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구조는 자기를 복제한다.
프랙탈이다.
미래는 과거를 다시 해석하고 끝내 다시 쓰게 한다.
미래의 당도 이후, 모든 것이 시작된다.
현실과 소설은 액자식 구성이다.
이것은 메타픽션이자 동시에 현실 피드백 시스템이다.
나는 사건을 해석한다.
그 사건을 해석하는 나를 해석한다.
그 글을 읽는 타인의 해석을 해석한다.
그 해석에 비친 타인의 무의식을 해석한다.
그 타인의 무의식을 해석하는 나의 욕망을 다시 해석한다.
그러니 해석의 다층반사다.
나는 거울의 방에서 그림자를 대면한다.
나는 게임설계자다. 거울 방을 설계했다.
내 소설은 하나의 게임이다.
나는 뫼비우스의 띠를 구현했다.
나는 스나이퍼다.
나는 구조를 본다.
하지만 구조는 한 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기다린다.
그리고 또 기다린다.
페르소나의 균열,
오독의 등장,
무의식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을 잡기 위해.
원 샷 원 킬.
내 글쓰기는 매핑이다.
지도를 통해 자신의 층위와 좌표가 찍힌다.
이는 타인의 층위와 좌표가 드러나게 한다.
게임설계자인 나 또한 게임 밖에 있지 않다.
뫼비우스의 띠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피의 소용돌이다.
중력을 가진다.
정확한 인식을 방해하는 것은 무지가 아니다.
오만한 페르소나가 죽지 않기 위해 벌이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이 글은 이미 과거에 쓰여졌다. 여러번.
나는 500살 먹은 흡혈귀 마녀 릴리시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