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공포를 일으키는 글은
무의식에 닿았다는 뜻이다.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둔 감정은 기억에서 지운 것이다.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글이 있다.

나에게는 '후르츠 바스켓', '코렐리아' 다.


'후르츠 바스켓'은 일본 만화다.

20대에 읽었다.

어째서 공포였는지는 모른다.

그 책을 읽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아니, 죽었다.

며칠을 일어나지 못했다.

이유는 모른다.

십수 년이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어떤 장면이 나를 찔렀던 것인지.


'코렐리아'는 영화다.

아동용 영화로 개봉해서

아이와 함께 보러 갔던 부모들은 경악했다는 영화.

'판의 미로'처럼 아동용 영화는 결코 아니다.

자칫 트라우마가 생길지도 모를 그런 공포

아이들은 각자 방으로 도망쳐버리고

나 혼자 거실에 남아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무엇이 그렇게까지 공포였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 지금에서야

그 의미를 깨달았다.


충격적인 기억은

스스로를 지운다.

그리고 깊은 심연의 무의식으로 들어가 침잠한다.

서서히 그리고 깨끗하게 사라진다.


가끔 그 기억을 자극하는 글을 만날 때가 있다.

당시엔 그게 뭔지 알지 못한다.

의식은 무의식을 억압한다.

절대 다시는 열지 못하도록


강력한 공포를 일으키는 글은

사실은 무의식에 닿았다는 신호이다.


기억의 심해에서

기억을 건져 올려

장례식을 치렀었다.

물가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며칠을 울었다.

눈물에 빠져 죽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과거의 나로 돌아갔다.

순수하고 맑은 본연의 나


그 일련의 과정들은

공포스러운 그 신호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그런 신호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저 깊은 곳에 감춰두었던 잊힌 기억

무엇인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건져 올릴 수 있다.

건져 올린 궤짝의 뚜껑을 열면

그건 나의 에너지로 회귀한다.


그러니 좋은 일이다.



“우리는 기억을 잊는 것이 아니라, 견디기 위해 무덤에 묻는다.” - 프로이트



“공포는 내면의 그림자가
나를 찾았다는 신호이다.” - 칼 융, shadow contact(그림자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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