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메주고리에 성지 순례
크로아티아에 성모님이 매일 발현한다는 성지가 있어.
메주고리에라고.
30년 전이었나, 겨울에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가 왔어.
성지 순례를 가려고 몇 달을 돈을 모았는데
그 팀에서 누군가가 못 가게 돼버려서 인원이 부족하다며
나에게 같이 가자고.
망설이는 나에게 엄마는 돈을 대주겠다고 해서
냉큼 가겠다고 했어.
마침 나도 휴가를 쓸 수 있을 때였으니까.
그래서, 언제 출발이냐고 하니
내일 새벽 출발이래. 이런..
장소는 이태리라고 해서
대충 가을 복장을 준비해서 출발했어.
수녀님이나 신부님이 되실 분들이 성소가 있는지 궁금할 때 간다고도 하더라.
그래서인지 성지 순례로 그곳을 갔을 때, 나와 엄마를 제외하고는
다 예비 수녀님과 신부님, 수도자 들이었어.
난 멋도 모르고 따라갔었어.
이탈리아에서 바티칸으로 그리고 크로아티아를 갔어.
크로아티아행 비행기는 80년대 고속버스처럼 너무 협소한 데다가
덜덜 덜덜 떨리고 있어서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어.
출발하자마자 작은 와인 한 병과 샌드위치를 주더라.
와인을 마시면서 추락 따위는 잊어버리고 말았어.
밤 중에 도착한 공항은 시외버스터미널보다 적더라고.
그리고 그 앞에는 거대한 삼성의 마크가 찍힌 광고판이 있었어.
버스를 타고 다시 메주고리에로 갔어.
중간에 검문소에서 총을 든 군인들이 살벌하게 보이더라.
크로아티아의 산은 매우 급경사에 암벽들이 보여서 한국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어.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나.
따뜻한 야채수프를 주길래 며칠을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마셨어.
뜨끈한 국물이 뱃속을 녹여줬어.
엄마와 둘이 한 방을 쓰는데, 라디에이터는 도무지 작동이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날이 추웠어.
그래서 매우 오랜만에,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엄마와
싱글 침대에 같이 누워서 꼭 끌어안고 잤어.
아침에 나가는 길에도 너무 추워서 길에서 뜨개질한 모자들을 파는 할머니에게
모자와 조끼들을 사서 겹겹이 껴입었지.
같이 갔던 신부님을 만났는데, 스키복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더라고.
미리 알았으면 스키복을 가져가는 건데. 약간의 배신감.. ㅎㅎ
메주고리에의 산을 등산을 했어.
그 정상에 십자가가 있다고 해서.
다들 맨발로 기도를 하면서 올라간대서 할 수 없이 따라 했지.
기반암이 대리석이라고 하더니
정말 뾰쪽하게 깨져있는 수많은 돌멩이들을 밝으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진흙탕을 밟으며 올라갔어.
너무 미끄러워서 한발 한발 기도가 저절로 나오더라.
꼭대기에 십자가를 봤는데
너무 잘생긴 신부님이 마이크를 잡고 기도를 하시는 거야.
힘들었던 등산길이 다 잊힐 정도였어.
그런데 그 길을 가면서 장미향이 너무 많이 나서
장미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렸어.
나중에 안 이야기인데,
메주고리에는 기적이 너무 흔해서
장미향도 자주 나고,
심지어 정상의 십자가에 밤에는 불이 들어온다고 그래.
거긴 전기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야.
나도 여러 가지 기적들을 봤어.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이더라.
어쨌든, 이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나머지는 나중에 할게.
오늘, 엄마를 만났어.
엄마는 늘 기도를 하고 있어서
항상 거길 가면 마음이 편안해.
에너지를 보는 봉사자님의 말씀이
엄마 집에는 기도의 탑이 쌓여 있어서
에너지가 흘러넘친다며
이사하지 말라고 그랬다나.
이상하게 엄마를 보러 가면 난 푹 잠이 들고
에너지 충전이 되어서 돌아와.
엄마의 처방전을 얻어왔지.
영혼을 위한 성수
메주고리에에서 받아서 비행기를 타고 온 성수를 구해뒀더라.
암환자들이 주로 받으려고 한다는 그 성수야.
나도 한 입 먹었어.
그랬더니 미도리 블랙이 죽어버린 건가. ㅋ
모르지 뭐. 차차 알게 되겠지.
나의 꿈 때문에 엄마가 준비한 것도 같아.
아무 일도 없이 평범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