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과 자존감에 대한 생각 | 사심 史心 인문학 7화
사전에서 말하는 자존심(自尊心)은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을 말해요. 사회생활에서도 관련이 있는 말이기도 하구요. 체면(다른 사람을 대하기에 떳떳한 모습이나 도리)과 함께 사람의 본능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자존심 때문에 싸우기도 해요. 비슷한 단어로는 자부심이 있는데,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뜻해요. 자존심은 남으로부터 자기를 당당히 표현하며 보호함을 뜻해요. 은어 “~부심”은 정의와 관계없이 자존심에 우월감을 추가하여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할 때 쓰는 편이죠.
자존심은 지나치게 강하면 독이 돼요.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집단이 요구하는 행동을 거부하고 혼자 하고 싶은 대로 고집을 부려 집단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이성적이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조직 생활에 해를 입혀요.
게다가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면 자기 자신도 망칠 수 있어요. 만일 시비가 붙었는데, 상대가 만만해 보인다고 건드렸는데, 그 상대가 더 강한 사람이었다면 참교육 당하는 수가 있어요. 자존심 그게 뭐라고 괜히 자존심 지킨다고 감정에 치우치다가 화를 부를 수 있다는 뜻이에요. 순간적인 감정을 일단 참고 적절하게 대처를 하는 것이 나아요.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예 자존심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냥 강한 상대 편을 맹목적으로 들어주면서 잘 보이는 게 현명할 수도 있어요. 뭐라도 얻어 먹는 것은 있으니까요.
자존심은 너무 약해도 문제이긴 해요.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없고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이게 심해져서 대인 기피 증상이 생겨 사회생활이 어려워져요.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신체적 또는 심리적 폭력에 노출되어도 거기에 맞서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일방적으로 당하게 되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일명 “호구”가 되는 거예요. ㅠ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존심이 돈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질 수도 있긴 해요. 자존심을 잘 이용하면 돈을 쫓아가지 않고 자기 소신에 따라 삶을 살 수도 있으니까요. 이성적인 판단에 앞서 자존심은 그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자신감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다만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능력이나 돈 없는 사람들도 쓸데없이 자존심을 내세운다는 사실(저런). 물론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자존심에 대해선, 자존심이 뭘 해주는 것도 아니라서 이 자존심이 독이 될 수 있으니 필요할 때는 자존심을 낮출 필요가 있긴 해요.
자존감과 혼동할 수 있긴 한데, 잘 보면 엄연히 달라요. 자존심과 자존감이 둘 다 높을 수도 있고, 둘 다 낮을 수도 있고, 둘 중 하나만 높을 수도 있는데 이에 따라 성격이나 말, 행동 등이 차이가 나요. 이런 사람들 중에서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유독 자존심이 강하긴 해요. 그런데 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다수는 자기 자존심은 중요한데, 다른 사람의 자존심은 개무시하는 이중적인 형태도 더러 있어요.
대표적으로 사이어인의 왕자였기 때문에 자존심이 굉장히 센 <드래곤 볼>의 베지터가 있죠. 일단 이 부분은 <드래곤 볼> 시리즈를 좀 열심히 본 사람들은 이해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베지터의 자존심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하고 갈게요.
베지터는 손오공(사이어인 카카로트의 지구 이름)이 항상 자기를 뛰어넘는 것을 보고 항상 열등감에 시달렸죠. 무천도사 밑에서 무술을 같이 배웠던 친구 크리링의 2번째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 분노한 손오공이 먼저 슈퍼 사이어인이 되었고, 셀이 자폭할 때 손오공이 순간이동 기술을 이용해 희생을 최소화했는데도 더 강해져서 돌아온 셀이 베지터를 공격할 때 손오반이 한쪽 어깨를 다쳐가면서 베지터를 구하면서 베지터는 자존심이 또 긁혔어요.
