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de Runner (1982)

by stel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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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눈물은 지독하게 인간적이었다. 로이(Roy)는 죽기 직전에 데카드(Deckard)를 구한다. 로이는 정말 인간이고 싶었다. 프로그램된 자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한 인간이고 싶었다. 너무도 짧은 정해진 수명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통제되어 정해진 채로 죽고 싶지 않다고. 그런 자기주장을 하는 인간. 원하지 않는 모습에 견딜 수 없어 발버둥 치는 숨 쉬고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정말 살아 있는 인간. 로이의 삶의 가치는 인간적인, 정말로 인간적이고 싶었다. 완벽하게 흉내를 내고 그 모습이 고정되어 버린 채 사라지는 게 아닌. 마지막까지 정말로 인간적 이려고 투쟁했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적이라는 추억에 대한 기억인가. 혹은 인간적이라고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감정인가. 아니면 인간적이라는 행동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서 행동한다면. 과연 그것을 인간적이라고 동의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애를 써도 결국 로이는 자신의 굴레와 한계에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 고작 벗어났다.라고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완벽한 리플리칸트(replicant)도 인간적인 것처럼 불완전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비를 맞으며 그는 자신의 말을 허공에다 남긴 뒤 고개를 떨어뜨리며 사라진다.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 마저 모든 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한계를 벗어나고 싶었던 로이가 그 한계 안에서 죽는. 인간이 되고 싶었던 리플리칸트가 리플리칸트 인체로 죽은 게 더욱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역설은 그의 말처럼 허무하다. 빗속의 눈물처럼 공허하다.

‘이 모든 순간들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겠지. 빗 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2.
길에서 서럽게 울었다.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불필요한 반복이었다. 세상도, 나도, 모든 것이 전부 다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져 가기를 바랐다. 그런데도 나는 세상을 사라지게 할 용기는 없었다. 그것은 용기를 낸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 혼자만 서러워하며 억울해하며 그저 나 혼자만 사라지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 혼자서조차 사라질 수 없었다. 나도 세상에 엉켜 있어서 혼자만의 일로서 사라지거나 생겨나거나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이럴 수는 없다고. 이런 건 너무도 부조리하다고 따질 수도 없었다. 삶은 무의미했다. 불현듯 네 생각이 났다. 너에게 이 세상은 너무도 가혹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네가 가지고 있을 희망이나 믿음은 너무도 초라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서러웠다. 무기력하게 비를 맞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고, 그렇게 무의미한 것에서조차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던 어리석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마침 그때 비가 왔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하염없이 비를 맞았다. 비를 피하려 했지만 이미 젖을 만큼 다 젖어버려 피할 필요도, 의미도 없어졌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다행이었다. 비 덕분에 우는 모습이 가려졌다. 무척이나 다행이었다. 그렇게 비가 오는 덕분에 아무도 길에 있지 않았다. 비가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무기력하게 비를 맞으며 또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방황했다. 한참을 서성이던 나는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 이제는 더는 아무것도 잃을 것 없어 보이는 노숙자였다. 우산은커녕 아무런 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는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걷다 지친 나는 그의 옆에서 비를 피해 서 있었다. 비에 홀딱 젖은 내 몰골을 위아래로 살펴보던 그는 내게 호통을 쳤다.


“바보냐 너는. 왜 그렇게 비를 맞고 다니냐. 왜 그렇게 멍청하게 울고 서있냐. 비가 오면 피했어야지.”


그렇게 내 던져진 그의 말은 너무도 인간적으로 들렸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다시 길로 황급히 도망쳐 나오면서도 그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바보냐 너는, 비가 오면 피했어야지.’ 정말로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대답을 바라진 않았지만 지금도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네가 물었던 질문에 대해서도 현명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나를 너무도 원망한다. 그래, 정말로 인간적인 건 무엇일까?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일까. 답이 없는 수많은 질문들이 빗속에서 사라지고. 잊혔다.


3.
인간적인, 지독하게 인간적인. 그렇게 세상이 그렇게도 모진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너는 이미 여기에 있지 않으니. 나는 자신이 무기력해지고,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마지막까지 지독하게 인간적이려고 발버둥 쳤던 너를 떠올렸다. 그리고 네게 묻고 싶었다. 거기는 어떤지. 정말로 그곳은 여기처럼 비참하진 않은지. 왜 그렇게 서둘러 먼저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뭐가 그리도 너를 힘들게 한 것인지. 혼자 그런 질문들을 떠올리며 또다시 너에 대해, 그리고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들이 다시금 생각나서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을 한다. 아무것도 관계없다고 웃고 떠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며 살아간다. ‘지독하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독하게 인간적이다. 정말로, 그들은 지독하게 인간적이다. 그리고 나도 ‘그들’이라는 대명사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꼈다. 불필요한 질문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세상을 현실을 잘 보라고 말하는 그들이 무서웠다. 그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상실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공포감에 벌벌 떨면서 이를 꽉 물고 주먹 쥐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있을수록 점점 나는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인간적이지도 지독하게 잔인하지도 못한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고 뒤처진 채 앞으로 나가 지도 제자리에 멈춰서 있지도 못했다. 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둘러 자기 갈길로 흩어져갔다. 길은 수많은 장식과 조명들로 어지러웠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장식과 조명들은 어떤 위로도 편안함도 주진 못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내 아무도 없고 불이 다 꺼져 있는 골목이 나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황급히 뛰쳐나와 다시 길을 찾으려고 이곳저곳을 헤매도 내가 서 있던 길은 거기에 없었다. 길은 나를 사로잡아 삼킨 채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두렵고 혼란스럽다. 서럽고 외롭다. 너무도 가혹한, 너무도 잔인한 그런 세상이. 진심으로 무섭다. 너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너는... 하지만 너는......


Blade Runner (1982)

Director - Ridley Sc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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