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도 우리가 겪는 일상
한국에 지내는 동안 허리 통증 등으로 인해 정형외과에서 피검사를 받았고 이후 대학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안내를 받았다. 이에 대학병원 검사 결과 강직성척추염 초기로 진통소염제를 복용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현재 노르웨이에 거주하고 있어 약을 복용 후 증상이 어떤지 등에 대해 알 수 없고, 또 모유수유 중으로 의사는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나 또한 당장히 모유수유를 중단할 수도 없었기에 영문소견서를 요청해 노르웨이에서 주치의와 함께 논의를 해보겠다고 했다.
역시나 11월 예약은 꽉 찬 상태, 의사에게 온라인을 통해 영문소견서와 함께 이러이러한 증상으로 11월에 예약을 잡아줄 수 있는지 문의 메시지를 보냈더니 어플을 통해 예약 또는 리셉션에 전화하라는 형식적인 짧은 답변만 달랑 왔다. 아기를 보면서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하는 게 쉽지 않아 난 그냥 어플을 통해 12월에 가능한 날짜에 예약을 했고 이후 주기적으로 어플을 들어가 11월에 취소되는 진료예약시간이 있는지 확인했다. 운 좋게도 하나가 취소되어 11월 셋째 주에 의사를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나의 주치의는 좀 융통성 없고 닭가슴살처럼 퍽퍽한 사람이다. 거기에다가 닭가슴살을 먹을 때 소금을 살짝 추가하듯 의심도 살짝식 곁들인 표정으로 항상 응시하는 그가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질병을 진단받게 된 건가요?"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몸이 안 좋았어요. 몸 전체적으로 근육통이 온 듯 아팠고 어느 날은 손가락 마디까지도 아팠죠. 그래서 정형외과에 가서 의사를 만났고 피검사를 진행하고 X-RAY, CT 촬영을 진행했는데 대학병원을 가보라고 해 대학병원에 가서 피검사와 MRI를 진행했고 의사가 피검사상 강직성 척추염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고 염증 수치와 MRI 확인 결과, 초기라고 했어요. 진통소염제를 복용해야 한다고요."라고 답했다.
"음... 파라셋과 이북스 복용해 봤나요?"
"네"
"어떤가요? 잘 듣던가요?"
"아니요. 전혀 듣지 않았어요."
노르웨이에서 파라셋과 이북스는 약물계의 의형제다.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취급되기에, 의사들은 늘 가장 먼저 이 두 약을 권한다. 주치의는 몇 가지를 더 질문했고 그는 영어로 말하는 걸 안 좋아해서 나는 노르웨이어로 답하고 말하느라 머리와 입이 지끈거렸다.
대화 끝에 처음에 의심스러워하던 그의 표정은 좀 사그라든 채, "음.. 근데 한국에서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다시 피검사 등을 진행해야 해요. 그래서 피검사와 MRI 예약을 잡아줄 테니 검사 결과에 따라 다시 얘기하는 걸로 하죠."
"그럼 검사 결과상 강직성 척추염이 맞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라고 물었다.
"그럼 대학병원으로 예약을 잡아줄 거고 그 후 거기서 논의를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피검사 후 2주가 조금 지난 어느 날, 피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이라며 주치의는 “MRI 결과를 봐야겠네요”라고 했다.
노르웨이 주치의 진료소에는 MRI 장비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아 추후 MRI 검사 예약일, 시간, 장소에 대한 안내가 문자로 온다. MRI 검사는 한달 뒤 무렵으로 오전으로 잡혔다.
검사 당일 대기실에서 기다리니 한 남성이 검사실 문을 열고 나와 내 이름을 호명했다.