손오공이 저승에서 잠시 이승을 방문했을 때도 베지터는 무술대회에서 자신과의 대결을 미루고 바비디의 추종자들을 추적하러 계왕신을 따라간 손오공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베지터는 의도적으로 바비디에게 사악한 마음을 드러냈어요. 마인이 되면서 힘이 더 강해졌지만, 이 때문에 마인 부우가 부활했고 손오공과의 대결을 또 미뤄야 했죠. 베지터가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자폭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손오천과 트랭크스가 퓨전을 배우기 위해 시간을 끌던 손오공이 슈퍼 사이어인 3을 선보인 것을 알게 된 베지터는 또 자존심이 상했죠.
물론 손오공에 의해 가족들이 다 부우에게 먹혔다는 것을 알게 된 베지터는 잠시 자존심을 접고 손오공과 포타라(계왕신 귀걸이) 합체를 하여 베지트(베지터 + 카카로트)가 되었죠. 물론 보호막을 치고 부우의 몸 안으로 일부러 들어갔다가 합체가 분리 되어 버리자 베지터는 자존심 때문에 귀걸이를 떼어 버렸고, 나중에 계왕신의 세계에서 싸울 때도 손오공과 베지터 모두 사이어인의 자존심 때문에 합체하지 않고 싸워요.
이 과정에서 베지터는 손오공이 자신보다 뛰어난 상대인 것을 그제서야 인정하고 손오공이 넘버 원이라고 치켜 세워주죠. 이후 베지터는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으는 사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시간을 끌어 주죠. 나중에 사악룡 1성장군과 싸울 때 부르마의 기술적 도움을 받아 슈퍼 사이어인 4의 경지에 도달한 베지터는 자존심을 한 수 접고 손오공과 퓨전을 시도, 오지터가 되어 30분 동안 압도적인 힘을 선보이긴 해요(물론 힘을 너무 많이 써 버린 손오공의 슈퍼 사이어인 4 변신이 풀려 버려 다시 퓨전을 하진 못하지만).
자존감(自尊感)은 자아존중감(自我尊重感)의 줄임말로, 자기 스스로를 가치를 갖춘 존재로 여기며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감정을 말해요. 일상적으로 쉽게 생각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 정도로 보면 돼요. 얼핏 보면 자존심과 비슷해 보이는데, 자존심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존중하거나 받들어 주길 바라는 감정을 의미하지만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이라 보면 돼요. 자존감은 꽤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크고 자존심은 나를 돌아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경의만 바라는 인간상을 두고 말하는 이기적인 이미지로 쓰이는 거죠.
자존감은 심리학적으로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손상된 자존감 : 외현적 자존감은 낮아 보이지만 오히려 내면적 자존감이 꽤 높은 편
취약한 자존감 :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괜찮아 보이는데 오히려 내면적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
1970년대부터 서방 선진국의 정부와 각종 단체로부터 자존감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자존감 운동(Self-Esteem Movement)이라 부를 정도로 자존감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어요. 이 운동의 기본적인 태도는 개인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의 근원이 낮은 자존감에 있다는 것을 이해함에서 시작됐어요.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Nathaniel Branden)은 불안과 우울증, 친밀감이나 성공에 대한 두려움, 배우자 폭행 또는 자녀 성추행에 이르기까지 낮은 자존감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심리적 문제는 찾기 힘들다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들의 원인을 낮은 자존감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이었던 존 바스콘셀루스(John Vasconcellos)는 1986년 캘리포니아 주에 자존감과 개인 및 사회적 책임에 관한 태스크 포스(Task Force on Self-Esteem and Personal and Social Responsibility)를 구성하고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게 했어요.
사실 자존감이 잘 형성되는 큰 요인 중 하나는 아빠와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긴 해요. 따뜻하고 지지하는 방식으로 양육하는 것이 어린이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도 있었구요. 그래서 어린이의 생애 초기 아빠와 엄마의 태도가 자존감 발달의 주요 원천이 되는 거예요.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이가 보살핌과 존경을 받고 있다는 안정적인 감각을 발달 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 거죠.
