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에 대하여

여유란 할 일의 부재가 아니다

by Stella

회사를 그만두고 한 두어 달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남편을 배웅하고 느지막이 여유로운 브런치를 해 먹고, 뒹굴대며 티비를 보다가, 오후에는 카페나 공원에 가서 멍하니 뇌를 비워냈다. 바빠서 주 4-5회는 시켜 먹던 배달음식을 줄이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운동도 하고, 평일에 시간이 나지 않아 포기했었던 쇼콜라티에 수업도 신청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나니 잉여로움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나 보다.


이것저것 일을 좀 벌려 보았다.


수익형 블로그를 시작해 보려고 정보성 글도 좀 끄적여 보고, 아니야, 유튜브를 해 볼까? 하며 베이킹 브이로그를 찍어 보기도 했지만 영 소질도 없었고 무엇보다 딱히 재미가 없었다. 몇 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니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병원이든 회사든, 대부분 가시적인 업무 성과가 빠르게 도출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마냥 인풋만 가득하고 아웃풋은 미지수인 나날은 생각보다 내 자존감을 많이 갉아먹었다.


돌이켜 보니 나는 많이 어설펐다.


익숙함에 등을 돌렸다면 새로움이 주는 희열과 함께 불안까지도 즐기거나, 그러지 못한다면 최소한 떠안을 각오라도 되어 있었어야 했다. 이 과도기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시간이 많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여유가 없었다. 자유로웠지만 벗어나지는 못했고, 선택지가 많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로 반년 정도가 흘러갔다. 그동안 나는 온갖 미드를 섭렵하고, 각종 과일로 만든 잼을 먹지도 않으면서 냉장고에 저장했으며,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산 다음 첫 챕터만 읽고 버려두었고,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면 심심했다고 투정을 마구 부리며 비생산적인 삶의 극치를 엿보았다.


다행히도 나는 자신에게 굉장히 관대한 인간이다. 어영부영 흘려보낸 반년의 시간에 대해 잠시의 자책을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반년 정도는 날려도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날려 보내고, 나는 새로이 몰두할 프로젝트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나는 베이킹 공방의 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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