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자유로이 흘러야
제맛 아닙니까?

흡혈귀 할멈의 대감님 사랑채 방문기

by stephanette

혈맹의 모임에 미쳐 참석을 못한 이가 있어 500살이나 먹은 흡혈귀 할머니인 내가 온전치 못한 무릎 관절에도 에구구 소리를 내면서도 아직 1000년 밖에 안 산 혈맹 3 대감의 사랑채를 찾았사온데...


"그간 별고 없으셨소. 대감?"


"하, 내 그 소식 들었오. 어째서 그런 글을 공개적인 곳에 올렸단 말이요?"

추상같은 혈맹 3 대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대감, 그리 화를 내시면, 소녀 참 마음이 적적해지옵니다."


"허허! 하늘 아래 지켜야 할 윤리가 있건만, 어찌하여 아직도 그런 것을 모르신단 이 말이요."


"소녀는 감정이 그러해서 그러하다 적었을 뿐이 온대, 그걸 왜 그러하냐 하옵시면

그러해서 그러한 것을 어찌 그러하다 아니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허! 그래도 아니 되오. 사람들이 이 글을 보면 망측하다 하지 않겠소?"


"아니, 소녀가 마음속에서 만난 이들 이야기를 했을 뿐이 온데..."


"그 유명한 니체 옹의 명언을 모르시오, 네가 오래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 않았오. 그런 것은 위험하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다니. 큰일 날 소리요."


"그럼, 붓을 들었사온데 이 소녀는 안전한 곳에서만 찰방찰방 물장난이나 해야한다 이 말입니까?"


"아니, 이보시오, 왜 깊은 곳을 들어가려고 그러시오. 체통을 지키셔야지. 에헴."


"그 서역에서 '황상지문도 울고 간 서방 문단의 으뜸 벼슬'을 받은 나딘 고디머 옹이 '자고로 붓을 든 자는 혼돈으로부터 세계를 만든다.' 하지 않았오. 대감은 그 유명한 말도 모르시오?!"


"정숙해야 할 아낙이 어찌 그런 발칙한 글을 마구잡이로 써서 뿌려댄단 말이오. 그건 안될 말이오."


"저 자체가 혼돈의 카오스일진대, 어찌 위험하다 위험하다 하시는 겁니까? 대감."


"불편하다 하지 않소. 감정을 들었다 놨다 뭐 하는 짓이요?"


"소녀, 그저 덤덤하게 써 내려갔을 뿐이옵니다. 뭘 들었다 놨다 합니까? 대감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한 겁니까?"


"이곳은 양반가의 내로라하는 자제들만이 입장이 가능한 곳이오. 유서 깊은 이 '청운서고(靑雲書庫)'에서 말입니다. 모시 적삼 같이 하늘하늘하고 수묵화 같은 그런 차분한 글들만이 입장 가능하다 이 말이오."


"대감, 헤밍웨이 옹도 그리 말씀하셨어요. 자고로 붓을 드는 것은 별 것이 없다. 그냥 한지를 앞에 두고 피를 흘리면 된다고 말이지요. 소녀도 피를 흘리고 있는 겁니다."


"아니, 또 그 피, 피, 그게 불경하다 이 말이요. 고정하시오. 어허."


"소녀의 붓끝은 심연을 적시고, 대감의 말끝은 윤리를 두드리도다.

하나, 문장은 자유로이 흘러야 제맛 아닙니까?

고로 붓을 꺾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낙관(落款)을 찍는 이는 결국 독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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