건강한 자존감을 만드는 경험 : 경청, 존중하는 말, 적절한(!) 관심과 애정, 성취감에 대한 인정, 실수나 실패에 대한 인정 및 수용
낮은 자존감을 만드는 경험 : 가혹한 비판이나 비난,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무시, 조롱, 놀림, 항상 완벽할 것이라는 기대감
미국이 20세기 말 양육 방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자, 그 전까지 양육 태도에 있어 전통적인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강했던 다른 대륙 출신의 이민 가정과 큰 비교가 됐어요. 아시아, 히스패닉, 중동, 동유럽 등에서는 그야말로 부모의 권위가 상당히 컸거든요. 물론 세부적인 요인들은 각자 달랐지만. 대표적으로 유교 문화가 강했던 동아시아만 해도... 그렇죠.
특히 유교의 학문 연구 분야 중 중국 북송 시대에 발달한 성리학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어요. 조선 시대에 숭유억불 정책을 펴면서 성리학 이외의 다른 진리는 개무시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 유독 가톨릭(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성리학 이외의 다른 학문인 서학을 연구했던 선비들의 대다수가 조선 정조의 신임을 받았던 남인과 시파(사도세자가 죽을 때 정조에 대한 처벌을 반대했던 붕당)의 젊은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여 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면서 이를 이용한 벽파(사도세자가 죽을 때 정조까지 처벌하길 원했던 붕당)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것이 바로 신유박해(1801)였어요.
다만 우리나라는 조선 말기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거나 유학한 사람들이 꽤 많아지면서(이승만 전 대통령도 미국 유학파 중 하나), 미국의 학술 자료를 토대로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그들의 주장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를 존중하는 양육 태도를 갖는 가정도 조금씩 늘기는 해요.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혼내는 것을 가급적 자제하는 사람들도 늘어났구요(다만 “왜 우리 아이 기를 죽이고 그래요.” 식으로 어깃장을 놓는 비뚤어진 사람들도 있음).
TMI로 조선 말기에 정치적으로 희생양이 된 선비 집안 중 하나가 다산 정약용의 집안이었어요. 다산의 4형제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났으니... 아예 서학 연구도 안 하고 신자들과 교류도 없었던 첫째 정약현만 처벌을 받지 않았고, 둘째 정약현은 흑산도로 유배되어 거기서 죽었죠. 셋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복자(2014년 시복)는 당시 우리나라 가톨릭 평신도 지도자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이 때 순교했고(맏아들 정철상 가롤로 복자는 신유박해 때 같이 순교), 넷째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죠(다산의 책들 중 대부분이 강진에서 쓴 책이긴 함). 뿐만 아니라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복자의 둘째 아들인 정하상 바오로 성인과 딸 정정혜 엘리사벳 성인도 기해박해(1839) 때 순교했을 정도로 다산의 집안은 우리나라의 너무 권위적인 성리학 사상에 의한 희생양이 되어 버린 거죠.
자존감은 높은 자존감, 낮은 자존감, 안정적 자존감, 방어적 자존감, 나르시시즘, 팽창된 자아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요. 안정적인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격려가 굳이 없어도 긍정적으로 높은 자존감을 잘 유지할 수 있어요.
방어적인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존감이 깨지기 쉽고 비판에 약하죠. 로젠버그의 자존감 척도(Rosenberg`s Self-Esteem Scale)에서 안정적인 자존감을 가진 사람과 방어적인 자존감을 가진 사람 모두 긍정적인 척도가 나올 수는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방어적 자존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잠재의식적인 자기의 의심과 불안감을 내면적으로 갖고 있어 비판을 받는 것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럴 경우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싶어할 수도 있어요.
나르시시즘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사랑을 나타내는 성향이 있어요. 자기 가치에 대하여 인식을 부풀리는 것을 잘 하구요. 다만 자존감이 높고 나르시시즘 성향이 낮을 수 있으며, 자존감도 높고 나르시시즘 성향도 높을 수 있어요. 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과장된 존중 이외에도 권리, 착취, 지배와 같은 특성이 있어요. 자존감 높은 사람들과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비슷한데, 나르시시스트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별하고 우월하다 생각하는 점의 차이가 있어요.
