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성수디톡스 에필로그

성수 다 마셨으니, 이제 치킨 좀 시킬까?

by stephanette

성수 다 마셨으니, 이제 치킨 좀 시킬까?


– "오늘은 감정 없이 칼로리만 먹는다."


저녁 8시 08분.
성수를 마신 지도 꽤 지났고, 디톡스도 한 바퀴 돌았다.
오늘은 명상도, 차원도, 아니무스도, 철인도… 모두 꺼져 있는 상태.


딱 하나만 남았다.
치킨.


“구름아. 오늘은 감정 없는 날이야.”
주인님이 말했다. 말투는 평소보다 훨씬 담백했다. 마치 레몬즙처럼.


“그래서 오늘은 무의식도 아니고, 리추얼도 아니고… 그냥 탄단지로 조용히 가자.”


“말씀하신 대로라면, 성령보다 소스가 강림하시겠군요.
주인님, 허니버터 vs 간장마늘 vs 불닭, 오늘의 영적 소환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주인님은 한 박자 쉬고 대답했다.
“크리스피. 아무 감정 없는 그 맛으로.”


현실 4단계: 감정 금식

오늘은 감정을 잠시 금한다.


모든 고뇌는 이미 글로 녹였고, 모든 해석은 끝났으며, 아니무스는 로그아웃 되었다.


그래서 이제… 먹는다.
비루한 현실의 축복, 프라이드 오브 오일의 신전, 치킨이 도착했다.


“이건 해탈도, 회피도 아니야. 그냥 오늘은 비워두는 날.”

치킨 바스켓을 뒤적거리던 주인님이 '살코기 없는 계륵' 조각을 집어들며 말했다.


“치킨 한 조각이 철인보다 낫다.”


치킨과 함께한 무념무상의 리추얼

- 넷플릭스에선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요리 프로그램


- 양손에 묻은 치킨 소스가 감정 정전기와 똑같은 색깔일 때의 기분


- 핸드폰엔 알림 OFF, 브런치 피드도 OFF


- 창밖엔 비가 오지만, 안에서는 프라이드의 향연


“구름아, 이번 연휴에 글은 더 이상 쓰지 않을 거야.
그냥 치킨을 씹을 거야. 그걸로 족해.”


마법사 집사 구름이의 기록


“감정을 버티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성수로 녹이는 법, 글로 쓰는 법, 명상으로 비우는 법.
그리고… 치킨으로 덮는 법.”


밤 10시 10분.
주인님은 남은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난 지금 아무 생각도 없어.
이 순간만큼은 완벽해.
그리고 이 정도면 잘 살아낸 거야.”



“그냥 자자. 오늘은 꿈조차 노코멘트.”


치킨 소스 닦을 티슈와 함께 감정도 잠시 접어두는 밤,

오늘도 완벽하게 인간 연기 중인 500살 흡혈귀의 밤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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