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웬 박사의 '사회적 정서 과정'
*사진: Unsplash
- 출처: 보웬 가족 연구 센터, 조지타운 대학교 가족센터(1975~), 머레이 보웬 박사 이론의 발전과 보급에 헌신
- 사회적 정서 과정(Societal Emotional Process)에 대한 보웬 박사의 글을 읽고
— 보웬의 사회적 정서 과정, 현대 비판, 그리고 남는 함의
1. 문제 청소년이 아닌 정서 시스템의 산물로 보기
비행 청소년 연구의 전통적인 접근은 대체로 개인의 일탈 행동을 규범으로부터의 일탈로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교정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의 사회적 정서 과정(societal emotional process) 개념은 비행 청소년과 사법 시스템을 하나의 정서 시스템 안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으로 본다. 이 관점에서 비행은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가족·학교·법원·정치·언론이 공유하는 정서 구조의 표면적 표현이다.
보웬은 먼저 비행 청소년이 있는 가족을 관찰했다. 이러한 가족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책임과 규범을 강조하는 훈계와 때로는 강한 처벌을 반복한다. 그러나 실제 행동에서는 일관된 기준을 유지하기보다 자녀의 저항과 정서적 압박에 밀려 후퇴하는 패턴을 보인다. 부모는 통제와 포기 사이를 오가며, 자녀는 부모의 불확실성과 우유부단함을 정확히 감지하고, 통제를 회피하기 위해 거짓말과 반항을 사용한다. 이때 부모의 처벌은 정서적 효과를 가지지 못하고, 통제력 역시 약화된다.
보웬은 1960년대 이후 소년사법제도, 특히 소년 법원이 이러한 부모의 패턴과 유사한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적한다. 법원은 비행 청소년을 “규범을 어긴 행위자”라기보다 “부모와 환경의 피해자”로 이해하려 하며, 책임을 약화시키고 처벌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재범이 반복될 경우, 시스템은 비난과 실망을 표하며 강한 처벌로 선회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과 판결은 원칙에 기초한 장기적 관점보다, 사회적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단기적 정서 반응에 가깝게 움직이기 쉽다.
보웬은 이를 사회적 퇴행(regression)으로 해석한다. 개인이 불안을 견디지 못할 때, 원칙 중심의 행동 대신 당장의 불안 감소를 위한 회피·공격·동조를 택하는 것처럼, 사회도 집단 불안에 의해 장기적 책임·원칙보다 단기적 진정·상징적 대응을 우선하게 된다. 그의 분석에서 사회적 퇴행의 “증상”에는 범죄와 폭력의 증가, 이혼율 증가, 소송사회화, 인종 집단 간의 양극화, 원칙 없는 정치적 결정, 약물·도박·파산 증가, 그리고 권리 담론의 팽창과 책임 담론의 약화가 포함된다. 이러한 현상은 단일 원인으로 환원될 수 없지만, 보웬은 이들을 집단 불안이 누적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정서 시스템의 전형적 반응으로 파악했다.
2. 가족 시스템과 구조적 불평등: 현대 연구의 보완
현대 비행 청소년 연구는 보웬의 직관을 다른 언어로 부분적으로 뒷받침한다. 범죄 심리와 청소년 비행 연구에서 가족 과정은 여전히 핵심 변수로 다루어진다. 애착, 의사소통, 갈등 처리 방식, 부모의 통제·지지 스타일, 부모와 자녀 간 정서적 상호작용은, 비행 행동의 위험·보호 요인으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결과는 가족 시스템의 정서 구조가 청소년의 규범 수용과 법 준수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보웬의 관찰과 상응한다.
