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굴] (연상호)
*스포 있음
영화 <얼굴>은 <부산행> <지옥 1,2> <정이>등으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의 최신작이다. 지금은 배우 본업을 쉬면서 출판 일에 도전하고 있는 배우 박정민이 출연하며 화제가 되었던 작품으로, 초저예산으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00만 관객의 흥행을 이끌기도 했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늘 화제가 되고 인기 많은 배우가 나왔으니 이끌어낸 흥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경우 실망을 안게 될 정도로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았는데, <얼굴>도 그런 작품일까 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이게 웬걸, 시놉시스만 간단하게 알고 영화를 틀었으나, 주인공의 어머니가 피복 공장 노동자였단 이야기가 나온 순간부터 깨달았다. 아 이것은, 기존의 연상호 스타일 공포 영화가 아니구나.
백골 사체가 발견된 이래, 동환의 기억 속에서 한번도 존재한 적 없던 어머니란 존재가 부활한다. 평생 만나본 적 없는 친척들과 조우하고 모친의 과거 행적을 따라가는 길은 범상치 않다. 어머니에게 위해를 가했을 거라고 생각한 남자 앞에서 진실을 듣는 순간, 동환의 지난 40년이란 시간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동환의 모친 영희는 온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 이야기로 존재한다. 진짜 영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얼굴은 못났어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고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인물이었음은 알 수 있다.
그런 영희를 죽음으로 몰아세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폭력’이다. 사람을 도구처럼 쓰고 폭력이 당연시되던 무법의 시대가, 그와 그의 가족을 궁지로 밀어넣은 것이다.
지금도 ‘동대문’하면 서울 의류사업의 메카로 불린다. 1960~80년 사이 활발하게 진행된 의류사업 덕분에 그런 아명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이면에는, 자기 몸하나 겨우 끼워넣을 수 있는 작은 칸 안에서 잠도 화장실도 아껴가며 일했던 피복 공장 여공들의 피와 땀 또한 있었다.
영화에서 영희가 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어렵게 허락 받았음에도 결국 옷에다가 실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당시 ‘시다’들이 경험한 일의 극히 일부다. 영희와 그의 동료들은 이름조차 지워졌고, 일본어로 아랫사람을 뜻하는 ‘시탓파리’에서 유래한 ’시다’라는 은어에 숫자만 붙여져 불렸다. 그들에겐 생리대를 교체할 시간도, 밥을 먹을 시간도 잠을 잘 시간도 없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공부도 포기하고 온 몸을 바쳐 일했던 사람들. 그들에게 늘 돌아오는 건 일한 것보다 못한 급여와 폭언, 폭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희는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을 위해 목소리를 올린다. 그 모습에, 평화시장 피복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올렸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온 몸을 불태워 그 현실을 알리려고 했던 청년. 슬픈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된 것은 한참 후라는 점이다. 그들의 노고와 눈물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요근래의 일이다.
영희와 영규는 폭력과 위선이 정당한 세상을 살았다. 정의를 불태워도 돌아오는 것은 희망 없는 죽음뿐인 세상. 영희의 얼굴이 지워졌다는 것은, 폭력이 대물림되던 시대가 희생자들의 얼굴을 통째로 지워버렸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가장 처음으로 연상호 감독 작품을 접했던 건 애니메이션인 <돼지의 왕>과 <창>이다. <돼지의 왕>은 더빙이 아쉬웠으나 충격적인 결말이 인상적이었고 <창>은 단편으로서 완벽한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두 작품 모두 공통점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폭력’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얼굴>은 이 두 작품과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누군가의 잊힌 얼굴을 소재로 삼아 그 미스터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여타 서스펜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진 진정한 힘은,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이용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장 감추려고 하는 폭력의 역사를 여실히 드러낸다는 점이었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하게 차별점이 있어서 최근 나온 연상호 감독 작품 중에 가장 맘에 들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PD라는 인물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려면 어느 인물이든 욕망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법칙에 따라 설정된 PD역할이 다소 인위적이게 느껴졌다. 대놓고 이 인물은 이런 역할을 할 거예요, 얘는 도구예요, 하는 인물이어서 몰입에 방해됐다. 이런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려면 필요한 인물이었을 순 있지만 그렇다면 ‘방송을 내보내야 하니까 어떻게든 촬영을 하려는’ 납작한 서사보다 조금 더 갈등요소를 집어넣어서 그려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