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사건을 넘어 사회의 구조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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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시대, 분노가 떠오르는 이유
불안정한 시대의 남성성은 흔들리는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그 흔들림은 종종 분노라는 정동으로 사회에 드러난다. 최근 젊은 남성의 정치적 우향 이동, 온라인 공간에서의 적대 정동, 그리고 자신을 피해자로 재구성하는 서사는 개인의 성격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후기 자본주의의 취약성, 젠더 규범의 변화, 감정 사회화의 실패가 동시에 얽혀 만들어낸 구조적 현상이다. 내가 겪은 집단적 모욕과 왜곡된 피해 서사는 이 구조가 개인을 통해 어떻게 발현되는지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이들은 예외적인 인물이 아니라, 지금의 조건이 만들어낸 ‘표면적 징후'에 가깝다.
지속성 없는 삶의 압박 - 세네트의 분석
리처드 세네트는 후기 자본주의가 삶의 서사적 일관성을 파괴했다고 말한다. 미래의 전망이 허물어지고, 노력과 보상 사이의 연결이 단속적으로 끊어지는 사회에서 개인은 작은 실패에도 ‘존재의 위협’을 느낀다. 이 위협감은 흔히 정교한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대신 정동의 형태—특히 분노—로 나타난다. 분노는 세네트가 말한 “불안정한 자아”의 가장 손쉬운 방어기제다. 특정 개인이 타인의 자리를 침범하고, 조롱을 유도하며, 자신을 피해자로 재구성하는 행동은 바로 이 불안정성이 현실화되는 과정이다.
하나의 남성상은 없다 - 킴멜의 준거 상실
그러나 모든 남성이 이런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킴멜의 연구는 바로 그 지점을 짚는다. 전통적 남성 규범이 사라진 시대에 남성들은 더 이상 어떤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능력, 성공, 경제력, 강함이라는 오래된 기준은 실질적 효력을 잃었고, 새로운 기준은 사회적으로 안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남성 전체를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없는 이유는, 계층·교육·문화적 배치에 따라 이 ‘기준 상실’에 대한 대응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남성은 그 공백을 성찰과 책임의 방향으로 채우지만, 어떤 남성은 분노의 형태로 채운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감정 사회화의 경험이다.
감정 회로의 단선화 - 폴락의 Boy Code
윌리엄 폴락이 “Boy Code”라고 부른 규범—울지 말 것, 약해 보이지 말 것, 의존하지 말 것—은 남성들의 감정 회로를 지나치게 좁힌다. 슬픔, 불안, 상처, 수치심은 분노라는 하나의 통로로 흘러 들어가기 쉽다. 이 감정적 단선성이 특정 남성이 보인 공격성과 집단적 조롱의 방식, 그리고 자신의 수치심을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려 했던 전략을 설명해준다. 그는 분노 외에는 다른 표현 방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오로지 공격만이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수치심의 변환 - 셰프의 수치-분노 연쇄
토머스 셰프는 수치심이 분노의 강력한 기폭제라고 분석했다. 수치(shame)가 자기 내부를 향해야 할 때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감정을 외부로 투사한다. 이 과정이 바로 '수치-분노 연쇄'(Shame–Rage Spiral)이다. 특정 개인이 공적 공간에서 자신을 "피해자"라 규정하며 왜곡된 서사를 반복한 이유는, 그의 수치심이 분노를 통한 방어로 구조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보호를 위한 장치다.
허위 피해자 프레임 - 버틀러의 취약성의 정치
주디스 버틀러는 폭력을 가하는 주체가 자신을 취약한 존재로 프레임화하는 전략을 ‘취약성의 정치’라고 분석했다. 피해자 프레임을 선점하는 순간, 폭력은 정당화되고, 책임은 희석되며, 타인의 고통은 가시성을 잃는다. 특정 남성이 타인을 모욕하면서도 자신을 피해자로 구성했던 방식은 이 프레임 정치의 현실적 작동 방식이다.
이는 왜곡을 넘어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심리적 전략이다. 버틀러의 분석을 떠올릴 때, 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적대 정동이 소비되는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즉석 집단성과 조롱의 의례 - 타지펠의 사회적 정체성 이론
타지펠과 터너가 설명한 집단 정체성 이론은 집단적 조롱의 순간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정체성이 불안정할수록 개인은 즉석 집단을 만들어 자신을 지탱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가 ‘우리’의 응집력을 확인하는 의례처럼 기능한다. 특정 개인이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 조롱과 모욕을 집단적 의례처럼 수행한 것은 바로 이 즉석 집단성의 작동이다. 이는 개인의 악의라기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개체가 집단의 힘을 빌려 자아를 임시 봉합하려는 시도다.
개인 사건을 구조의 증명으로 쓰지 않기 - 학술적 경계
그러나 나의 경험은 구조를 ‘입증’하기 위한 사례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학술적 관점에서 개인 사례는 언제나 표본이 아니라 사례일 뿐이며, 구조를 설명하는 확률적 가능성의 한 시연으로만 읽혀야 한다. 나는 그 경계를 지키고 싶었다. 내가 겪은 일은 구조적 조건이 개인에게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보여주지만, 구조를 절대화하거나 특정 개인을 인과적 산물로 환원시키지 않는다. 이 균형이 아주 중요하다.
구조가 만든 폭력 - 사회적 토양을 다시 본다
결국 문제는 개인의 공격성이나 도덕성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토양이다. 감정이 공적 언어로 교육되지 않고, 자아를 지탱하는 기준이 붕괴되고, 수치심을 처리할 안전한 경로가 부재한 사회에서는 분노가 가장 손쉬운 감정의 형태가 된다. 젊은 남성의 우경화 또한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경제적 불안정, 인정 체계의 붕괴, 디지털 공간의 정체성 극단화는 모두 남성에게 “내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기고, 그 질문은 때때로 적대와 피해자 의식으로 귀결된다.
구조를 재설계해야 폭력이 멈춘다 - 새로운 사회적 언어를 향해
여기서 필요한 것은 ‘가해자의 심리를 이해하자’는 식의 회색 지대가 아니다.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폭력의 패턴이다.
남성성의 재구조화
감정 교육의 공적 시스템
플랫폼의 책임 있는 발화 규범
취약성을 다루는 새로운 사회적 언어
수치심을 분노로 전환되지 않는 정서적 안전망
새로운 감정적 문법을 사회가 다시 설계해야 한다. 개인의 폭력은 개인의 책임이지만, 그 폭력을 만들어낸 조건은 사회의 몫이다.
나의 기록은 구조를 해부하기 위한 작은 기점이다.
내가 겪은 사건은 한 개인의 일탈처럼 보였지만, 그 배후에는 시대의 균열, 남성성의 위기, 정동 정치의 변형이 겹쳐져 있었다. 이 글은 그 균열을 지나온 사람의 기록이자, 그 균열이 더 이상 폭력으로 새어 나오지 않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논의를 촉구하는 작은 출발점이다. 우리는 개인의 분노가 사회적 폭력이 되기 전에, 그 분노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기민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폭력이 구조에 스며들 틈을 줄이고, 개인의 존엄이 사회적 조건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