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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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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서 창 밖을 바라보니 하늘은 어두웠다. 짧게 잠이 들었던건지 아님 아직 새벽 동이 트지 않은건지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손을 창으로 내밀어 손바닥을 펴서 어두운 그림자를 가려본다. 손가락 사이로 흐릿하게 어둠이 보였다. 자세히 바라보고 있으면 혹시 무언가 보일것 같아 한참 동안을 바라 보다가 손을 쥐고 다시 쥔 손을 펴기를 몇번 반복한다. 움켜 쥘려고 하면 뭐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했지만 허공에는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공기도, 온도도, 소리도 잡을수 없었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다는 사실은 그 사실만으로도 무서웠다. 눈을 몇번 깜빡였다. 핸드폰을 들어서 지금 시간이 몇시인지 확인한다.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정리가 안되어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책상 위에는 오래된 워크맨이 있었다. 워크맨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라디오헤드의 파블로 허니 앨범에 You 라는 곡이 나온다. 첫 번째 앨범의 첫 번째 곡. 조용히 기타로 시작되는 노래는 G - B - C - Cm 이런 코드를 계속 반복할 것 같다가 다시 G 코드로 돌아와서 끝이 난다. 어쩌면 내가 하려는 이야기도 그렇다.

내가 태어났던 해에 팩맨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왔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이 극장에 걸렸다. TV 방송이 처음으로 컬러로 나오기 시작했다. TV에서 조용필은 창밖의 여자를 불렀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광주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었다. 물론 그걸 제대로 알게 된 건 훨씬 나중 일이지만. 그해 히치콕이 사망했다, 스티브 맥퀸도, kfc 아저씨도. 공교롭게 내가 태어난 날 존 레넌이 사망했다. 12월 8일 저녁 10시 50분 마크 채프먼은 뉴욕 맨해튼 72번가에 있는 존 레넌의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존 레넌을 향해 총을 쐈다.

나는 매번 1969년도에 태어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1969년은 사람이 달에 처음 발을 내 디뎠고. 우드스톡 락 패스티발이 열렸다. 잭 캐루악이 사망한 해이며, 미군이 처음으로 베트남에서 후퇴했던 시기. 가장 히피스러운던 해. 혹시라도 내가 태어날 연도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1969년도로 선택했을 것이다. 왠지 1980년은 뭔가 암울했던 시기였다면. 1969년은 살아 숨 쉬는… 그렇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희망적인 것을, 평화로운 것을 시도해보려고 했던 시기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가 태어난 해가 달랐다면, 만약 그랬다면 아마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지금 듣고 있는 워크맨은 1980년 내가 태어난 해에 아버지가 샀던 소니에서 첫 번째로 나온 워크맨이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집의 한쪽 벽을 LP로 빼곡히 채웠다. 대부분의 LP는 클래식과 재즈 종류였다. 아버지는 집에서 음악을 듣는 걸로는 부족했는지 워크맨이 처음 나오자마자 일본에서 사 오셨다. 하지만 워크맨은 집 밖에서도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의도와 다르게 집 밖으로 나온 적 없었고 3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쓰고 있다. 나는 처음 아버지의 워크맨을 쓸 때부터 지금까지 고장 나서 멈췄을 때마다 새롭고 좋은 플레이어로 바꾸기보다 항상 고쳐 쓰곤 했다. 아마 그렇게 고쳐 쓰고 있다보면 어린 시절 멈춰있던 기억들이 다시 고쳐질 것 같은 기분이 때문 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번이고 워크맨을 고치고 또 고쳤지만. 과거와 지금의 나는 이어지진 않고 뚝 떨어져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멈춰진 어린 시절 기억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의자에 앉아있는 뒷 모습이었다. 어린 나에게는 너무도 크고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는 아버지의 뒷 모습은 바위 같았다. 사람의 발걸음이 없는 깊은 산 속에 이끼가 잔뜩 낀 채로 있는 커다랗고 단단한 바위. 바위여서 늘 당연한 듯 제 자리를 지키고, 바위이기에 다른 누구에 의해 흔들리지 않으며, 그리고 바위이기에 어떤 일에도 변하지 않는.

아버지는 작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작가는 아니고 작가였다. 한때 오랜 시간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없애고 다시 또 만들기를 반복하다가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책상에 앉지 않으셨다. 그래도 글재주가 있으셨던 아버지는 1969년도에 처음 등단했다. 그래서 작가라고 불리는 게 맞다. 처음 등단 했을 때는 주변의 많은 기대를 받았다고 한다. 문단에서도 기대되는 신인 작가로 알려지고 처음 발표했던 글은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다. 그 뒤 아버지는 잘 팔리지 않은 책 한 권을 내고는 더 좋은 글을 써야겠다면서 책상에서 바위가 되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혼자 키우셨다. 아버지는 매번 가족의 중요함을 늘 말씀하시곤 하셨다. 아버지는 매번 무언가를 쓰려고 시도했다. 아버지는 늘 글의 어느 지점에서 멈추곤 했다. 바위보다 더 큰 무언가가 앞에 막혀 있는 듯 아버지는 그 지점을 넘지 못했다. 아버지는 글을 접은 뒤 돈을 벌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재산이 많아서 오랫동안 그렇게 글만 쓸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무언가에 정신이 팔린 듯 돈을 벌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땅을 샀다. 아버지는 건물을 샀다. 아버지는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는 책상에 다신 앉지 않았다. 아버지가 책상에서 멀어지면서 LP와 워크맨은 내 것이 되었다.