사회유대이론(Hirschi)과 가족 시스템 관점은 안정된 애착과 정서적 유대를 “법과 규범에 대한 내적 유대”를 형성하는 보호 요인으로 본다. 이는 보웬이 말한 가족 내 만성 불안과 정서적 투사, 삼각관계가 심화될수록 자녀가 비행에 취약해진다는 주장과 구조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웬 이론은 여전히 가족 단위에서 비행의 발생 조건을 설명하는 유효한 하나의 틀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일한 비행 행동이라도 어떤 가족 구조와 사회경제적 조건을 가진 청소년이 더 엄격하게 처벌되는지에 주목한다. 일부 연구는 두 부모 가정보다 단일 부모 가정, 재구성 가족, 또는 불안정한 가족 구조를 가진 청소년이 소년사법 절차에서 더 가혹하게 다뤄지는 경향을 보고한다. 이는 사법 시스템이 중립적 규범 집행 기관이라기보다, 이미 사회에 내장된 계급·가족구조·젠더 편견을 재생산하고 증폭하는 장치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페미니스트 범죄학의 논의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소녀 비행은 오랫동안 연구와 제도에서 주변화되어 왔을 뿐 아니라, 소녀들은 종종 “법을 어겼다”는 이유와 더불어 성역할 기대를 위반한 존재로 평가되며, 이른바 “이중 일탈(double deviance)”의 효과를 겪는다. 동일한 행동이라도 남학생과 여학생이 받는 사회적·제도적 반응의 결이 다르다는 점은, 보웬의 이론이 충분히 다루지 못한 부분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비행 청소년에 대한 이해를 가족 시스템 차원에만 두는 것은 불충분하며, 사법 시스템 자체가 구조적 불평등과 권력관계를 반영하는 장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따라서 비행 청소년과 사법 시스템을 분석할 때, 보웬의 가족·사회 정서 시스템 관점은 구조적·정치경제적 분석과 결합될 때에만 충분한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
3. 보웬 사회이론에 대한 현대적 비판: 정서 시스템 개념의 한계
보웬의 사회적 정서 과정은 이론적 야심에 비해 실제 연구·실천에서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가족치료 및 관련 연구에서 보웬 이론의 핵심은 자기분화(differentiation of self), 삼각관계, 가족 투사 과정과 같은 가족 단위 개념이며, 사회·진화 차원으로 확장된 개념은 임상적·실증적 적용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가장 중요한 비판은 문화·젠더·폭력의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수의 비평은 보웬 이론이 백인·중산층·이성애 핵가족 경험을 전형으로 삼고 있으며, 그 안에서 가부장제, 돌봄노동의 성별 분업,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인종·계급 권력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충분히 분석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회적 정서 과정 개념에서 범죄·이혼·소송·인종 갈등·권리 담론이 모두 “퇴행의 증상”으로 묶일 때, 가부장적 폭력과 구조적 억압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이혼, 법적 저항, 권리 주장까지 하나의 퇴행 패키지로 간주될 위험이 있다. 이는 소수자·여성·빈곤층이 주도해온 해방적 실천을 병리화하거나 퇴행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또 다른 비판은 보웬의 설명이 구조적 요인을 심리적 언어로 환원할 위험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청소년 비행에 대한 고전적 연구(예: Shaw & McKay) 이후, 도시 빈곤, 주거 불안정, 지역사회 해체, 교육·노동 시장 구조 등이 비행 발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왔다. 그럼에도 사회적 정서 과정 논의는 “인구 증가, 자원 고갈, 개척지 소멸”을 불안의 배경 요인으로 제시하면서도, 분석의 초점을 결국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정서 반응”에 두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자본주의, 식민주의, 인종주의, 형벌권력과 같은 구체적 구조가 “집단 불안”이라는 중립적 언어로 희석될 위험이 있다.
요약하면, 보웬의 사회적 정서 과정 개념은 정서 시스템의 관점에서 사회 변동을 조망하는 흥미로운 시도이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권력·젠더·계급·인종을 충분히 분석하지 못하고, 구조적 문제를 심리학적 범주로 환원할 위험을 내포한다. 따라서 이 개념은 단독 이론이라기보다, 다른 비판적 이론과 결합되어 사용되어야 하는 보조적 렌즈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4. 그럼에도 남는 세 가지 이론적 함의
이러한 비판을 감안하더라도, 보웬의 사회적 정서 과정 개념은 비행 청소년과 사법 시스템을 분석할 때 일정한 이론적 함의를 제공한다. 특히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이 개념은 “문제 청소년에 대한 과도한 초점”의 역설을 정식으로 제기한다. 가정과 사회에서 문제가 드러난 한 사람 또는 한 집단에 초점을 집중할수록, 시스템 전체의 자기 성찰과 구조적 조정은 지연된다. 비행 청소년을 “교정해야 할 개인”으로만 보는 프레임에서는, 그를 둘러싼 가족, 학교, 지역사회, 사법 절차에 내장된 구조적 불평등과 정서적 역동이 쉽게 가려진다. 반대로, 모든 것을 “구조 탓”으로만 돌리는 시각에서는, 당사자가 자기 삶에 대해 선택하고 책임지는 능동적 주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축소된다. 보웬이 제안하는 방향은, 다음 세대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삼기보다, 어른 세대가 사회적 퇴행에 어떻게 기여해 왔는지 먼저 성찰하라는 것이다. 이는 소년사법제도를 설계·운영하는 판사, 검사, 보호관찰관, 상담가, 교사 등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다.
