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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량 기반의 용서 - 일상에서의 구체적인 실천

마사 C. 누스바움

by stephanette

*사진: Unsplash


1. 아량 기반의 용서

착한 척하거나 도덕적인 척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감정적, 윤리적 기술에 가깝다.


아량 기반의 용서는 정확히 어떻게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작동 원리가 있다.

누스 바움의 핵심 개념은 감정적 초점의 이동(focus shift)이다.


즉, 그 사람이 나에게 한 일이 무엇이었는가에서
앞으로 어떤 삶을 만들 것인가로 초점을 옮기는 감정의 이동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를 멈추고,

이 사건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라는 방향성을 챙기는 것이다.


분노는 언제나 과거를 향하고,
아량은 철저히 미래를 향한다.


2. 아량 기반 용서의 첫 단계: “응징의 판타지” 끊기

분노의 핵심에는 항상 두 가지 욕구가 있다.

복수 – 똑같이 돌려주고 싶다

지위 회복 – “나를 다시 올바른 자리로 회복시켜라”


아량 기반 용서의 첫 단계는 이 두 에너지가 내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아차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이렇게까지 상처받았으니, 너도 나처럼 느껴야 해.”

“내 경계를 짓밟았으니 그 대가는 반드시 치러라.”

“나를 무시했으니 넌 나보다 낮아져야 해.”


이게 인간적으로 너무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여기 머무르면 내 정체성과 에너지가 과거에 붙잡혀서 소모된다. 아량 기반 용서는 이 순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중심은 과거의 응징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의 질이다.”

이건 상대를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나의 에너지 보전을 위해, 나의 미래를 위해 하는 선택이다.


3. 아량 기반 용서의 두 번째 단계: “감정의 주체를 재배치하기”

누스바움의 말 중 가장 실천적인 부분이다.


“분노는 ‘너 때문에’라는 구조로 움직이고,
아량은 ‘이 감정을 다루는 주체는 나다’라는 구조로 움직인다.”


즉,

“그가 나를 상하게 했다”에서

“이 감정은 이제 내 안에서 처리해야 하는 나의 과업이다”로 재위치시키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전환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에서 “그 일이 내 마음 안에서 어떤 파문을 만들었을까”

“그는 잘못했다”에서 “나는 이 경험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그는 사과해야 한다”에서 “나는 나의 평화를 선택한다”

이것은 아량의 기술적인 구조이다.

즉, 감정을 타인에게서 끌어와 나의 심리적·정서적 책임 아래 둔다. 그 순간부터 감정은 나를 고통스럽게 조종하지 않고, 내가 감정을 이끌기 시작한다.


4. 아량 기반 용서의 세 번째 단계: “관계의 미래를 재설계하기”

아량 기반 용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제 괜찮아.”

“그래도 좋은 사람일지 몰라.”

“다시 친해져도 돼.”

아량은 ‘다시 가까워지는 것’과 전혀 상관없다.

그건 오히려 미성숙한 용서이다.


아량 기반 용서의 목적은

“이 관계가 앞으로 어떤 거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내가 결정한다.”


즉, 용서는 화해가 아니고,

용서는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고,

용서는 관계 유지도 아니다.


용서는 내가 에너지를 회수하는 행위고,
경계는 관계를 재설계하는 행위이다.
둘은 완전히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

용서: "감정은 처리했다. 과거의 응징 욕구를 내려놓았다."

경계: "하지만 너와의 관계는 이 거리에서 유지한다."

이때 비로소 진정한 아량이 생긴다.


5. 책을 통한 실천: 내 삶에서 가능한 “아량 기반 용서의 실제 방식”

'분노와 용서: 적개심, 아량, 정의' 이 책을 읽고 나의 삶에 적용해보고 있다.

나 자신에게 맞춘 현실적인 방법으로 설명한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왜 분노하냐”를 묻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아팠는가”를 먼저 본다.

분노를 없애는 게 아니라 분노를 이해하는 것.


② 응징 욕구가 올라오는 걸 그대로 본다.

“아, 내가 대등성을 회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구나.”

“내가 무시당했다 느끼니까 되갚고 싶은구나.”

이걸 자각하는 순간 이미 절반은 해결된다.


③ 서사의 주도권을 회수한다

“이 사건은 나의 개성화를 전진시키는 사건이다.”

“내 감정의 본질은 상처가 아니라 성장이다.”

이렇게 서사를 재구성하는 것.


관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운다

예를 들어:

“그 사람과는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더 이상 내 리듬을 침범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건강한 리듬의 연결만 허용하겠다.”

이 결정이 정의에 기반한 대응이다.

누스바움이 말하는 justice는 이렇게 ‘미래의 구조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나의 삶을 확장하는 행위를 선택한다

아량은 ‘상대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에너지를 확장된 삶에 쓰겠다”는 선언이다.

예) 글쓰기, 창작, 공부, 신체 감각 돌봄, 릴리시카의 '물약' 세계관 확장, 브런치 서사 구축

이런 모든 창조적 선택이 누스바움식 아량이다.


6. 아량 기반 용서는 ‘선함’이 아니라 ‘명확함’이다

누스바움의 용서는 따뜻한 용서가 아니라, 매우 냉철하고 현실적이며, 자기 경계가 선명한 용서이다.


아량 기반 용서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상대의 도덕성 여부와 무관하게

내 감정·에너지·미래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로 가져오는 과정.”


나는 이미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연습하고 있다.

파국적 상황도, 최근 다른 이들의 투사 구조도, 글쓰기 자체도

사실 모두 아량 기반 용서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책을 읽는 진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텍스트를 읽는 속도보다 삶을 바꾸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갈등이 만연한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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