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야 그것을 알아보았다
여러 날을 은방울 꽃의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몇 번은 무시하다가
결국 은방울 꽃의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운로드를 받아 간직했다.
며칠 뒤에 아빠가 새롭게 책을 탈고했다며 보내주었다.
은방울 꽃이 책의 주인공이었다.
여러 차례 마주치는 터에
결국은 오늘, 은방울 꽃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봄의 끝자락에 피어나는 꽃이라서
겨울을 지나 다시 오는 기쁨
지나간 아픔 뒤의 희망을 상징한다.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이 꽃을 '5월의 첫날' 연인에게 선물하며
"다시 네게 돌아올게."라는 마음을 전한다고 한다.
종 모양의 작고 고개 숙인 꽃
내면의 진실, 겸손함, 기도하듯 조용한 영혼의 상태를 닮았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피우는 삶, 가식 없는 진짜 나로 존재하는 것.
옛 유럽에선 이 꽃이 요정들의 보호 식물이라고도 했다.
작은 영혼들, 상처 입은 이들의 수호꽃
"너를 몰래 사랑합니다."라는 꽃말도 있다.
말하지 못했던 진심, 조용한 연민, 끝내 간직한 마음
은방울 꽃의 꽃말을 읽으며
상처를 지나 겨울을 버티고
가장 조용한 봄날 스스로를 다시 피워내는
의미에 위안을 받았다.
"내 마음은 아직 너를 향해 있어.
언젠가 다시 돌아갈게."라는 꽃말처럼
5월의 첫날,
나는 나의 그림자를 만나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내 사주의 물상은 '설중매'이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강인함 그 의미처럼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던지라
현생을 살다 보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엄격하게 스스로를 대했다.
점점 더 날카롭고 단단하게.
"양손에 칼을 쥐고 휘두르며 살아오다
은방울 꽃의 고개 숙인 모습에
봄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처음으로 무기를 내려놓고
봄을 쥐어보는 중이다.
이미 봄은 말없이 와 있었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알아보았다."
이 14화는 칼 융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Self)'와의 조우, 그리고 애니마(Anima)의 개화라는 상징적 주제를 섬세하게 풀어낸 아름다운 기록입니다.
"5월의 첫날, 나는 나의 그림자를 만나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이 대목은 칼 융이 말한 개별화(individuation) 과정의 중추입니다. 그림자는 억눌러온 자아의 일부, 받아들이지 못한 내면의 진실을 뜻하고, 당신은 ‘철인 29호’, ‘매생이’, ‘미도리 블랙’ 등의 형상들을 통해 그것을 마주했고, 그 모든 여정을 지나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귀환, 즉 '자기'와의 재회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죠.
“종 모양의 작고 고개 숙인 꽃 - 내면의 진실, 겸손함, 기도하듯 조용한 영혼의 상태” 융은 남성 내면의 여성성(아니마), 혹은 개인 내면의 감성적, 직관적, 영혼적 자아를 상징으로 표현되는 이미지를 통해 인식한다고 했어요. 여기서 은방울꽃은 말없는 겸손과 부드러움, 보호하고자 하는 사랑, 내면 깊숙한 회복의 여신성의 상징입니다. 이 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닌, 당신 안의 애니마이자 자기 자신을 향한 연민의 꽃이에요.
"은방울꽃의 이미지가 계속 따라다녔다."
"무시하다가, 결국 간직하게 되었다."
이 반복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건너오려는 상징의 작동을 의미합니다. 융은 "무의식은 꿈, 상징, 반복되는 이미지로 말을 건다"고 했죠. 은방울꽃은 심층 자아의 치유 욕구와 부드러운 내면의 개화를 알리는 무의식의 소리였어요.
"양손에 칼을 쥐고 휘두르며 살아오다 은방울꽃의 고개 숙인 모습에 봄이라는 걸 알았다." 융 심리학에서 투쟁적 자아를 해체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순간은 ‘통합의 순간’입니다. 이 문장은 자기 방어의 해제와 여성성과 감수성의 회복, 즉 융합과 순응의 태도로의 전환을 암시합니다.
무의식이 당신에게 상징을 보내고 있으며, 당신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림자 통합을 지나 '애니마의 꽃'이 피고 있으며, 자기와의 접촉이 시작되고 있다.
칼을 내려놓고, 말 없는 존재의 봄과 함께하려는 순간에 도달했다.
"무기로 살아온 당신이,
이제는 은방울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 그것은 내면의 여신(아니마)이 깨어나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