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Wild (2007)

by stel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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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꿈이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고 적힌 조그마한 메모가 책상 위에 있어요.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누구든지 꿈은 작지 않아요. 자기 자신이 그 꿈을 작게 만들지 않는 이상은요. 아주 사소한 꿈도 결코 작은 꿈은 아니죠. 예를 들어 볼까요. 오늘 저녁으로 뭘 먹고 싶나요? 난 연어 요리를 먹고 싶어요. 잘 훈제된 연어에 소스를 살짝 뿌린, 옆에 토마토와 샐러드로 장식한 요리요. 편한 사람이랑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사실 대단하지 않은 꿈이에요. 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먹진 못할 거 같아요. 그냥 꿈이에요. 그래도 오늘 저녁은 먹을 거예요. 조금 소박한 식사로 혼자 조용히. 어쩌면 처음보다 꿈을 작게 만든 거 같아 보이지만 꿈이 작아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녁을 먹는 것 만해도 놀라운 일이니까. 누가 저녁 먹는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살겠냐고 생각해도 좋아요. 누군가는 그 저녁을 먹지 못하고 잠들기도 하니까. 다른 꿈도 있어요. 종일 시계를 안 보고 사는 것도 꿈이에요.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그냥 자는 거예요.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게 꿈이에요. 좋은 종이에다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꿈이에요. 여러 가지 색의 물감을 쓰면서 뭐든 그릴 수 있겠죠. 빛 좋은 날에 편한 의자에 기대앉아서 책을 보다가 살짝 졸려서 잠들었다가 깨면 다시 책을 읽고를 반복하면서 종일 방해받지 않고 자는 것도 꿈이에요. 마음에 남는 노래를 듣는 게 꿈이에요. 열 번 정도 읽어도 지루해지지 않는 책을 보는 게 꿈이에요. 보고 나면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영화를 보는 게 꿈이에요.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을 사는 것도 꿈이에요. 곱게 접은 종이에다 손으로 투박하게 깎은 연필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내는 꿈도 있어요. 아마 내용은 그냥 싱거운 내용일 거예요, 그렇게 쓰는 게 꿈이니까요. 종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게 꿈이에요. 아... 이 꿈은 다리가 좀 아프겠다. 좋아 실망했다면 다른 꿈을 말해볼게요. 나는 스페인 코르도바 같은 데서 조그마한 집을 지어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연습하면서 살고 싶어요. 이번 꿈은 거창하죠. 결코 작지 않아요. 분명 아무도 작다고 말할 수 없어요. 정말 꿈이에요 그냥 지도에서 보고서 익숙한 이름을 -사실 코드도 바는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서 온 친구 덕분에 익숙해진 이름이지만- 찍고서 하고 싶은 것을 말했을 뿐이지만. 꼭 거기가 아니고 아무 데나 에서도 사실 상관없을 것 같아요.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서 한겨울에 방에 틀어 박혀 글만 쓰는 건 어떨까요. 쿠바에서 크로키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꿈이에요. 기타 하나만 매고 중국에서 시작해 인도나 동아시아를 지나 이스탄불을 거쳐 영국까지 가는 건 어떨까요? 꽤 좋은 꿈이죠.


