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원한 것은 없다고 너는 말했다.
그렇기에 영원성, 지속성에 대한 갈망이 생기는 거라고. 그런 말을 하는 무표정한 너의 얼굴은 영원히 멈춰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시간이 움직였다. 너는 거기에 없었다. 영원히 너를 볼 수 없었다. 너와 함께 있었던 순간은 영원히 사라졌다. 영원히, 그리고 또 영원히. 무한대로 평행을 그리고 있는 선처럼, 무한하게 멀 것 같은 우주의 어느 별처럼. 너의 이름, 얼굴, 행동, 취향, 취미, 생각, 말투, 습관, 버릇, 모든 것은 영원히 사라졌다. 나는 너무 당혹스러워하며 황급히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숫자의 마지막까지 세고 나면 - 그럴 수 있다면 - 그땐 아무렇지 않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원히 사라진 이름에 대해서 영원히 잊어버리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영원 속에 갇혀 버렸다. 아무도 그 무엇도 안에서 나올 수 없는 가장 완벽한 영원 속에 묻혔다. 물론 처음부터 우리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누구든, 어디에서, 언젠가, 어떻게든 끝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은 적어도 서로에게 좋은 결말이길 원했다. 한편으로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대해서는, 누군가는 감정이 격 해져 받아들일 수 없는 마지막이라든가, 진부한 신파의 모습, 또는 별것 아닌 현실적인, 혹은 전형적이고 평범한 클리셰 같은. 결과적으로 그 무엇이 되었든지 ‘마지막’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되면, 그래서 마지막에 대한 두려움이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면. 어쩌면 그럴 수 있다면. 영원히 마지막은 우리 앞에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불안은 애써 가리고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즐겼다. 그때엔 영원히 이런 식으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적어도 나는 그럴 거라 믿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마지막은 떨칠 수 없는 생각처럼 조금씩 다가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결과적으로 행복할 수 없는 걸까. 모든 불행이 나에게 쏟아져 숨이 막히고 지치게 하는 것일까. 처음부터 많은 것을... 아주 거대한 행복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행복할 수 있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기대는 흩어지고 동시에 사소한 것조차도 지치고 힘들게 만들며 원망할 대상 없이 화를 내고 목표 없이 내 던져진 화는 다시 내 주위를 맴돌고 차갑게 얼어붙어 사라져 버린 순간 내뱉어진 원망은 형태를 만들고 모든 것들은 다시 내게 돌아와 깊숙하게 찔렀다.
2.
곧 사라질 것에 대해서 나는 말했다.
우리는 이제 더는 남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너 혹은 나라는 각자도 마찬가지로 사라지고 잊힐 것이다. 언제 어디에선가 있었다는 흔적만 남을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흔적 또한 길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의미도 남지 않을 것이다. 우린 그런 나약한 존재니까. 그렇게 수많은 하루가 또 지나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해도. 사라지고 흩어져 더는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해도. 그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말하거나,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가치라든가, 존재 이유, 목적, 목표 등에 대해 다른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누가 그것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위선이다. 지독한 허풍이다. 하지만 삶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도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모두 이렇다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그럴수록 누군가는 살면서도 삶에 대해 더욱 알지 못하게 되고. 살아 있다고 해도 삶을 쉽게 정의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또한 삶이란 그런 것이다. 보고, 말하고, 생각한다 해도 삶에 있어서 중요한,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아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삶에 있어서 너무도 작고 하찮게 생각되는 모든 것. 굳이 예를 들자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시간이라든가 혹은 다른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소중한 것, 때로는 장소, 그리고 사람들. 바로 그런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진정으로 살아있는 이야기는 누군가가 기록하거나 남겨지는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소해 보이는 한 사람, 또 다른 한 사람, 각각의 그들이 만들어내는 세계가 이야기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두고서 삶은 이런 것이라고 한 마디로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러니까 적어도, 이야기라는 것은 삶을 대하는 방식을 조금은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표현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삶은 이야기가 되고 곧 사라질 것이다. 본디 이야기는 그렇게 사라지고 변형되어 재창조되고 마는 것일 테니까. 하지만 누구의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바로 그 이야기 속에서 이미 지나간 오래된 이야기 기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생명을 얻고 영원하게 된다. 비록 우리가 사라지더라도.
3.
너와 나의 시간이 속도가 달랐을 뿐이다.
나의 시간은 여기 어딘가쯤 멈춰있기를 그래서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고, 너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래 단지 그것뿐이다. 그래서 붙잡지 못했던 거다. 각자의 시간이 너무 빨라서, 혹은 너무 느려서. 만약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혹은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아니 어쩌면 우리가 같은 시간 안에 있을 수 있었다면. 만약 그랬다면 너를 붙잡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결국 그럴 수 있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까. 처음부터 우리는 멀리서 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둘이 스쳐 지나간 순간부터 우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너무도 빠르고 느린 속도로. 그렇게 상대적인 우리의 시간 때문에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문득 무언인가 처음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너와 나의 시차가 느껴졌다. 별이 일 년에 한 번 순환할 때 생기는 시차 궤도처럼 언제부턴가 너와 나는 천천히 서로의 주위를 돌고 또 돌면서 점점 시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 시차 에멀 미가 일었다. 우리는 죽은 거다. 죽은 존재가 된 거다. 이제는 어떤 의미도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고, 그저 오래돼서 기억나지 않는 관계가 된 거다. 아쉽게도 너는 루비가 아니었고 물론 나도 케빈이 아니었다. 너는 갑자기 나타나지도, 갑자기 사라지지도, 너무 완벽한 이상형도, 내가 원하는 대로 변할 수 있지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왜인지 루비와 케빈의 마지막 모습에서 나는 너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을까.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이 내 이야기인 듯 감정이입이 된 것인지... 하지만 이야기는 이야기다. 각각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해도 결국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그렇기에 우리는 우연히 공원에서 다시 마주치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각 서로가 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너와 내가 함께였던 순간은 영원 속으로 사라져 버린 이야기니까. 그렇게 끝이 난 이야기라서 더 이상은 놀라움도 새로움도 없을 테니까. 늦은 밤 너에 대해서 쓴다. 잊어버린 기억과 영원한 추억에 대해서, 새로 창조되는 이야기와 다시는 떠올릴 수 없을 소중함에 관해서. 아마 조심스럽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설렘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사라진다. 영원히.
Ruby Sparks (2012)
Director - Jonathan Dayton, Valerie F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