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고리에의 성모님
*사진: Unsplash
20대
당시의 나는 투잡을 뛰면서 주말도 모두 반납하고
현생에 몰두해서 살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둠 속의 관짝에 시신처럼 누워있었던 시기이다.
그때에도 나의 상태가 그렇다는 것을 어렴풋이는 깨닫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딱히 뭔가 변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어진 삶에 달라붙어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가 더 컸을 때이다.
겨울의 어느 날,
엄마는 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다.
단체 여행이 펑크 나게 생겼다며 빠진 사람 대신 함께 가자며.
어디로 얼마나 가는 여행인지도 모른 채 난 대답했다.
"그래. 언제 출발해?"
"내일 새벽. 공항이야."
그다지 짐도 없었다.
늘 입고 다니던 청바지에
애버크롬비의 양가죽 재킷
그리고 체크무늬의 연한 하늘색 캐시미어 머플러
그 상태로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길을 나섰다.
이탈리아를 거쳐
크로아티아 메주고리로 향하는 성지 순례였다.
함께 간 이들은 신부님과 성소를 가진 분들
그러니까 신부님이나 수녀님, 수도자의 길을 가기 전에
그 길을 가도 되는지 확인차 가는 성지순례 같은 것이다.
그 무리에 나와 엄마는 이방인처럼 끼어 있었다.
하긴, 지금의 내가 그 여행을 간다면,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를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공간으로 가게 되는 것일까?
메주고리에는 지금도 매 순간 온갖 기적이 일어나는 땅이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늘이 바로 땅과 연결된 곳이기도 하다.
세계에는 그런 곳들이 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는 곳이겠지만,
미국의 세도나, 크로아티아의 메주고리에 등이 있다.
자칫 잘못해서 그곳으로 갔다가 그곳에 눌러앉는 이들도 종종 있다.
하긴,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나면 벗어나기란 참 어렵기도 하겠다 생각한다.
1990년대의 크로아티아는 상당히 기이한 기분이었다.
표지판에 남아있는 수많은 총알 자국
거대한 급경사의 헐벗은 산
크로아티아는 내전으로 집단 학살이 일어났던 과거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성당에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대로 태워버렸다는 기록도 있다.
온몸이 애일 정도로 추운 그곳에서
일정에 맞춰 관광버스를 타고 어느 작은 성당에 갔다.
나무를 조각해서 만든 성모상이
성당의 제단 옆에 있었다.
내 키 정도 되는 성모상
처음 가까이서 보았을 때,
그 기이한 느낌
성당 앞 의자에 앉아서 성상을 바라보았다.
성체조배를 하듯이 조용히 앉아 있던 나는
그 느낌이 점점 커지는 것을 감각하고 있었다.
성상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수십만 개의 화살처럼
내 몸 전체를 뚫고 온 세상을 가득 채웠다.
주변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정적이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화살이 통과하는 그 상태로
멈췄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동해야 한다는 일행의 말에 그 순간은 깨어졌다.
더 머물고 싶었던 나는 성모상의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사진에는 그런 것들은 담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