옆에 앉았다.
“정말, 정말 예쁘다. 나도 빨리 따라갈 테니까 공동 육아 예약이다.”
“당연하지. 너무 환영이야.”
친구는 아기 백일이 지나면 다시 놀러 와서 안아볼 거라고 못을 박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물은 나 가고 나서 봐!”
내가 봉투의 이음새를 뜯으려고 하자 친구가 말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는 봉투가 너무 상하지 않게 열어 보았다. 무늬 없는 종이로 감싼 선물이 보였다.
잡히는 것부터 풀었다. 예상대로 내가 궁금해 마지않던 아기 옷이었다. 다만 아기 옷 같지는 않은, 너무 멋지고 귀여운 슈트였다. 슈트 포장지에는 ‘멋진 꼬마 신사로 자라나길’이라고 적힌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너무 예뻐서 몇 번을 들어서 보고는 아직 이 옷을 입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아기 옆에 살짝 펼쳐 보았다. 돌잔치 때 입어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다른 선물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커다랗고 긴 선물부터 풀어 보았다. 단단한 케이스가 만져졌다. 케이스의 표면이 보이자 감이 왔다.
고르고 부드러운 털을 가진 활이었다. 봉투 밑바닥에 굴러 다니고 있던 송진은 하마터면 못 보고 버릴 뻔했다. 나는 두 손으로 활을 집어 들고 무게를 느껴 보았다. 내 바이올린과 딱 맞는 합이 틀림없었다.
아기가 갑자기 칭얼댔다. 나는 아기를 안은 채, 봉투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는 마지막 선물의 포장지를 한 겹 한 겹 풀어냈다.
그게 틀림없었다. 빈의 자허토르테.
수년간 오리지널의 맛을 궁금해하기만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결국 이번 생일에도 의도치 않게 또 사치스러운 케이크를 받고 말았다.
“우리 애기. 엄마 이거 먹어 봐도 돼?”
아기는 다시 방싯대고 있었다. 이 틈을 타서 커피를 내렸다.
오랜만에 아끼는 접시를 꺼내서 자허토르테를 크게 잘라 올렸다. 최근에는 거의 장식용이 되어 가고 있었던, 식기세척기에 들어갈 수 없는 접시였다. 귀찮아도 자허토르테에게 걸맞은 대접을 해주려면 이 수밖에 없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포크로 크게 잘라낸 자허토르테를 한 입에 넣었다.
초콜릿 글레이즈가 먼저 입 안에서 녹아내렸다. 더도 덜도 않게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초콜릿 시트의 달콤함, 그리고 그 사이를 탁 치고 들어오는 살구잼의 상큼한 산미. 이게 바로 빈, 오리지널의 맛이구나!
아기는 생일 케이크를 먹을 시간을 주었다. 벌써 엄마에게 꽤나 통 큰 생일 선물 하나를 준 셈이었다.
포크를 옆으로 세워 또 한 번 커다랗게 자허토르테를 잘라내는데 또 그만 갑자기, 눈물이 크게 한 방울 떨어졌다. 장인이 그려 넣는다는 접시의 파란 무늬가 눈물 속에서 약간 번져 보였다. 커다란 조각을 입에 넣었다. 눈물이 뚝 그치질 않았다. 아기가 따라 울까 봐 조그맣게 훌쩍였다. 요즈음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눈물이 나서 나조차도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호르몬 때문이겠지.
하얀 케이스 옆면에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를 이제야 봤다. 친구는 희한하게 알파벳을 적을 때만 약간 악필이었다. 악보에 적을 때는 대충 써서 그런가 했더니 원래 그런 게 확실했다.
고등학생 때 배운 독일어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아무리 다 잊어버렸다고 한들 이 정도는 충분히 해석을 하고도 남는다.
Alles Liebe zum Geburtstag, meine liebe Freundin!
(나의 사랑하는 친구야, 생일 축하해!)
#이 글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