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by steloy

2.

눈을 떠보니 처음 보는 방에 누워있었다. 방에는 커다란 책상과 커다란 의자 그리고 꽃병이 놓여있었다.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있는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있었고 방 한가운데에 있는 책상 위엔 오래된 스텐드에 불이 켜져있었다. 책상을 손으로 스윽 만져봐도 먼지 하나 없었다. 벽은 하얗고 아직 덜 마른것 처럼 보였는데 딱히 새로 칠한것 같은 냄새는 나진 않았다. 아니 방에선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커튼 반대편 벽에는 텅 비어있는 책장이 있었다. 바닥에는 흰색의 카펫이 깔려있어서 푹신푹신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려 했는데 천장이 너무 높은건지 천장이 없는건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안을 한바퀴 휙 둘러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문이 없네…”

나는 혼잣말을 했다. 방에는 문이 없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문이 없다는걸 깨닫고 창문에 걸려있는 커튼을 열었지만 창문도 하얀 벽으로 막혀있었다. 의자에 앉아서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을 했다. 비현실적인거 보니 꿈 이라고 생각했다. 꿈이라고 생각하니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잠에서 깨기만 하면 여기서 나갈수 있을거니까. 그런데 잠이 깨질 않았다. 책상위에는 알아보기 힘든 글이 써있는 노트가 놓여있었다. 글은 단어가 쪼개져있었고 자음과 모음 이 흐트러져있고 외국어가 섞인채로 글씨가 쓰여진 위에 겹쳐서 다시 쓰여져있거나 검게 칠해서 지워져있었다. 읽어보려고 손을 내밀자 글은 흩어져 도망치고 사라졌다. 글이 사라진 쪽으로 고개를 들자 의자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누구시죠?
그러는 넌 누구지?

꿈이요?

응 꿈이야 알고 있잖아.

제 꿈인가요?

물론일쎄 청년, 내 꿈이였으면 이렇게 재미없는 방일리 없지 휴양지에서 수많은 미녀들에게 둘러 쌓여서 파티를 벌 이고 있을거야.

그럼 제 꿈에는 왜 나오신거죠?

제가 글을 쓴다는건 어떻게 아셨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원래부터 손에 있었던건지 스티브씨는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뭔가 마실거라도 있는지 둘러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어색한 침묵은 길어졌다. 스티브씨는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것 같았다.

조니워커 라고하네.

네?

지금 마시고있는 이게 조니워커 라는 위스키지.

네… 그렇군요.

재미있는 이름이야 조니워커라니. 한잔 마실텐가?

어제 과음을 해서 그런지 술 보다는 물을 마시고 싶은걸요.

그래? 아쉽게도 술은 충분히 있지만 물은 없는것 같군.

그러게요 아쉬운걸요.

그런데 조니워커라는 이름이 왜 재미있는건지 궁금하지 않나?

글쎄요... 그냥 술 이름 아닌가요?

재미있는 사실은 술에 잔득 취하면 똑바로 걸을수가 없다는거지.

그렇죠.

그런데 이름에 워커를 붙였다니 아이러니 아닌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술이라도 취하지 않으면 도무지 걸어갈수 없는 길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 괜찮은 이름이야.

스티브씨가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멀리서 날카로운 경고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뭔 소리죠 이건?

보통은 그렇지.

경고음은 점점 크고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스티브씨는 잔에 남은 위스키를 다 마시고 일어섰다.

그럼 이만 가볼까.

그래 라고 말할때 스티브씨는 살짝 웃었다. 그러고 스티브씨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 말을 꺼냈다.

난 뭔가를 믿으면 그걸 위해서 미친듯이 싸운다네 청년.

벽으로 둘러 쌓여있던 방은 스티브씨가 나가려고 하니까 문이 생겼다. 스티브씨는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문은 사라지고 방에는 다시 나만 혼자 남겨졌다. 어쩐지 나는 예전보다 더 초라해지고, 또 초라하고, 그냥 초라한,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느껴졌다. 경고음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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