자기계발을 위한 책들이나 인터넷에서 자존감이라는 표현이 많이 알려지면서 서로 형태가 비슷한 자존심과 자신감, 자존감 등에 대한 구분이 많이 이뤄지고 있어요. 자존심은 보통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긍정적으로도 쓰일 수 있으며, 자신감이 주로 긍정적으로 쓰이지만 부정적으로도 쓰일 수 있어요. 자존감은 주로 긍정적으로 쓰이구요.
자존감과 자존심은 모두 자신을 좋게 평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에요. 그러나 자존심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 속에서 얻는 긍정이고, 자존감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긍정이에요. 이에 따라 자존심은 끝없이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존재할 수 있으며 패배할 경우 무한정 곤두박질 칠 수 있어요. 그러나 자존감은 자신에 대한 확고한 사랑과 믿음이기에 경쟁 상황에 따라 급격히 변하지는 않아요.
이런 내용들을 보면 자존심과 자존감의 근본적 차이는 결국 믿음(Belief)인데요. 서로 대립하거나 연결되는 개념은 아니고 별개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편해요. 자기계발서에서 쓰이는 자존감의 주관적인 정의는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마음”이에요.
그럼 이런 질문이 올 수도 있어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게 지속되면 잘못을 했을 때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냐구요.
그러나 반성을 위해 반드시 자기 존재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어요. 예를 들어 시험을 망친 사람에게 “너 멍청한 거 아니야?” “너 게으르지?” 이렇게 하지 않고, “너는 참 훌륭한 사람인데 왜 성적은 낮을까?” 하는 표현은 사람 개인의 존재 가치가 낮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건에 대해서만 짚을 수 있는 것이죠. 듣는 사람이 가치가 없거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될 오해를 막기 위해 기본적으로 소중한 사람임을 언급해 주는 것이죠. 특정 행동에 대한 비판이면서 사람의 존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특정 행동과 사람의 존재를 동시에 비판하면 극심한 우울과 분노 같은 신체적인 증상이 동반될 수 있어요. 이것이 강력한 감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더 도움이 된다고 착각하기 쉬워요. “너가 멍청하니까 성적이 낮아.” 이런 방식은 극도의 우울감을 동반하기 때문에 공부라는 분야 전체를 두렵고 부담스러우며 자신감이 떨어지는 분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요.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반성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 사건에 국한하여 비판하되,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함께 도와야 해요. 부정적인 행동을 나답지 않은 행동으로 생각하여 반복하지 않게 되는 거죠.
비판 트라우마와 관련된 개인사를 하나 밝히자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누군가에게서 사회 예절에 대해 다시 공부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예절 문제로 민폐를 끼친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그 말이 너무 심한 상처로 들렸고, 그 사람이 결혼 후 이사를 가면서 소식이 끊겼는데 그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사실 싸이월드 일촌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데, 싸이월드 부활 이후 안 들어가봐서... 나중에 들어가면 일촌 끊어야겠음). 사실 비판이라는 명분으로 그 사람에게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말은 목소리만 들어도 너무 날카롭게 들리고 아프거든요. 그런 비판은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고, 사람에게 평생 상처로 남을 수 있어요.
자존감은 20세기에도 심리학이나 의학 등 논문에서 쓰이던 표현이었고, 이후 교육심리학 도서에도 언급이 됐어요. 단어 활용이 정착된 2010년대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쓰여 오늘에 이르고 있죠. 2015년 이후에는 온라인 사전에도 등재가 되었고,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지만 존중하다에 -감을 붙이는 조어로 활용될 수 있다고 했으니 어법에서도 문제는 없어요.
자존감과 관련한 역사 이야기를 잠깐 더 풀자면, 1970~1990년대 북미권의 가정들에서는 “우리 아이 자존감 키워주기”가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어요. 그 당시의 교육 관행이 지금 시대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긴 한데, ‘자존감’이 중요하게 취급된 적은 그 시대가 처음이었다고. 서양의 가정 교육도 이전까지는 자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무조건 칭찬을 해 주거나 자녀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처럼 취급하는 경향은 보편적이지 않았다고 해요. 1930~1940년대 서양의 육아 지침서에는 “만일 당신의 자녀가 떼를 쓰면, 세상이 자기들 맘대로 그리 만만하게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도록 해 줄 것.”이라고 지침이 쓰여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동아시아도 의도적으로 자녀의 자긍심을 깎아내리는 문화적 특징이 있었다고 해요. 자기의 자녀를 의도적으로 비하하는 문화적 특징은 서양 연구자들까지 열심히 연구했을 정도. 현대 대한민국 시대에는 어느 정도 극복 되긴 했지만, 일부 노년층 사이에서는 아직 남아 있어요.
