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항상 뒤에 선다.
천천히 헤엄을 친다.
25m 잠영은 10번 내외로 돌핀킥을 차다가
호흡이 채 가빠지기 전에 수면으로 올라온다.
다시 잠수하지 않고 남은 구간을 자유형으로 끝낸다.
나에게는 논리가 있다.
인내심 총량의 법칙.
아침 수영에서 인내심을 쓰면,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야 말 것이다.
스스로 수영장 경쟁에서 물러나
평화를 찾았다.
회사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 곳에 있는 이상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혹은 아주 조금 낫다는 평가는 받고 싶다.
회사에서의 승진과 보직이
역량의 가늠자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평가할 때는
그것을 기준으로 들이대게 된다.
경쟁이 피곤하다.
잘 할 자신이 없다.
최선을 다했냐고 물으면
글쎄 아니다.
이제 더 할 수 있는 건
내게 없는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묻고, 부탁하기.
사회생활은 관계가 중요하다.
묻고 부탁하기만 잘해도 70점은 가져간다.
나는 이게 불편하다.
질문을 하면 뭔가 캐묻는 것만 같고,
남들이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드러내게 만들어
피해를 주는 기분이 든다.
내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면 모르지만
겨우 숨겨 놓은 문제를 까발리기만 하는 것 같아
질문을 할 때부터 부담이 크다.
그들이 문제를 푸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러려면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바뀌는 건가.
종종 설득이 폭력 같아서
쉽게 시도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를 돌아보니
내 생각들을 모두 바꿔 버렸다.
나는 그렇게 되었는데 왜 남들에게는 하지 못했을까.
과도한 투사
권위에의 복종
경계선이 무너진 나는
에너지가 줄줄 새고 있다.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을 시간.
그냥 나로서 마주쳐보자.
누가 화를 내든, 싫은 소리를 듣든
이제 더 원하는 것도 없으니까.
그저 마주 설 수 있다면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