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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왜 정서적 문제를 아이에게 던져버릴까?

가족 투사, 머레이 보웬 박사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의 Katie Burkhart


나는 읽던 텍스트들은 주로 요약 발췌해서 저장하는데, 머레이 보웬 박사의 '가족 투사'와 관련한 이 글은 단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그래서 필사를 했다. 그 와중에 글의 문단 형식과 표현을 조금 바꾸었다. 의역이라 일부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 출처: 보웬 가족 연구 센터, 조지타운 대학교 가족센터(1975~), 머레이 보웬 박사 이론의 발전과 보급에 헌신


1. 가족 투사 과정(Family Projection Process)

가족 투사 과정은

부모가 자기 안의 정서적 문제를 자녀에게 옮겨 실어버리는 방식을 말한다.

이 과정에 깊게 휘말린 아이는

관심·승인에 대한 욕구가 크고

기대에 예민하고

자신이나 타인을 쉽게 탓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자기 책임처럼 느끼거나,

반대로 “너 때문에 내가 불행해”라고 느끼고

불안을 참고 생각해보는 대신,

순간의 불안을 줄이려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패턴을 갖는다.

투사가 강하게 작동하면,

아이의 관계 민감성은 부모보다 더 심해지고,

이 민감성이 관계 시스템의 만성 불안을 키우면서

아이의 증상 취약성을 높인다.


2. 투사 과정의 3단계

보웬은 가족 투사 과정을 세 단계로 설명해.

1)스캐닝(Scanning)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품고

아이를 유난히 주의 깊게 들여다봄.

2)해석(진단하기)

아이의 행동을

“역시, 내가 걱정하던 그 문제야”라고 해석함.(실제보다 걱정에 맞춰서 보는 것)

3)그렇게 대하기(치료/대응)

아이에게 “정말로 무언가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대하고,

그 문제를 “고치려는” 상호작용을 계속 반복함.


이 세 단계는 아기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쭉 지속된다.

부모의 두려움과 인식이

아이의 발달과 행동을 형성하고,

결국 아이는 부모의 두려움을 자기 일부처럼 체화해버린다.

그래서 이 과정은 쉽게 자기실현적 예언이 된다.


예:

“얘는 자존감이 낮아”라고 믿는 부모가

끊임없이 아이를 칭찬하고 북돋으려 하다가

결국 아이가 “나는 혼자선 괜찮지 않고, 부모의 긍정이 있어야 괜찮은 사람”이 되는 식.


3. 부모·형제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

부모들은 종종 문제를 보이는 아이에게

“내가 사랑과 관심을 충분히 주지 못해서”라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그 아이에게 더 많은 시간·에너지·걱정을 쏟은 경우가 많다.


가족 투사 과정에 덜 휘말린 형제자매들은

부모와 더 현실적이고 성숙한 관계를 맺게 되고,

그래서 덜 의존적이고, 덜 반응적이며, 더 목표 지향적으로 크기 쉽다.


두 부모 모두 투사 과정에 관여하지만,

참여 방식은 다르다.


주 양육자가 엄마인 경우,

아빠는 특정 아이에게 과하게 정서적으로 개입하는 경향이 있고

보통은 부모 삼각관계에서 좀 바깥 위치에 있지만,

엄마-아이 사이 긴장이 폭발할 때는 끌려 들어온다.


부모 둘 다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 내심 불안하지만,

겉으로는 한쪽이 자신 있게 행동하고

다른 한쪽이 거기에 동조하는 패턴이 자주 나타난다.

이 투사 과정의 강도는 ‘얼마나 같이 시간을 보내느냐’와는 별개이고,

정서적 얽힘과 불안의 강도와 더 관련 있다.


4. 사례: 마이클·마사 부부와 딸 에이미 가족

이제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마사(엄마) – 마이클(아빠) – 에이미(첫째 딸) – 마리(둘째 딸) 사례로 보여준다.


(1) 임신 전부터 시작된 마사의 불안

에이미가 태어나기 전부터

마사는 “내가 어릴 때 느낀 부족함을 아이에게 전가할까 봐” 두려워했고,

엄마가 된다는 것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어.

