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늦게 깨닫다니. 하긴, 시간은 환상에 불과하니까. 어차피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은
그걸 들여다보라는 뜻이다.
덫에 걸려있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인생의 멘토 중 한 분이 그 과정을 함께 해주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여섯시간이 넘는 대화 끝에 덫이었다는 것을.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학생들의 상담에 충분한 시간을 안배하는 것은
내가 받은 것들을 나누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글로 쓰면 그리 충격적인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글의 치유효과라고 생각한다.
글로 쓰면 구체적인 물질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잊혀진다.
과도하게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은 좋지 못하다.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에 글이 도움이 된다.
글쎄 아직은 그렇게 생각한다.
빌 에반스의 재즈를 틀어놓았다. 하얀 스피커의 검은 패브릭 사이로 소리가 울린다.
하얀 책상 위에는 금색으로 장식된 납작한 접시 같은 도자기가 있다.
그 위에 이태리산 작고 뽀얀 화분이 있다. 그 위에 검은 현무암이 놓여있다.
샌달 우드의 엣센스를 몇 방울 떨어트린다. 바닐라 향 초의 향기와 섞인다.
아빠에게서 받은 백제금동대향로에 샌달우드 향을 피운다.
수많은 금속의 산과 신선들의 양각 사이로 하얀 연기같은 향이 피어오른다.
하얗고 납작한 육면체의 모서리가 둥그런 오디오 위에는 헤드폰 거치대가 놓여있다.
무광 화이트의 거치대에는 아는 분의 명함이 놓여있다. 마치 부적과도 같이.
은색의 가죽으로 만든 만년필 필통을 가로로 세워두고,
그 앞에 이태리에서 공수한 십자가와 성모마리아 상이 있다. 작은 샤넬 넘버 파이브 향수병과 함께.
늘 하는 짓이지만 도무지 글로 쓸 수 없는 것들을 두고
나는 책상 위의 사물들을 하나하나 관찰한다.
언제쯤 나는 그 수많은 고통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수십년을 잠식했던 "덫"에 대해서는 단 한글자도 쓰지 못한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