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메타인지를 위한 지도 제작이다.

하나의 챕터가 끝나면, 과거의 도구들은 버려도 된다.

by stephanette

내가 소설을 쓰는 목적은 한 가지다.

그림자 대면.


글에 나타난 반복된 상징, 인물이 놓인 위치, 사건이 흘러가는 방향, 되풀이되는 장면들을 분석하면

자신이 무엇을 생각했는지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생각을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하고,

그 생각이 생성되게 된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글을 도구 삼아 내면의 지도를 제작하는 것은 유용하다.


자신이 늘 가는 지름길을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왜 그런 우회로를 만들었는가?

그것을 통해서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그것을 통해서 피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글쓰기는 메타인지를 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두웠던 내면의 지도가 밝아진다.


한 인물을 바라보는 이유는 그 인물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자신의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 순간의 어떤 지점이 중력을 갖기 때문이다.


메타인지를 통해

생각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본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왜 이런 인물을 불러오는가, 왜 이런 결말을 만드는가, 왜 어떤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고 분노라고 부르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글은 자신을 대신 고백하고, 동시에 자신을 숨긴다.

그러니, 무엇을 피해서 이렇게 쓰게 되었는지를 보는 일이다.

사실과 글쓰기의 간격을 통해서 자신의 실체가 드러난다.


수치심, 분노, 인정 욕구, 투사, 사랑의 오독, 권력관계, 취약함, 방어 같은 무겁고 복잡한 감정과 생각의 밀도를 견디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글을 분석한다는 것은

자신이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일이다.

왜 이 길로 왔는지,

왜 여기서 멈췄는지,

왜 이 장면 앞에서 자꾸 돌아섰는지.

어떤 우회로는

아직 직접 볼 수 없는 자기 자신을 타인의 얼굴을 통해 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글쓰기는 내면의 구조를 읽는 장치가 된다.


문장은 지도가 되고,

인물은 표식이 되고,

반복되는 장면은 아직 통과하지 못한 문이 된다.


그림자 대면이란,

자신의 민낯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 즐겁지는 않다.

고통스럽다.


사랑이라 불렀던 것 안에 무엇이 섞여 있었는지,

분노라고 불렀던 것 아래 어떤 경계가 있었는지,

운명이라고 느꼈던 장면 안에 어떤 오래된 반복이 있었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는 만큼,

타인도 조금 더 정확히 보인다.


내가 나의 투사와 우회로와 방어를 알아차릴수록,

타인도 그의 표면만으로 판단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지도를 들고 산다.

누군가는 직선으로 가는 것이라 믿지만 사실은 오래된 상처를 피해 돌아가고,

누군가는 멀리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까이 가는 법을 배운 적 없을 수도 있다.


글쓰기는 그 지도를 읽는 연습이다.


먼저 나의 지도를 읽고, 그다음 타인의 길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연습.


그래서 나는 한동안 소설을 썼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내가 늘 돌아가던 길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나의 챕터가 끝나면, 과거의 도구들은 버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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