마사는 “엄마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이가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 때문에 에이미의 관심·애정 욕구에 과도하게 예민해졌다.

에이미가 지루해 보이거나, 기분이 안 좋아 보이기만 해도

바로 뭔가 활동·계획을 꺼내 들고 달래려 함.


마사는

“자신감 있고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려면,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얼마나 과도하게 빠르게 개입하고 있는지는 잘 자각하지 못한다.

엄마와 아이는 서로의 기분에 아주 민감해져서

거의 한 몸처럼 맞물린 상태가 된다.

어린 에이미는 엄마의 기분에 예민하고,

엄마는 에이미의 기분에 예민한 상태이다.


해설:

마사의 과잉 개입은

에이미가 엄마의 관심을 더 갈구하고,

엄마의 정서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아이가 되도록 만들고,

둘의 강한 유대감을 서로가 더 강화하는 구조를 만든다.


(2) “채울 수 없는 욕구”와 죄책감, 그리고 마이클 끌어들이기

어느 순간부터 마사는

에이미의 끝없는 관심 요구가 버거워져서 짜증을 내고,

가끔은 에이미의 다정함에서 거리를 두려 한다.

하지만 에이미는 엄마를 다시 끌어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고,

마사는 그 거리두기에 거의 성공하지 못한다.


마사는

애타게 달래기도 하고,

지시하고 혼내다가,

다시 달래는 식으로

밀고 당기는 감정적 패턴에 빠진다.

이게 둘을 더 끈끈하게 묶어버린다.


마사는 에이미의 “채울 수 없는 요구”를 입으로는 비난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내가 시간을 더 못 줘서 그렇다”

“내가 엄마로서 충분하지 못해서 그렇다”

라는 죄책감을 느낀다.


에이미가 엄마에게 화난 것처럼 보일 때,

마사는 “이제 더 이상 나를 가까운 친구로 느끼지 않는 건 아닐까” 해서

더 불안·죄책감을 느끼고,

다시 달래고 가까워지려고 애쓴다.


이 지점에서 마사는 마이클이 개입해주길 바란다.

도와달라고 하지만, 동시에

딸 에이미를 통해 자신의 정서적 친밀감 욕구를 채우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손을 떼지 못한다.


해설:

마사는 입으로는 “애가 너무 의존적이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쓸쓸함·친밀감 결핍을 딸에게서 보상받고 있다.

부부 사이 거리감은 오히려

“그래서 내가 에이미를 더 붙잡고 있는구나”를 강화한다.


(3) 둘째 마리 출생 이후와 학교 적응

둘째 마리가 태어나면서

이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만했던” 상황이

마사에게는 감당하기 벅찬 상태로 변한다.

두 아이의 욕구를 모두 채우는 게 불가능해 보이기 시작한 거지.

마사는 “에이미가 벌써 내 불안감을 물려받았다”고 느낀다.

즉, 딸이 자신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 시작한다.


에이미가 유치원에 갈 때,

마사는 선생님과 긴 상담을 통해

전환 계획을 꼼꼼히 세우고,

에이미가 조금이라도 가기 싫어하면

두려움·분노·짜증·죄책감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선생님은 이런 유형의 아이를 이해한다고 느끼며

에이미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때 에이미는 성적도 좋고 잘 지낸다.


그러나 자신을 “무리의 한 명”으로만 대하는 선생님 아래서는

흥미를 잃는다.


마사는 계속해서

“에이미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아 헤매고,

에이미의 적응이 선생님에게 아주 크게 좌우된다.

반대로 둘째인 마리는

유치원·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거의 없고

엄마의 과도한 관여도 거의 안 받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한다.


해설:

마사는 두 딸의 행복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편안하게 자기로 존재하기가 어렵다.

그게 아이들과의 소통을 더 힘들게 한다.


에이미는

엄마와의 과도한 유대를

선생님에게 옮겨가는 경향을 보이고,

“나를 특별히 봐주는 어른이 있을 때만” 잘 기능한다.


