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아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방법
남편의 해외 발령지가 프라하로 정해졌다고 했을 때, 그만 가족들이 놀랄 정도로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몇 안 되는 잘하는 요리인 소고기 가지 솥밥으로 저녁밥을 먹던 중이었다. 아들의 유치원 상담으로 오후 반차를 낸 김에 오래간만에 해 보았다. 오늘 유난히 맛있게 되었다 싶더니만 이런 희소식이 있었다.
“어후, 간 떨어질 뻔했어.”
남편이 왼손을 가슴에 얹은 채 말했다. 놀란 건 맞는 것 같았지만 어찌 됐든 웃고 있었다.
“엄마, 소리 지르면 어떡해요. 깜짝 놀랐잖아요.”
아들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과하고는 남편을 보며 말했다.
“나 배우자 휴직 되니까 걱정하지 마. 내일 당장 알아볼게.”
남편과 나는 솥 바닥에 남은 밥알을 모으면서 어떤 일정으로 가면 될지 이야기했다. 연말 발령이라 준비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프라하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왔다. 더 어릴 때부터 지구본을 좋아하던 아들에게 체코를 짚어 주며 우리 여기서 1년 정도 살아봐도 괜찮냐고 물었다. 아들이 고개를 끄덕여 준 덕에 얼렁뚱땅 동의를 얻어냈다.
11월 말의 프라하는 당연하게도 쌀쌀했다. 옷을 여미며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아파트는 다행히 이미 난방이 켜져 있었는지 공기가 훈훈했다. 남편과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어 쉬고는 같이 아들을 한 번 꼭 끌어안았다. 낯선 여정에 긴장도 꽤나 했던 터였다.
남편은 발령지에 온 지 며칠 만에 갑자기 바빠졌다.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예상치 못한 이슈로 프라하 현지에서 직접 해결해야 할 업무가 생겼다고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기는 해도 다음 주면 유치원에 나갈 아들과 둘이서라도 알차게 추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마켓이 광장에 문을 여는 시기였다.
예전부터 아기가 태어나면 누구보다 크리스마스는 제대로 보내게 해주겠다는 결심을 해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법이니까.
5살 터울의 나의 오빠는 짓궂은 편이었다. 산타 할아버지와 크리스마스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내게 찬물을 끼얹은 장본인이었다. 아직 내가 유치원생인 시절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말을 믿지 않자, 이브에 곤히 자고 있는 나를 기어이 깨웠다. 얼떨결에 걸어 나간 거실에서 트리 밑에서 선물을 포장하고 있는 부모님과 마주쳤다. 부모님은 오빠에게 눈을 흘기며 산타가 가져다준 선물을 포장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둘러 댔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는 의심이 싹트고 말았다. 나는 그 나이에는 아직 말로 표현해 내기 어려운 실망감에 펑펑 울었고, 오빠는 그 옆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다가 크게 혼이 났다. 덕분에 나는 어른이 된 후 오히려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보내는 데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과 손을 잡고 나간 프라하의 광장은 생각해 오던 것 이상이었다. 키 큰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어린 시절 상상했던 예쁜 장식이 다 모여 있는 것만 같았다. 기차 장식, 진저브레드맨, 유리 종,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밝혀주는 작은 전구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나무 위에 별이 깔려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늘 상상하던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있었다.
아들을 세워 두고 사진을 좀 제대로 찍어 보고 싶었지만 빨리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러 가자고 성화였다. 몇 장 겨우 찍고는 손을 잡고 마켓을 돌기 시작했다.
마켓의 가판대에는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가득했다. 여러 가지 트리 오너먼트, 익숙한 멜로디의 오르골, 목마, 병정. 달콤한 케이크와 쿠키도 있었다.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홀린 듯 마켓을 돌았다. 이 순간만큼은 나는 아직 오빠에게 당하기 전 산타를 굳게 믿는 그 아이였다.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과 함께 고른 오너먼트 여러 개를 주머니에 가득 담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열어보자며 어드벤트 캘린더도 하나 샀다.
마켓을 몇 바퀴 돌다가 늘 생각만 하고 한 번도 사지는 않았던 슈톨렌도 하나 구매했다. 매일 슈톨렌을 썰어 맛보고, 캘린더를 열어 장난감을 하나씩 꺼내다 보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날들이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때 아들이 자동차 조립 블록을 하나 가리켰다. 500피스가 넘는 블록이었다. 완성품이 견본으로 하나 놓여 있었다. 빨간 스포츠카는 누가 보아도 멋진 작품이었다.
