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이전의 상처, 발화되지 못한 기억, 인간 심연에 관한 탐구
*사진: Unsplash
고통은 사건으로 존재할 때보다,
언어로 옮겨지지 못할 때 더 깊어진다.
상처 자체보다
그 상처를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침묵 속에 갇힌 시간이,
타인의 언어가 닿지 않는 지점이
고통을 더 잔혹하게 만든다.
정신분석은 오래전부터 이것을 지적했다.
프로이트는 “말해지지 못한 감정은 신체와 무의식으로 침잠한다”고 말했고,
카렌 호니는 “표현되지 못한 욕망과 두려움은 사람을 비틀린 방식으로 움직이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고통의 겉면만 설명한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깊은 구조가 있다.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고통은 세계 속 자리매김을 잃은 고통이다.
누구에게도 도달하지 못한 경험은
존재 자체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은 그래서 ‘고립’이 아니라
‘존재의 해체’를 경험하게 한다.
리코어는 고통의 본질을 “서사 결핍”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사건을 시간에 배열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하는데,
말할 수 없는 사건은 시간의 흐름 속에 위치하지 못한다.
그 사건은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며,
기억도 아니고,
해소된 역사도 아니다.
그저 구조 없는 응고물처럼 의식 사이에 남아
“일어났지만 말해질 수 없는 것”이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리코어는 이것을 ‘말해지지 않는 고통 le mal incurable’이라 부르며,
이 고통은 인간의 서사를 중단시키고
개인을 자기로부터 분열시킨다고 했다.
고통을 글로 쓰는 사람들은 이 지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말해지지 않은 고통은
서사화되지 못한 채
삶의 어딘가에서 ‘미완결의 문장’으로 머문다.
트라우마 연구자인 카론(Caruth)은 말한다.
“트라우마의 핵심은 사건이 너무 거대하여 언어가 붕괴되는 데 있다.”
언어로 담지 못한 경험은
뇌의 언어영역이 아니라 감각영역에 저장된다.
그래서 트라우마는 ‘설명’의 언어가 아니라
‘반응’과 ‘감각’의 방식으로 재현된다.
말하려 하면 감정이 먼저 올라오고
설명하려 하면 몸이 먼저 흐트러지고
정리하려 하면 기억이 끊기고
타인에게 말하는 순간 눈물이 터진다
그 이유는
발화되지 않은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언어로 과거를 만들지 못하면
그 사건은 현재에 계속 머문다.
그래서 말하지 못한 고통은
단지 더 마음 아픈 것이 아니라
더 오래 지속되는 고통이다.
아렌트는 인간의 고통을 두 가지로 나눴다.
말할 수 있는 고통
사유 불가능한 고통
두 번째 형태는 인간을 말 그대로 “세계에서 고립시키는 고통”이다.
고통이 커서가 아니라
그 고통이 세계 속에 위치할 언어적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렌트의 핵심 명제는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은 인간을 세계로부터 추방한다.”
말하기는
나의 존재가 이 세계에 ‘자리’를 갖는 방식이다.
따라서 발화되지 않은 고통은
존재의 자리 자체를 흔들어버린다.
"말하지 못한 억울함이 더 아프다."고 생각한 그 순간을
아렌트는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한다.
라캉은 인간의 고통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말해지지 않은 것은
사라지지 않고
바뀐 형태로 돌아온다.
말해지지 않은 상처는
관계 패턴을 반복시키고
비슷한 사람을 끌어들이고
비슷한 상황을 다시 겪게 만들고
분노·침묵·감정 폭발로 재현된다
왜냐하면
말해지지 않은 고통은 의미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미화되지 않은 감정은 정신의 음지에서
계속해서 “다시 말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그 압박감은 재반복의 바퀴를 돌리거나
고장난 라디오처럼 같은 말을 반복한다.
가득찬 압력은 글로 폭발한다.
당신의 무의식은 당신에게 말했다.
“이제 말해라. 그 사건을 언어로 만들라.”
말하지 못한 고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다.
프리커는 이것을 증언적 불의(Testimonial injustice)라고 불렀다.
사회가 ‘신뢰할 만한 사람’을 특정 범주로 한정하고
약자·여성·피해자·감정적 언어·미숙한 발화들은
애초에 진실로 채택될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피해자의 침묵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가 강요한 침묵일 수 있다.
말하지 못한 고통이 더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침묵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강요한 침묵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입장이 서로 다르지만
그 내용들에는 교집합이 있다.
말하지 못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고통은 언어가 없어서,
세계에 놓일 자리가 없어서,
사람에게 닿지 못해서 더 아프다.
어떤 고통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설명되지 못한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다.
그 과거의 고통 속에서 현재조차 영원히 불탄다.
말해지지 않은 고통은
이야기되지 못하고,
자리매김되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해석되지 못하며,
나의 서사에 통합되지 못한 채,
나를 가르는 칼처럼 계속 박혀 있는 것이다.
말해지지 못한 고통을
말해지는 구조로 옮겨가는 순간,
고통은 고통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서사, 의미, 기록, 진실, 해석
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비로소 인간은 고통 증폭기의 덫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주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