둘째 딸 마리는

가족 투사 과정에 덜 빨려 들어가서,

학교나 집의 관계 구조에 덜 의존하게 자란다.


(4) 또래 관계, 예민함, 그리고 부모의 이중 메시지

에이미가 학교 친구들에게 서운함을 토로할 때,

부모는 말로는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라,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너무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마사는 에이미의 친구 관계를 돕겠다며

외출·파티를 계획하고,

에이미를 둘러싼 관계에 여전히 깊게 개입한다.

에이미는

친한 친구가 다른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이클은

말로는 “이 문제는 에이미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거의 전부 마사에게 동조한다.


해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

입으로는 “덜 예민해져라”라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우리가 네 관계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에이미가 또래들 사이에서

삼각관계, 배제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사실 부모 삼각관계 속에서

그 패턴을 이미 학습했기 때문이다.


(5) 중학교·고등학교: 반항과 소외, 그리고 끝없는 보상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에이미의 학업 문제와 “큰 학교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 드러난다.

그녀는 더 불행해 보이고,

부모는 소아과 의사, 튜터, 치료 등 외부 도움을 찾기 시작한다.

부모는 자신들의 양육 방식보다는

아이에게 치료·과외를 받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문제의 중심을 “에이미”에게 둔다.


고등학교에 가면서

에이미는

점점 말을 줄이고,

엄마에게 덜 노출되고,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친구들,

남자아이들과도 어울리기 시작한다.


에이미는

부모에게 통제당한다고 느끼고,

방에 무단으로 들어오는 엄마를 싫어하고,

규칙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약물·알코올 문제까지 의심받는다.


마사가 감당이 안 될 때

마이클이 등장해

“부모가 이렇게 해줬는데도 넌 고마워하지 않고 부모를 해친다”고 비난하고,

에이미는 반발한다.


그러면 다시 마사가 끼어들어 방어하거나 중재하려 한다.

에이미는

집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말을 줄이고,

부모가 두려워하는 행동들을 실제로 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스스로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별로 좋게 느끼지 못한다.”


해설:

투사 과정이 강할수록

청소년기의 반항도 더 강렬하게 나타난다.

부모는

“사춘기라 원래 그렇다”고만 보기 쉽지만,

아이의 반응만큼이나

부모가 반응하는 방식이 반항을 키우기도 한다.


부모는 이유를 묻는 “왜” 질문

또래 탓하기를 반복하면서

문제를 자기 바깥(아이·또래)으로 돌린다.


가족 과정이 강렬할수록

의사소통은 끊기고,

에이미는 가족 안에서 더 고립된다.


반면, 가족 투사 과정에 덜 끼인 마리는

청소년기를 훨씬 수월하게 통과한다.


(6) 비난과 보상이 동시에 에이미를 묶어두는 방식

마이클과 마사는

에이미를 점점 더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들은

휴대폰, 유행 옷, 16번째 생일의 자동차 등

여러 선물을 주며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주려 하고,

그게 에이미의 동기를 살려주길 바란다.

그러나 이런 관용과 보상 역시

에이미의 문제를 유지·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마리는 이 모든 소동 속에서도

큰 문제를 만들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조용히 성장한다.

다만, 그렇다고 가족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고,

종종 부모 편에 서서

혼란을 에이미 탓으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해설:

에이미를 향한 비판과 보상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투사 과정은 계속 굴러간다.

마리는 상대적으로 성숙하지만,

그 역시 가족 역동 바깥에 있는 건 아니다.

“부모 편에 서서 문제를 에이미 탓으로 돌리는 것” 또한

가족 시스템 안에서 특정 역할을 맡는 형태이기 때문이야.





보웬 박사가 말하는 가족 투사 과정은

부모의 불안과 미해결 과제가

아이에게 옮겨가고 고착되는 전 과정을 보여준다.


“아이를 잘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

“사랑을 충분히 주고 싶다”는 마음,

과도해질 때

오히려 아이는

자기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구분하기 어렵고

관계에 예민하고

불안에 취약한 사람으로 자라기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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