취학 전 자녀를 소개할 때 : “제 xx Shake It 같은 못난 Boy(Girl)들이에요.”
학교 교사에게 자녀에 대해 말할 때 : “제 자식은 때려야만 말을 듣는 Boy(Girl)이에요.”
자녀의 직장 상사에게 말할 때 : “제 자식이 아직 여러모로 불민한 놈이지만 믿고 써 주시니 고맙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되게 가벼운 표현이고, 문화심리학자들은 부모의 비하에 이은 다른 사람들의 추켜세움 과정이 불문율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잠재적 역기능이 최소화 될 수 있었음을 발견했어요. 공동체적인 가치와 질서를 개인이 흔드는 것을 막기 위해 부모가 일부러 낮추고 다른 사람이 높이는 전략을 쓴다는 것. 그 당시는 개인의 개성보다 공동체의 질서가 거의 지배적인 시대였으니까요. 아마 나 같은 순도 높은 INFP 인프피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든 시대였을 거예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21세기에 이런 식으로 자녀를 소개하면 자녀의 미래를 망칠 가능성이 높아요. 나이가 어릴 때 그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자라면서 아이는 점점 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자존감이 낮아질 위험이 높은데, 특히 부모 이외의 다른 사회(학교 친구 등)와 접촉하는 시간이 적을수록 아이게게 자신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되어 더 위험한 사례가 될 수 있어요.
이런 문화적 맥락이 여전히 작용하기도 하는데, 어릴 때부터 빼어난 미모를 지닌 아이에게 일부러 못생겼다고 디스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 아이가 훗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넘쳐 민폐를 끼치지 못하게 하고 겸손함을 몸에 배게 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긴 하지만, 지금 시대의 관점에서는 이해가 되기 힘든 양육 방식이네요. 이런 의도적인 깎아 내리기는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도 존재하고, 특히 선거에서 상대 후보의 표를 빼앗아 오려고 자신의 정책 비전보다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를 통해 유권자들을 자극하는 모습은 선거 시즌마다 뉴스를 보기 싫게 만들어요.
나만 해도 고등학교 시절에 그런 말을 듣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는데, 때마침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가 겹치게 되면서 나는 그 때부터 깊은 우울에 빠졌어요. 입시 준비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것이 결국 지금까지 이어져 공허한 마음이 평상시의 모습이 되어 버렸어요. 물론 지금에 와서는 ADHD가 성인까지 이어지게 되면서 삶에서 이런저런 불편함이 쌓이게 되면서 만성으로 우울이 동반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좀 길어질 것 같아서 뒤로 뺀 내용인데, 자존감이 높을 경우 이런 긍정적인 작용이 이뤄질 수 있어요.
특정 가치와 원칙을 굳게 믿으며 역풍을 만나더라도 이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고 경험에 비추어 생각을 수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정돼요.
자신의 판단을 믿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선택을 좋아하지 않을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어요.
과거에 일어난 일이나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를 계획하지만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실패와 어려움 뒤에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을 신뢰하며 필요 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요.
재능, 명성, 재정 상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자신이 열등하거나 우월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존엄성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우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아요.
심리적 조작에 저항하고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양한 내적 감정과 욕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타인이 원할 때에만 그러한 욕구를 드러낼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의 감정과 필요를 잘 알고 사회적 규칙을 존중하고 타인의 비용이 들어가는 권리나 욕구를 주장하지 않아요.
문제가 발생할 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해결책을 찾고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어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이럴 수 있어요.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아요(가장 큰 문제). 낮은 자긍심은 개인의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나 삶의 질을 위협해요.
