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포일러 있음
요근래 내 타임라인을 장악해버린 영화로, 혼자 보기보다 명절이라 본가를 방문하는 겸 아부지랑 같이 봤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는 늘 정해진 결말이 있다. 그 결말이 창작자의 염원으로 재편집되어 해피엔딩이 되더라도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애틋함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단종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단’명해서 ‘단’종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어린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 뿐이다. 왕이 되었지만 자리를 빼앗기도, 유배도 당했는데 사약까지 마셔야 했던 인물 아닌가. 정통 왕족으로 태어나 ‘이홍위’라는 특이한 이름까지 부여받을 만큼 고귀한 신분이었음에도 역사가 기록하고 묘사한 그는 참 조촐하기 그지 없다.
영화는 그 조촐하기 그지 없는 왕을, 한 인간이자 어린 소년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그리고 그 묘사를, 지금의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한 남자의 시선을 통해서 비춘다. 극 중 그려지는 단종과 엄흥도, 그리고 영월 사람들의 모습은 감독의 상상이 더해진 픽션이겠지만, 이보다 더 거리가 있는 관계였다 할지라도 단종과 영월 사람들의 마음은 영화 못지 않았을까 지레짐작해본다.
엄흥도라는 인물이 있었고 영월 사람들이 그를 매우 아꼈다는 것은 이번 영화를 통해 알았다. 왕족과 서민들이 친해지는 방식이 너무 현시대의 사람들의 망상 그 자체여서 우스웠지만, 앞서 말했듯 이미 정해진 비극이라, 이 따뜻함은 언젠가 서슬퍼런 칼에 갈기갈기 찢기겠거니 싶어 가슴 졸였다.
정해진 비극이 있기에 앞부분은 유독 유치하고 웃겨졌으리라. 장항준 감독을 영화보다는 예능에서 더 자주 접해서 그런지 그의 예능감과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시너지를 잘 발휘했다. 같이 영화를 보던 많은 사람들이 크게 웃을 정도였고, 그 개그코드가 안 맞는 나조차도 어떤 순간에는 웃음이 피식 나왔다. 절대 그 시대에 없었을 것 같은 개그와 말투 때문에 고증은 저리가라가 되었긴 하지만, 대중성을 노리고 만든 작품이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모두 차치하고 인상 깊었던 것은 유지태 배우의 한명회였다. 이렇게 서슬퍼런 악당의 얼굴이 있을까. 한명회 나올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화면을 다 채울 수 없는 그 풍채와 아우라에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태산이가 곤장을 맞는 장면에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래서 유독 아쉬운 건 애초에 정해진 역사라 한명회라는 인물이 납작하게 묘사된 점이다. 한명회가 누군지 모르면 왜 저러는지도 알 수 없는데, 단종에다가 포커스를 맞췄다고 해도 한명회라는 인물이 그냥 나쁜놈으로만 보인다. 물론, 이건 단종이나 금성대군같은 인물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입체적인 건 매화나 엄흥도 같은 주변인물들 정도였다. 제목이 “왕과 사는 남자”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외에도 컷이 점프하듯 전환되는 구간이 적지 않아서 순간 어디에서 어디로 넘어갔는지 분간이 잘 안되는 것도 아쉬웠다. 조금 더 멋진 편집은 어려웠을지. 화제의 그 호랑이는 괜찮았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준.
영화 후반부 부터는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펑펑 흘러서,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절정에 이르렀다. 극장 안이 눈물 바다였다.(나중에 보니 아부지도 울고 계셨다.) 다 아는 역사라 뻔한 결말에, 창작자의 의도와 재해석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아무튼, 대중성을 생각하고 오락영화로 만든 것 치고는 적당하게 웃기면서 심각하게 신파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이대로 천만까지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