2.
꿈을 꾸는 데에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


누군가는 꿈을 좇아서 자기를 내몰아 칠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게 그 사람의 꿈이라면 아무도 방해할 권리는 없어요. 꿈 때문에 사는 사람이 분명 있어요. 꿈이 아니었음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에요. 몇 번이고 다시 말해도 그건 사실이에요. 누구도 어느 누구에게 무엇이 되라고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것에 대해서 꿈꾸는 것을 제한할 수도 없어요. 말하자면 가령, 산을 너무 좋아해서 산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남들은 쉽게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던 산을 대부분 정복하고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해요. 산악 그랜드슬램이 뭐냐고요? 히말라야 산맥엔 8천 미터 이상 봉우리가 14개가 있어요. 이곳을 모두 올라야 해요. 지구엔 7 대륙이 있고 대륙마다 7개의 최고봉이 있어요. 이 곳 역시 모두 올라야 해요. 여기에 지구의 양극 점인 남극점과 북극점을 걸어서 도달해야 해요. 한 사람이 평생 모든 걸 해 낼 수 있을까요. 최초로 이 믿기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 있어요. 물론 영웅이 되었죠. 누군가에게 산악대 대장님이라는 칭호도 받아요. 텔레비전에도 몇 번 나와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유명인사가 되지만 그는 또 산으로 향해요. 안나프루나는 이름이 주는 느낌처럼 푸근한 산은 아니었어요. 산을 오르다 사라져요. 꿈을 향해서 영원히 사라진 거예요. 그렇게 사라지면 꿈도 영영 사라지는 걸까요. 결단코, 그건 아니라고 봐요. 굳이 말을 하자면, 누군가는 꿈 때문에 자기가 이뤄놓은 것들을 버려두고서 또 다른 곳으로 달려가요. 자신이 목표를 정하고 순서대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고. 꿈이 자기를 목적지로 이끌고 가요. 많은 길들 걸어서 세상이 뭔가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뒤집을 혁명을 꿈꾸던 사람이 있었어요. 최선을 다했고. 싸웠고. 승리했죠. 불가능해 보이는 꿈은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그 사람의 꿈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다시 꿈에 이끌려서 또 다른 혁명을 위해 싸우다 죽어요. 그는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자신이 꿈꿔온 꿈은 결국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변하지 않을 꿈을 또다시 꿈꾸는 거예요. 불가능할까요? 영원히 안될까요? 또 변질된다면 또 다른 꿈을 향해서 자신을 내 던질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잘 그리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색에 빠져들어요. 그림의 세계에 빠져들어요.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어요. 지독한 꿈이니까. 꿈 때문에 가난함도, 비참함도, 멸시도, 조롱도 견딜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건 견딜 수 없어요. 너무 힘든 일이에요. 그래도 꿈을 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꿈은 꼭 누가 알아준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몰라요. 꿈을 꾸다가 외로움에 울면서 그림을 그리다가 귀를 자를 지도, 총을,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서 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어도. 그래도 계속 그림을 그렸어요. 아를(Arles)의 자연적인 색을 그렸어요. 종종 그는 색을 과장하거나. 그가 각각의 그림을 위해서 사물의 형태를 변형해도. 그걸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어요. 나중에 전설이 되어도. 사람들 입에서, 미술관 앞에서, 책 속에서. 무덤덤하고 감정 없게. ‘그는 살아생전에 그림을 단 한 장밖에 팔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해도.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그는 잔인함을 느꼈을 거예요. 원망하고 저주했을지도 몰라요. 그는 비참하게 죽으니까요. 꿈이 그를 죽인 거예요. 꿈 때문에 죽은 거예요.


3.
그 꿈 때문에 세계가, 세상이, 우리가 변한다.


누군가가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을 꿔서 우리도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어요. 누군가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꿔서 세상이 지금처럼 바뀌어 왔어요. 진실에 도전하고, 편견을 깨버리고, 새롭게 쓰였어요. 어느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꿈꾼 것들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준 자체가 바뀔 수도 있어요. 누군가의 사람과 사람은 서로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꿈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공평함이 이루어졌어요. 세상 모든 꿈 때문에 지금의 세계가, 세상이, 우리가 변해가고 있어요. 누군가의 꿈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요. 꿈은 결코 꿈만으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요. 결국, 꿈은 어떤 방식으로든 실재하게 되니까요. 서른다섯에 좋은 직장에서 돈을 벌어가고 있는 사람이 꿈을 꿔요. 불현듯 든 꿈은 아니었을 거예요. 떠나고자 결심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거죠. 더 이상은 꿈을 멈출 수 없어서 그는 모든 걸 정리하고 여행을 떠나요. 손에 쥐고 있는 돈은 얼마 없어요. 구체적으로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 계획이나 목적은 없어요. 그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꿈이 그를 이끌고 계속 걷고, 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엉뚱한 춤을 추는 걸로 세계 이곳저곳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해요. 그는 그렇게 꿈을 이룬 걸까요? 글쎄요.

크리스(Chris)의 꿈은 뭐였을까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가진 돈을 다 기부한 채. 배낭 하나에 카메라와 책 몇 권을 들고 알래스카로 떠나 자연에서 자유를, 야생이 있는 곳에서 노래하고, 소통하고, 단절되고, 책을 읽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무언가를 남기고, 그리고 죽는. 그게 그의 꿈 이였을까요? 정말 그렇게 되는 게 꿈 이였다면 동정해야 할까요. 질투해야 하나요. 세상에 그런 꿈 따위는 없다고 매몰차게 비난하며 무시해야 하는 건가요. 자유는 어디에 있고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톨스토이의 글에 행복은 나눌 때만 실제가 된다고 (happiness is only real when it’s shared) 자신의 말을 덧댄 그는. 행복한 걸까요. 사랑도, 돈도, 명예도, 신념도, 믿음도, 명성도, 공평함도. 꿈을 떠나 과연 어느 하나 진실하게 남을 수 있을까요. 살면서 뭔가를 간절하게 원한다면 가서 두 손으로 꽉 붙잡으라는 말은. 도전일까요. 포기일까요.

다시 메모를 바라봐요. ‘나는 꿈이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감입니다.


Into the Wild (2007)

Director - Sean P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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