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터시(ekstasis)의 경험 2

성인성녀의 성화 카드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는 생일이나 기념일에 늘 편지를 주셨다.

조선시대 서신에라도 나올 법한 오래된 맞춤법의 아름다운 궁서체의 문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어떤 선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심장 한켠이 찌릿한 감각을 받게 된다.


그래서인가 엄마는 가끔 편지나 쪽지를 줄 때가 있다.

졸업식이나 주보 성인의 기념일에는 자그마한 성화 카드 뒷면에 짧은 메모같은 편지를 건네 주었다.

지금은 그 수많은 편지들은 사라졌지만

마음 속에 보관되어 있는 편지들을 가끔 꺼내 볼 때가 있다.


대학 때 새롭게 나왔던 '청소년 성가'를 참 좋아했었다.

두툼한 성가집은 새로운 곡들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노래들은 천상의 것처럼 아름다웠다.

가끔은 유학간 친구의 요청으로 소포로 보내주기도 했었다.

나는 엄마가 준 성화카드를 성가책이나 성서에 끼워두곤 했다.

홀로 깨어 있는 밤에 성가책을 아무 곳이나 펼쳐서 속삭이듯 노래를 부르곤 한다.

나는 몇시간씩 노래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어릴 땐, 매일 미사를 참석했었다.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첫사랑의 기억도 난다.

수원 가르멜 수도원에 아는 수사님이 계셨다.

가끔 방문을 하러 가면

아무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없는 성당에서

근처에 계신 수사님들과 함께

피아노나 바이올린, 플룻 등으로 즉흥해서 모여서 하는 합창.

당시의 나는 INFP였기 때문에

몇 번 거절을 한다.

약간 붉어진 얼굴로 노래를 한다.

그 모든 기억들은 따뜻한 느낌으로 마음 속에 남아있다.


그 즈음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성가책을 뒤적거리다가 성녀의 성화카드가 툭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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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김 골롬바와 아녜스 자매의 성화.

두 성인의 하얀 휘광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

아니, 그 하얀 휘광은 나와 모든 공간을 잠식해서

완전한 공백 안에 머물게 했다.

그 순간은

영원 속에서 그대로 멈췄다.

완전한 평화 안에서 고양되는 그 기분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두 손을 앞으로 들어올려

손바닥을 하늘을 향했다.


아무런 기도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상태 그대로 한동안 머물렀다.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그 황홀경(ekstasis) 떠올랐다.





성 김효임 골롬바와 김효주 아녜스

기해박해 때 관군에게 체포되어 갖은 고문 끝에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우리나라의 자매 순교자이다.

1925년 복자로 인정된 것을 기념하는 성화이다.

당시 조선은 천주교가 금지되었던 시기이고, 두 성인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거부하고 처녀서원을 택했다. 결혼이나 가정 등의 "세속적 역할과 사회적 기대" 대신 신앙과 내적 소명을 택한 인물이면서 내적 자유와 결단의 상징이다. '여성의 존재감', '내면의 중심성', '진심과 드러냄', '말의 에너지와 진동', '감정 독립'과 같은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녀는 심한 고문 중에 이런 대답을 했다고 전해진다.

"내 몸과 마음을 순결히 하여 하느님께 봉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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