테이프의 한쪽 면이 끝나서 워크맨에서 테이프를 꺼내 뒤집었다. 조금의 잡음 다음에 글랜 굴드의 피아노 곡이 들렸 다. 라디오헤드에 이어서 글랜 굴드가 나오는 테이프라니... 범석이 형의 취향 참 복잡하다. 글랜 굴드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에서 그가 피아노를 치다가 내는 허밍을 듣고 있으면 가끔은 궁금한게 그는 그가 연주를 하면서 내는 허밍을 자신만의 개성 혹은 매력 이라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소리를 집어 넣었을까. 아니면 음의 세계에 푹 빠진 상태라 생각지도 못한 버릇이 툭 튀어 나온 것일까. 그런 작은 차이가 그를 만든걸까. 아님 글랜굴드는 원래 글랜굴드였기 때문에 그의 버릇까지도 용서가 되는걸까.

이런 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고있는 내 일상은 단순했다. 매일 늦으막히 일어나서 대충 씻는다. 머리를 말리면서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먹을 것을 찾는다. 마침 이틀 전에 배달 시켰던 피자 두 조각이 남아있다. 식은 피자를 그대로 꺼내 먹으면서 책상에 앉아 오늘 합주할 곡을 찾아본다. 정리가 안되서 어지러워져 있는 책상 한켠에는 몇 달째 방치되있는 시나리오가 있다. 습관처럼 시나리오를 써놓은 것을 뒤적거린다.

‘너와 나의 바다’

볼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제목인데도 사실 다른 제목은 생각이 안났다. 시나리오 중간에 항상 껴 있는 펜을 꺼내 잡고 뭔가 쓰려고 하다가 몇 단어를 옆에 메모를 해놓고는 다시 내려 놓는다. 펜을 잡기 직전까지 늘 머리속에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이야기가 맴돌아서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될것만 같은데 막상 한줄도 채 쓰기전에 머리속 가득 차있던 주인공의 대화나 상황 그리고 배경들이 텅 비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언제나 잠깐 떠올렸던 것 들을 한쪽 구석에 조금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하고는 내려놓는다. 덕분에 시나리오 옆에는 갈피를 잡지 못한 단어들이 흐틀어져 놓여있다. 언제 썼는지 알수 없는 낙관적 이라는 단어는 왜 쓰여있는지 불안함 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도대체 뭐였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대충 해가 넘어갈때 즈음 집 밖을 나와서 스쿠터를 타고 합주실로 갔다. 아직 형들은 오지 않았다. 담배를 한대 피우며 워크맨으로 계속 음악을 들었다. 노래는 엘리엇 스미스의 ballad of big nothing. 이 곡도 C 코드로 시작해서 C 코드로 끝난다. 절반 정도 듣고 있으니 범석이 형이 도착했다.

“안들어가고 뭐하냐?”

범석이 형이 물었다.

“형 기다렸지.”

범석이형은 씩 웃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어서 재희형이랑 세영이가 함께 왔다. 우린 연습실로 내려가서 악기를 셋업했다. 범석이형은 긱백에 매고 온 일렉기타를 꺼내서 이펙터에 연결한뒤 튜닝을 하고 재희형은 드럼세트의 높이 조절을 했다. 세영이는 키보드앞에 앉아서 오늘 연습할 악보를 꺼내 보고, 나는 베이스를 앰프에 연결했다. 우린 두시간정도 합주를 하고나서 형들과 함께 야식을 먹는다는 핑계로 술을 마시러 갔다. 소주를 대여섯 병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게 늘상 연습의 마무리였다.

“그러니까 형 누군가는 부끄러워 해야 하는거 아니냐고요...”

내가 말했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거 있냐. 다 더럽다 생각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사는거지.”

"마음만 있다고 옳고 맞는게 있다고 그게 생각하는대로 다 되는건줄 알아? 현실은 이상이랑 다른거야 답답아."

재희형이 말하고서 우리는 다시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건 범석이 형이였다.

“그... 내일 공연 늦지 말고. 재희 너도 오늘 틀린부분 신경좀 써... 맨날 틀리잖아. 세영이도 컨디션 관리 잘 하고...”

범석이형은 화제를 돌렸다. 우리는 또 술잔을 비우고 다시 비웠다. 새벽 2시가 되서 가게가 문을 닫을때 헤어졌다. 스쿠터는 합주실 앞에 놔두고 집까지 걸으면서 워크맨으로 노래를 들었다. 닐 영의 harvest moon이 나오고 이어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there she goes again이 나온 다음 다시 처음듣던 라디오헤드 노래가 나왔다. 문득 멈춰서서 주머니의 담배를 꺼냈다. 늦은 여름 새벽 공기는 덥진 않았지만 걷는동안 약간의 땀이 났다. 담배불이 타 들어가는걸 바라보며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서 만지작 거리다 홍에게 뭐하냐고 문자를 쓰다가 이미 시간이 새벽 3시가 다 되었다는걸 떠올리고 쓰던 문자를 지우고 다시 새로 썼다.

’내일 8시 공연’

담배를 입에 문채 한참을 바라봤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니 담배 불이 파르르 타 올랐다. 기침을 한번 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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