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3개월 아기와 첫 한국행 비행일지

초보 엄마 여행기, 아기와 장거리 비행

by 스텔리나

타향살이를 하며 가장 아쉬운 건, 한국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내가 일 년 중 한국에 갈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주.

그 짧은 시간을 쪼개어 친구를 만나고, 가족을 보고, 익숙한 곳을 방문하고 거닐다 보면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이번엔 육아휴직 덕분에 처음으로 한 달 넘게 한국에 머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곧 현재 내가 존재하는 현실의 고민들이 밀려왔다. 경제적인 부분과 더불어 생후 세 달 된 아기를 안고, 부모란 이름에 아직 익숙하지도 능숙하지도 않은 내가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버겁게 느껴졌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아기가 우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한국에서는 아이의 울음조차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해 마음 한편에서 부담감을 더했다. 그런 막막함 속에서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즉 기회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억만금을 줘도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더불어 나에게도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오래 한국에 머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 그 생각이 내 손끝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나는 임신 기간부터 출산 후 산후조리도 없이 쉬지도 못한 탓에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몸은 여전히 무거웠고, 마음 또한 여기저기 금이 난 듯 예민했고 무거웠다.


그런 나에게 장거리 비행을 한다는 것은 마치 가늠조차 되지 않는 모험처럼 느껴졌고 짐과 더불어 혼자 아기를 데리고 그 먼 길을 날아 한국까지 가는 건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한국행에 대한 바람은 그저 어느 날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속에만 머물던 버킷리스트처럼 살랑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회사 상사분이 한국에서의 원격 근무를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그 순간 희미한 빛처럼 "어렵더라도 가보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우리는 마침내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고 노르웨이에서 한국까지는 직항이 없어 헬싱키나 암스테르담을 거치는 두 번의 비행을 생후 3개월 된 아이와 해내야 했다.


한국행을 결정한 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했던 것은 ‘배시넷’이었다. 아기 침대가 설치되는 좌석인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예약할 수 있는지, 추가 비용은 얼마인지… 모든 것이 하나하나 어렵고 까다로웠다. 예전에는 날짜, 인원, 금액 확인하고 결제만 하기만 하면 됐는데 그저 식구가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늘었을 뿐인데, 조그만 아기 한 명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끝도 없이 많게 느껴졌다.


여러 과정을 거쳐 우리는 핀에어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배시넷 설치 가능 여부를 티켓 구매 단계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인 2명, 유아 1명을 선택하자 배시넷 좌석이 자연스럽게 표시됐고, 추가 비용을 지불하니 바로 예약이 완료됐다.


다른 항공사처럼 티켓을 먼저 사고 고객센터에 일일이 문의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배시넷이 안 된다며 티켓을 취소해야 했던 실망도 없었다. 이와 같은 핀에어의 간단한 베시넷 예약 덕분에 초보 엄마 아빠에게 큰 도움이 됐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승무원들이 배시넷을 설치해 준다는 안내에, 비행기 안에 아이를 누일 곳은 마련되었다는 안도감에 마음 한편의 부담감이 조금은 덜어졌다.


그리고 나는 주변 친구들의 조언과 수많은 블로그 글을 참고하며 아기와의 첫 긴 여행을 준비했다.


비행기 이착륙 시 압력 때문에 귀가 아파 아기들이 많이 운다 했다. 보통은 쪽쪽이를 물리지만, 우리 아기는 쪽쪽이와 조금도 친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걱정였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러 종류의 쪽쪽이를 사서 시도해 봤지만 역시나 물지 않았다. 그래도 드물게 두어 번 빨아주었던 필립스 쪽쪽이는 마지막 기대처럼 챙겨두었다.


비행용 기저귀 가방을 챙길 때는 마치 작은 이삿짐을 꾸리는 기분이었다.

아기띠 두 개(코니, 베이비뵨), 기저귀 15장(장거리 비행이라 연착될 수도 있는 점 감안해서 넉넉히), 액상 분유와 여행용 젖병(혹시나 모유수유가 어려운 경우를 위해), 아기 여벌옷, 방수 패드, 아기 장난감 1개, 거즈 손수건, 건티슈, 물티슈, 손목보호대를 챙겼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사용할 아기 침대나 바구니형 카시트, 기저귀 갈이대, 유모차, 바운서 등 대여와 중고 구매를 동시에 알아보는 일이 쉬울 리 없었지만, 다행히 한국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일부는 당근에서 좋은 제품을 찾았고, 일부는 대여 서비스로 해결할 수 있었다.


마침내 한국으로 떠나는 당일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기는 카시트에 앉자마자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왜 하필 이 날, 이 시간에 도로까지 막히는지…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질수록 내 심장도 같이 더 크게 울리고, 긴장은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공항은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행 성수기는 이미 지났는데도, 보안검색대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서 있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유아 동반 승객이라고 해서 패스트트랙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끝없이 이어진 줄 앞에서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지만, 다행히도 아기는 아빠의 품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수월하게 보안 검색을 마칠 수 있었다.


드디어 우리의 첫 비행기, 헬싱키행 항공기에 탑승했다. 이륙 순간, 나는 숨을 고르고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했고 아기는 금세 잠들어버렸다. 비행 내내 깊은 잠을 잤고, 착륙할 때도 수유를 하지 않았는데도 놀랄 만큼 편안하게 잠을 유지했다. 그 모습을 보니 오래 유지해 오던 긴장된 몸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이제 이착륙을 한 번씩만 더 하면 한국이다.


‘거의 다 왔어. 할 수 있어.’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헬싱키에서 환승 시간으로 두어 시간을 보낸 뒤 대망의 한국행 비행기 탑승하기 전 게이트 앞에서 아기가 잠들었다.

나는 아기가 혹시 이륙하면서 깨어 울지 않을까, 압력 때문에 귀가 아파 보채지는 않을까 대비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보채면 모유수유하려고 준비했으나 울지도 않고 그냥 평온했다.


승무원들은 우리를 배려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승객을 다른 자리로 옮겨주었고, 우리는 여유를 얻었다.

하지만 넓어진 좌석 공간과는 다르게, 내 마음속의 긴장은 여전히 팽팽하게 서 있었다. 비행기 안에는 단체 승객들이 많아 좌우에서 이어지는 대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화장실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계속해서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때마다 혹시 누군가 발을 헛디뎌 아기가 누워 있는 배시넷에 부딪히는 건 아닐까, 넘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 때문에 나는 한숨도 잠들지 못하고 마치 보초병처럼 뜬 눈으로 아이가 누워있는 배시넷 근처를 살폈다.


어느 정도 차분해진 화장실 줄 그리고 소등된 비행기 안에서 남편과 나는 번갈아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이미 몸이 지나치게 각성된 탓에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긴장이 오래 이어지다 보니 어지러움과 두통까지 밀려왔고, 결국 승무원에게 부탁해 타이레놀을 복용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아기가 내내 깊은 잠을 잤다는 것. 승무원들도 틈틈이 우리를 도와주며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펴줬고, 그 덕분에 겁먹었던 것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장거리 비행을 견뎌낼 수 있었다.


착륙 안내 방송이 들려오자, 꿈처럼 길었던 비행의 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정말 끝났어. 이제 집으로 가기만 하면 돼.’
그 생각이 밀려오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설렘과 안도감이 천천히 올라왔다.


착륙의 흔들림 속에서도 아기는 울지도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승무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기가 비행 체질이네요.”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공항에 우리를 마중 나온 가족을 만나니 미소가 번져왔다.


우리 무사히 도착했고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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