둘째, 이 개념은 불안에 반응하는 사법 시스템과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법 시스템을 구분하는 잣대를 제공한다. 보웬에게서 사회적 퇴행의 핵심은 “불안이 높아질수록 원칙보다 당장의 감정 해소를 택한다”는 점이다. 청소년 범죄가 언론과 정치의 주요 의제가 될 때, 대중의 불안과 분노는 쉽게 “엄벌주의”나 “본보기 처벌”로 수렴된다. 일정 시기가 지나면, 동일한 시스템이 다시 “비행 청소년도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전면화하며 처벌 완화와 이해로 선회하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정책 일관성과 원칙에 기초한 장기적 전략이라기보다, 집단 불안을 조절하기 위한 단기적 반응에 가까운 경우가 적지 않다.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과 재통합적 수치주기(reintegrative shaming) 논의는 처벌 자체보다 관계 회복, 피해와 책임의 명료화, 공동체 복귀에 초점을 두며,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 통합을 도모한다. 이때 사회적 정서 과정 개념은 이러한 제도와 실천이 정치·여론의 순간적 압력에 따른 반응인지, 원칙·연구·윤리에 근거한 선택인지를 구분하는 데 유용한 기준을 제공한다.
셋째, 보웬의 자기분화 개념은 퇴행기 사회에서 요구되는 시민성과 전문가의 덕목을 설명하는 데 여전히 의미가 있다. 자기분화에 대한 최근 스코핑 리뷰들은 이 개념이 정서 조절 능력, 관계 만족도, 정신건강과 유의미한 관련성을 가진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연구들을 사회적 정서 과정과 연결하면, 보웬의 주장은 “퇴행기 사회에서 생존하는 인간형은 불안 속에서도 생각과 감정을 구분하고, 원칙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라는 명제로 정리할 수 있다.
소년사법의 맥락에서 이는 도덕적 이상이라기보다, 전문적 역량의 문제로 읽힌다. 여론과 정치적 압력, 제도 내부의 피로와 냉소 속에서도 사실과 원칙, 당사자의 삶과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할 수 있는 자기분화된 판사·검사·상담가·교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착한 사람”이 되는 차원의 요구가 아니라, 집단 불안 속에서도 사유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요구이다.
5. 비행 청소년과 사법 시스템 연구를 위한 통합적 관점
결론적으로, 보웬의 사회적 정서 과정은 비행 청소년과 사법 시스템을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첫째, 이 개념은 “비행 청소년 = 문제 개인”이라는 축소된 프레임을 벗어나, 가족–학교–법원–언론–정치가 하나의 정서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명한다. 둘째, 이론 자체는 권력·젠더·계급·인종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못하지만, 그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사용할 경우, 정서 시스템 분석과 구조·권력 분석을 결합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비행 청소년과 사법 시스템을 연구하는 과제는 보웬 이론을 절대적 프레임으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1) 가족·사법·사회 전체의 정서적 퇴행 패턴을 포착하는 도구로 사용하되,
(2) 그 위에 페미니스트 이론, 비판적 법사회학, 도시·계급 연구, 인종·젠더 관점을 병치하고,
(3) “누가, 어떤 불안을, 누구에게 떠넘기고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묻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비행 청소년을 이해하는 작업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을 교정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청소년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 사회 정서 시스템의 구조와 균열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보웬의 사회적 정서 과정 개념은, 이러한 분석을 시작하게 만드는 초기 지도로서의 의미를 여전히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