외모나 몸매, 옷차림, 화장 등 겉모습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 외모 관리, 다이어트, 명품 액세서리 등에 과하게 집착해요. 자신의 외모가 완벽하지 않다고 느껴지거나 명품이 없으면 자신을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느끼는 것이죠. 그래서 자신의 경제적 환경이 충분하지 않는데도 과도하게 명품을 사는 경우가 생겨요(카푸어 등). 짝퉁을 사거나 명품 브랜드의 쇼핑 가방을 리폼하여 자신의 가방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더군요.
시기와 질투가 심해요. 자신보다 뛰어나거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열등감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거든요.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의 열등성을 확인하여 자신이 비교적 우월하다는 기분을 느끼려 하기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열등하게 묘사하고 결국 이러한 생각을 현실적인 사건으로 확인하기 위해 폭력을 가해요. 이런 행위가 집단적으로 큰 규모를 이루게 되면 홀로코스트 처럼 대학살이 일어날 수 있어요.
자신에 대하여 호의적이지 못한 견해를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기혐오와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해요. 이런 사람들은 예를 들어 “나는 잘하는 것이 없어요. 자랑스러운 것이 없어요. 쓸모가 없어요. 실패자에요.” 등의 말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존감은 낮아도 오히려 자존심은 높아져 자신에 대해선 방어적으로 대하며 남의 탓을 하기도 하고, 자신과 남을 모두 안 좋게 평가하기도 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열등 의식이 있어요. 물론 자신의 단점을 직시하고 심사숙고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자신의 여러 측면들에 대한 왜곡된 열등감을 갖기 쉬워요.
사회적으로는 자긍심이 낮은 것만으로 이상한 사람, 같이 있으면 부담스러운 사람 등으로 평가하는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봐요. 자기도 다른 사람을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단체 생활에서 소외되거나 거부당하는 등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있어요.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회복 탄력성(역경에 처했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능력 또는 실패를 경험했을 때 좌절감을 올바르게 잘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해요. 실패의 가능성이 높은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수행의 결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기불구화 전략(Self-Handicapping Strategy)을 많이 구사하기도 해요.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 다른 사람에게 더 쉽게 설득당하는 경향(피암시성)이 있어요. 반대로 자존감이 너무 떨어져서 다른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 다른 사람의 의견도 확신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죠.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결과에 대한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결과에 따른 실패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항상 불안해 해요. 그래서 집단으로 하는 일에서 스스로 리더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자신이 직접 나서서 주도하려고 하지 않아요.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접하면 확연히 더 불안해 하며, 이로 인하여 가까운 사람의 부고를 알게 되면 심적으로 크게 흔들릴 수 있어요.
전공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다가 선택하게 돼요. 자신이 가진 강점과 장점들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평가를 더 의식하여 무게를 두고 결정을 하는 거죠. 물론 자신의 흥미나 적성 등이 잘 맞으면 문제 없지만, 막상 멋있다고 생각했던 집단에 들어갔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나 자존감이 낮으면 후회를 해도 사람들의 시선에 취해 있어서 쉽게 또 바꿀 수가 없어요.
자기 자신보다 소속감을 갖고 있는 조직에 더 자부심을 가져요.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집단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기도 해요. 자기가 소속감을 느끼는 조직이 사회적 인식이 좋다는 이유로 자기 자신보다 그 조직만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심해질 경우 우울장애, 불안장애, 대인기피증(사회공포증) 등을 겪을 수 있어요.
이번에는 쓰다가 내용이 좀 길어졌네요. 컨디션 조절 문제도 있고 내용 조절 문제도 생기는 중. 다만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하다 보면, 이 부분은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내용 같으면 빼고, 내 생각을 좀 더 넣어야 할 것 같으면 길어지는 부분이 있긴 해요.
이런 자존감에 대한 생각은 오래 전부터 했는데, 생각 해 보면 내가 자존감이 세상 사람들의 평균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긴 한데... 그 자존감이 방어적인 것 같긴 해요. 이는 아무래도 어린 시절에 부정적인 평가들을 많이 받았던 경험이 있긴 해서 내 자존감에 그 영향이 있었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