한국 MRI 검사실과 달리, 노르웨이에서는 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재킷과 소품을 걸어두는 짧고 작은 복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복도 끝에 자리한 문, MRI 검사실의 문 크기에 딱 들어맞아 보이는 그는 내 앞에 검사실 입구 앞에 서서 문을 막고 있는 듯 서있었다. 내가 뭐지? 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나에게 "문 잠가요"라고 말하며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그는 "재킷이랑 카디건 벗고 그리고 뭐 $$%^&%$%#!@##@#ㅊ?"라고 물었다. 속사포로 말하고 강한 사투리를 가지고 있는 그의 노르웨이말을 내가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더군다나 아이를 낳고 나니 뇌의 기능이 50%는 떨어진 듯하다고나 할까? 임신 전에도 관심도 애정도 없던 노르웨이어란 언어는 애를 낳고 난 뒤 더 귀에 꽂히지도 않았다.
나는 그에게 "이해를 못 했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다시 한번 속사포로 물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알아들을 수 없어, "이해를 못 했다"라고 재차 말했다.
그의 답답하고 황당한 표정은 나에게 '어떻게 이해를 못 하지?'라고 묻는 듯했다.
하지만 그러한 무례한 사람에게 나도 물러서기 싫었다. 뭐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고 노르웨이 현지인들도 미안하다는 말 잘 안 하는 데 뭐, 이 상황에 노르웨이어로 소통하려고 노력 중인 이민자인 내가 더 미안해야 할 이유도 없지!
그는 황당한 표정을 유지한 채, 나에게 재차 물었고,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라고 응했다.
그러니 그는 영어로 "머리 또는 심장 관련해서 수술받은 적 있나요? 그게 제 질문이었습니다."라고 내가 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한 듯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아니요."라고 답하자, "안경? 이어폰? 뭐 전자기기 있어요? 신발도 벗어요"라고 말했고 나는 재킷 주머니에 다 넣었다 하자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렇게 입성한 MRI 검사실. 한국과 달리 따로 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냥 입고 온 그대로 MRI 기계에 누웠다. 그는 기계에 누운 나에게 조금 거칠게 헤드폰을 끼워주고는 "10분 정도 소요됩니다"라고 하고 나갔다.
헤드폰에서는 노르웨이 라디오를 들려줬고 그는 "내 말 들리죠?"라고 물었다. 이후 검사가 진행됐고 중간에 그는 몇 번 더 하면 되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검사가 끝나고 기계에서 내려오려고 하던 나에게 높이를 낮춰주겠다며 하던 그는 나에게 이제 내려오면 된다는 말도 없이 짜증이 섞여있는 뼈 있는 말투로 "좋은 하루 보내시고 잘 가요"라며 말했고 "그쪽도요"라고 하며 복도로 가 옷을 입고 있자, 검사실 문을 쾅하고 세게 닫았다.
열손가락에 꼽히는 높은 행복 지수의 나라 노르웨이에서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친절은 만나기 어려운 태도이기도 하다. 아마 그의 행동이 오히려 노르웨이에서 거주하다 보면 현실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태도라고나 할까? 이렇게도 심술 나있는 기분을 직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도 되고 서비스 마인드를 강요하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현지인이 아닌 이민자로서 사니, 그러한 점이 때로는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뭐 근데 오히려 나를 현지인으로 취급했다는 걸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어땠는지 물었고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이를 들으면서 황당해하면서도 나를 위로해 줄 말을 못 찾는 남편에게 "뭐 심술 궂어있는 노르웨이사람 만난 거 이번 처음도 아닌 데 뭘, 내 노르웨이어가 현지인 같았나 봐. 본의 아니게 마치 내가 그 남자를 속인 거 같네."라고 말하자, 남편은 나의 말에 동요하며 웃었다.
그리고 남편은 "검사료는 얼마 냈어?"라고 물었다.
"287 크로네 냈어."
"오, 생각보다 굉장히 저렴하다. 난 그거보다는 훨씬 비쌀 줄 알았어."
"그렇지? 그래서 그 일 하는 사람 태도도 그런 거 같아. 287크로네짜리 서비스라 속사포로 말하고 빨리 끝내야 하는데. 내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하니까. 2870 크로네도 아니고 말이야"라고 말하자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웃음을 터트리며 검사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보다 느린 의료시스템에 결과는 언제 나올지 더 궁금해하며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