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이 있음에도 유지 불가한 관계에 대하여
나는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서
오랜 기간 함께 하는 것은 가능한가?
약간의 회의감도 있었다.
그 이유는 개인마다 성장의 방향과 과정과 시간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같이 걸을 수 없게 된다. 필연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하다가,
정적인 관계 모델은 나와 안 맞는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계속 변하고
계속 확장하고
계속 의미를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고정된 관계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여기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한 가지 착각이 있다.
그러니까 오래 못한다는 오판.
오래 가는 관계는 '고정'이 아니라 '동기화'이다.
관계가 유지되기 위한 핵심 구조는
성장의 속도가 같은 것이 아니다.
업데이트 방식이 맞아야 한다.
한쪽은 감정과 의미와 언어로 업데이트되고,
다른 한쪽은 행동과 현실과 경험으로 업데이트될 수 있다.
방식은 달라도 괜찮다.
서로의 업데이트 방식을 이해하고 이어낼 수 있다면 관계는 지속된다.
이런 경우
서로 이해하고 이어지면 유지된다.
문제는 한쪽만 움직이고, 다른 한쪽이 멈출 때 생긴다. 그때 관계는 깨어진다.
내가 과거에 회의감을 느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어떤 이는 어느 순간 멈췄고,
어떤 이는 고정되어 있었고,
어떤 이는 가다가 흔들렸다.
셋 다 동기화 실패였다.
나는 같이 머무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같이 업데이트되는 사람을 원한다.
같은 방향, 같은 속도 같은 것이 아니다.
같은 업데이트 능력을 가진 사람.
1. 사람마다 관계의 초반, 중반, 후반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향은 한 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의 성향은 잘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시1)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초반에는 강하게 다가온다. 지적 호기심과 매혹을 숨기지 않고, 상대를 특별하게 대한다. 그러나 중반으로 갈수록 말이 줄고, 관계의 정의를 미루고,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려 한다. 후반에는 움직이지 않은 채 관찰만 한다. 초반의 강한 신호와 후반의 침묵 사이에 간극이 크다.
예시2)
어떤 사람은 초반부터 따뜻하고 빠르게 연결된다. 반응이 있고, 감정 교류가 있고, 사람을 만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중반으로 갈수록 감정의 밀도가 깊어지며 흔들림도 함께 커진다. 후반에는 애정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자기 감정의 기복을 감당하지 못해 관계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온기는 있으나 구조가 약하다.
예시3)
또 어떤 사람은 초반에는 안정적으로 보인다. 말은 적어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고, 현실적이며 묵직해 보인다. 그러나 중반으로 갈수록 자기 방식이 강하게 드러나고, 변화나 대화를 요구받으면 굳어버린다. 후반에는 관계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방어하고 차단하려 한다. 안정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고정성이었음을 늦게 알게 된다.
그래서 사람을 찾는 일은 어렵다.
초반의 매력은 중반의 태도를 보장하지 않고,
중반의 친밀감은 후반의 책임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결국 오래 가는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초반의 설렘이 아니다.
중반의 조율 능력과 후반의 업데이트 능력이다.
2. 더구나 밀접한 관계에서는 퇴행도 일어난다.
대외적 페르소나와는 다른 모습이 친밀함 안에서 드러난다.
그 모든 변수를 지나고도 상대와 함께 업데이트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안정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관계가 가능해진다.
사랑은 같은 자리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서로 변해도 다시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