바로 구매하려다가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저건 산타 할아버지한테 달라고 하자.>
당장 블록을 손에 넣고 싶었던 아들이 시무룩해졌다.
<근데 이번에는 꼭 크리스마스까지 안 기다려도 된대.>
아들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바빠서,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선물이 자라게 했대. 선물이 점점 자라서 크리스마스 때 트리에 완전히 열린대.>
순식간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는 아들의 반응을 살폈다. 아리송한 얼굴을 하더니 내가 원하던 반응을 내놨다.
<진짜?>
나는 그렇다며 호들갑을 떨고는 올해 착하게 잘 보냈으니 산타 할아버지께 저 자동차 조립 블록으로 열리게 해달라고 부탁하겠다고 말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선물이 잘 열릴 수 있도록 트리부터 꾸몄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사 온 오너먼트를 잔뜩 달았더니 가지가 휘려고 했다.
드디어 아들이 유치원에 등원하는 날, 나는 재빨리 마켓에 가서 몰래 그 자동차 조립 블록을 사왔다. 그리고서는 아들이 절대 찾지 못하는 곳에 블록을 숨겨 두었다.
그때부터 매일 밤, 내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조립을 했다. 블록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들이 잠든 틈을 타서 블록을 조금 만들어 나무에 걸어두고는, 다음날 아침에 선물이 이만큼 자라났다고 말했다. 아들은 커가는 선물에 꽤나 심취해서는, 트리에 혹시 물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점점 내 장난의 무게를 체감하게 됐다. 나중에 상자를 자세히 보니 난이도 ‘상’에 속하는 제품이었다. 왠지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싶었다.
남편도 바쁜 일정이 어느 정도 일단락 될 것 같다고 해서 같이 만들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대응이 길어지면서 빨리 들어오지 못했고, 어쩌다 빠른 퇴근을 하는 날에는 피곤한 나머지 금방 잠이 들고 말았다.
아들도 내 장난에 동조해주지 않았다. 새 유치원을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낯선 환경이 어찌 됐든 스트레스가 됐던 모양이었다. 혼자 잘 자던 어린이였는데, 갑자기 꼭 엄마랑 같이 자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장난을 어떻게 고쳐서 말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겨우 반 넘게 조립된 상태로 이브가 찾아오고 말았다. 결국 아무 핑계도 대지 못한 나는 내일 아침이면 어떻게든 선물이 트리에 잘 열려 있을 거라고 말해 버렸다. 남편에게는 예비용으로 자동차 선물을 하나 꼭 하나 사오라고 부탁해 두었다.
결국 이브날 밤, 선물을 손에 걸고 온 남편과 할 수 있으면 해보자며 조립을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아준 아들은 이른 잠에 들었다. 나는 연신 하품을 하며 블록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남편은 앞으로는 이런 장난치지 말자며 맥주 두 캔과 감자 튀김을 잔뜩 늘어놓고는 같이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부분 피스 묶음이 보이지 않아 잠시 당황했지만, 블록 상자를 숨겨둔 옷장 아래 쏟아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겨우 완성해 낼 수 있었다. 시계는 새벽 3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10시가 되도록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보다 못한 아들이 깨우러 왔다. 빨간 자동차를 품에 안은 채였다.
“엄마, 선물이 열렸어!”
남편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자르자며 같이 거실로 향했다. 아들은 폴짝폴짝 뛰다가 소중히 안고 있던 자동차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자동차의 반토막이 흩어졌다. 아들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우리는 아들을 꼭 안고는, 산타 할아버지가 만드는 방법을 알려줘서 다시 완성시켜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우리는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이었다. 부쉬 드 노엘을 한 숟가락 씩 입에 넣으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완성해 주었다. 아들은 다시 자동차를 안고 이번에는 조심조심 움직이면서 말했다.
“내년에는 나무 두 개 놓고 선물 열리게 할래!”
나도 모르게, 지나치게 황급히 대답했다.
“산타 할아버지 이제 안 바빠서 내년에는 배달해 준다고 하셨어. 내년에는 꼭 그냥 받아야 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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