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생의 지하던전을 만났을 때 우리의 적절한 태도
*사진: Unsplash
90년대 초반,
우후죽순으로 피시방이 들어서는데 일조했던 게임이 있다.
스타크래프트
대학가에선 기숙사 방대항을 벌이며 밤잠을 설칠 정도로 인기였다.
주변에 게임을 하던 이들을 따라 가끔 해보기도 했다.
2000대 롤 초기를 휩쓴 게임도 있다. 아이온
역시나 의도적으로 게임을 하지 않던 나는
주변 사람들을 따라 가끔 들어가기도 했었다.
초대를 받으면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어느 날인가
지하 던전을 들어간다며 팀원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이 왔다.
나는 그런 곳에 들어갈 레벨이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굳이 함께하기를 원해서 따라나섰다.
시간이 되어 팀원들이 모두 모이고
으스스한 지하 미궁으로 들어간다.
작은 오솔길을 앞 팀원의 뒤를 그대로 따라간다.
역시나, 나는 구멍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팀원들의 이동 경로 그대로를 따라가고 있었으나
나는 주변을 어슬렁 거리던 몹들을 하나하나 다 깨우고 있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적들은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난다.
빨리 지나가야 할 그 경로는 대량 살상 무기들이 넘쳐나는 전투장으로 변해버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손에 진땀이 난다.
그럼에도 초대한 이도, 같은 팀원들도 별 불만이 없다.
너무나 많이 해봐서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 그런 것이었나.
현생을 살면서도 그럴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의 사소한 말 한마디
몸동작의 뉘앙스와 어떤 기류
그런 것들은 그들 머리 위에 노란색 느낌표를 띄운다.
"띠링!"
별생각 없이 무시했던 그 신호들은
"띠링!"
"띠링!"
"띠링!"
하며 점차 쌓인다.
그리고 그 수차례의 쌓임 끝에 '레드 플래그'가 된다.
위험 신호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다.
현생은 게임이 아니니
'게임 오버'를 하고 퇴장할 수 없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겪으며
나는 게임을 생각한다.
갑자기 등장한 인물은
나를 지하 던전으로 데려간다.
원래는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다.
적의 미궁
상대의 그림자
폭력과 조작의 심연
지하던전은 갈 레벨이 아닌데 어째서 들어오게 되었나 생각할 때가 아니다.
그저 전쟁통에서 생존하는 것에 몰두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