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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씩 Oct 24. 2024

과잉진료의 양심선언

[그동안 가책을 무시하느라고 힘들었다]

운동하다가 어깨 부상을 입었다.

갈비뼈가 골절된 적도 있었기에 이정도에 '부상'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민망한 상태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래갔다.

나중에는 기지개를 켜려고 팔을 올리다가 깜짝 놀랄 정도로 통증이 왔고, 나을 거 같은 생각이 들지 않으니 불안해졌다.

나이를 먹으면서는 모든 질환이 '고질병'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게 된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회사 근처의 신경외과 진료를 했다.

심각한 건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와서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물리치료는 시간이 좀 걸리는 진료라 근무 중에 시간을 뺄 수 없으니 집 근처 병원으로 옮겼다.

주말치료를 받을 요량이었다.


의사는 X-ray 사진을 보며 내 상태를 설명했다.

골절은 아니지만 방치하면 심각해진다는 엄포를 놓은 뒤 반정도밖에 알아듣지 못하는 이론을 길게 늘어놓았다.

결론은 '교정치료'를 받으라는 것이다.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의사의 설명을 이랬다.

이런저런 부상이나 질환들이 근본적으로 척추질환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척추정렬을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전문가(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교정치료를 하면서 생활습관을 바꾸라는 것이다.

일단 어깨 통증으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많이 느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


총 24회로 진행되는 교정치료는 주 2회를 권장했지만 나는 직장인이라 주 1회만 진행하기로 했다.

회당 165,000원이라는 고액치료라 부담스러웠지만 실비청구가 가능하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보험사에는 절대 교정치료라는 말을 하지 말고 도수치료라고 해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자기 부담금이 있기는 해도 극히 일부라 그 제안은 달콤했다.

7~8회 정도쯤 진행했을 때 어깨는 많이 호전되었고, 운동하면서 주의할 점이나 해부학적으로 접근하는 운동법등 도움이 되는 것은 많았다.

물리치료사와 1시간 반정도 되는 시간에 교정치료를 포함해 전기치료나 견인치료, 고주파 치료가 함께 진행된다.

그러나 15회 정도가 되니 '이 정도면 됐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몸이 거의 회복되고 나니 교정치료라는 게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즈음 보험금청구를 하니 보상과에서 현장조사를 나올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 측에 통화 내용을 전달했더니 그런 연락이 비일비재 하지만 실제로 나온 적은 없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달랐다.

보험금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돈이라면 165,000원을 주고 그런 치료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몰려왔다.

주변에서는 보험 사기도 아닌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생각하냐고 하지만 양심의 문제는 누가 뭐라 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치료라면 공단에서 과잉진료여부를 어설프게나마 조사를 할 테니 필터링이 되겠지만 보험사에서 일일이 현장조사를 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다.


어제 마음을 굳혔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서 교정치료가 새로운 수입원으로 떠오른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것이 기업일 테니 당연하겠지만 결국 판단은 환자의 몫이다.

회당 치료비가 5만 원만 되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165,000원은 해도 너무하다.

게다가 환자상태가 호전되면 치료를 마쳐야 하는데 24회라는 기간을 정해두고 불필요한 치료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조리라고 생각한다.

48회까지 받는 사람도 있다며 나를 안심시키려는 병원의 입장이 추하게 느껴진다.

잔여회차가 남았으나 지금까지 받은 것만도 차고 넘친다.

이번 일이 아마도 이 병원과의 인연까지 끊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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