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형 나르시시즘과 취약형 나르시시즘 그리고 건강한 자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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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즘은 병리 이전에 구조다.
모든 인간은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애를 사용한다.
문제는 그 균형이 무너질 때 발생한다.
심리학은 이제 나르시시즘을 단일한 성격장애가 아닌
연속적 스펙트럼으로 본다.
나르시시즘을 맞다/아니다의 온/오프의 스위치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마치 0에서 100까지의 그래프와 같은, 스펙트럼 위의 한 지점으로 본다.
그러니, 누구나 나르시시즘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
자기 확신과 불안, 공감과 통제 욕구 사이의 미세한 진폭이
그 사람의 성숙도를 결정한다.
프로이트는 자기애를 리비도의 기본 방향으로 보았다.
컨버그는 공감 결여의 결과로,
코헛은 부서진 자기감의 보상으로 해석했다.
결국 세 관점은 한 지점에서 만난다.
자존감이 불안정할수록 인간은 타인을 자기 확인의 수단으로 쓴다.
나르시시즘은 세 가지 형태로 드러난다.
건강한 자기애, 취약형, 과대형.
건강한 자기애는 자율적이다.
취약형은 수치에 민감하고,
과대형은 통제와 우위로 불안을 덮는다.
둘은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근원은 같다.
자기 가치의 불안정이다.
과대형 나르시시즘
과대형은 불안을 통제하려는 전략으로 작동한다. 그들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설정함으로써 내면의 결핍을 외부의 존경으로 메운다. 자기 존중감은 타인의 반응에 의해 끊임없이 충전되어야 한다. 칭찬이 없으면 무력감을 느끼고, 비판이 들어오면 즉각 분노로 반응한다. 이때 분노는 공격이 아니라 자기 보호의 방화벽이다. 자신의 취약함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자동 반응이다.
관계에서는 ‘이상화–폄하’의 진폭이 크다. 처음엔 상대를 완벽하게 끌어올리고, 조금만 거슬리면 즉시 추락시킨다. 상대가 자신을 반사해주는 거울일 때만 사랑할 수 있고, 거울이 흐려지면 존재감이 흔들린다. 그들의 사랑은 존재 증명의 기술에 가깝다. 그래서 관계가 오래 가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통해 확인되는 ‘자기 이미지’다.
신경학적으로 보면, 이들은 보상 회로의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고 감정 공감 회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타인의 감정’을 읽기보다 ‘자신이 받은 자극’을 우선 처리한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기보다 그 고통이 자기 서사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흥미를 잃는다. 그들의 냉정함은 결여가 아니라 선택이다.
취약형 나르시시즘
취약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조용하고, 섬세하고, 때로는 겸손하다. 하지만 그 안은 늘 수치와 불안으로 요동친다. 그들은 타인의 평가를 자기 존재의 근거로 삼는다. 인정받지 못하면 금세 무너지고, 비판 한 마디에 며칠을 괴로워한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면서도, 타인의 무관심에는 과민하게 반응한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사람’이면서
‘사랑받아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관계는 늘 모순적이다.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진짜로 가까워지면 불안이 폭발한다. 상대의 시선 속에서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 하지만, 그 시선이 사라지면 존재 자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감정적 회피와 과잉 반응을 오간다. 한쪽에서는 매달리고, 다른 쪽에서는 단절한다. 모순된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건 사실 “버림받지 않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뇌 수준에서 보면, 편도체가 과활성화되어 있고, 감정 반응을 억제하는 전전두엽 기능은 약하다. 즉, 감정을 느끼는 속도는 빠르지만 조절하는 능력이 따라가지 못한다. 그 결과, 감정은 폭발하거나 스스로를 향해 내파된다. 우울, 자기비난, 타인에 대한 수동적 공격이 그 흔적이다.
신경과학은 이 구조를 생리적으로 설명한다.
과대형은 편도체의 공감 반응이 억제되고, 보상 회로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사랑보다 존경에 반응한다.
취약형은 편도체가 과활성화되어 거절을 곧 존재의 위협으로 해석한다.
결국 두 극단은 감정을 다루는 용량의 문제다.
공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차단된 경우가 많다.
유년기의 상처 경험이 공감 회로를 방어로 전환시킨다.
감정을 느끼면 무너질 것 같아서
느끼지 않는 쪽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최근 연구들은 회복 가능성을 말한다.
자기통제 능력, 삶의 의미감, 신체적 활동이
행동의 충동성을 낮추고 공감 회로를 서서히 회복시킨다.
치료의 핵심은 공감 훈련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감정을 버티는 자아가 커질 때 관계가 달라진다.
나르시시즘은 제거 대상이 아니다.
그건 인간의 자아가 자신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다만 그 에너지가 어디로 향하는지가 문제다.
자기 확신으로 흐르면 성숙이고,
지배로 흐르면 병리다.
결국 나르시시즘의 성장은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이 변화는 느리지만, 그 방향이 인간의 품격을 결정한다.
나르시시즘은 결함이 아니라 좌표다.
그 좌표가 어디에 찍혀 있는가가,
한 인간의 관계 능력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