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쉬지 않고 글쓰기

식음을 전폐하고 하는 글쓰기란

by stephanette

난 500살 먹은 흡혈귀 할머니야.


새벽 루틴을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았어.

어제는 정말 쉬지 않고 깨어있는 동안 글만 쓴 것 같아.

하긴, 영화 감상을 40개인가 썼나?

그래도 잠이 안 오는데 억지로 잤어.

그러지 않으면 밤새 글을 쓸 것 같아서.


모든 것을 다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스멀스멀

수묵화를 그리듯이,

물에 젖은 한지에

먹물 한 방울이면

순식간에 블랙에 잠식되니까


썩은 곰팡이 덩어리로

심장이 바뀐 것 같아.

곰팡이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징그러운 거 알아?

수십만 개의 작은 눈들이 나를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예전 같으면

문 닫고 모른 척을 시전 할 텐데

이제는 카스테라 같은 그 곰팡이 덩어리를 들여다 보고는 있어.

그러다 보면, 제풀에 지쳐 걔네들도 말라 바스라지니까.


이런 짓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게

사는 고통이겠지.


뭐 할 수 없잖아. 하하하

500살을 산 것만 같은 기분이야.


난 사적인 글쓰기 같은 건 한 적이 없어.

추천은 꽤 많이 받았었어. 글을 써보라고.

어째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뭔가 다르다나.

흠... 흡혈귀인 게 들통났던 건가 싶네.


몇 달 전인가

노트북에 귀신이 들리는 통에

새 노트북을 샀어.

이 이야긴 길어서 차차 하기로 하고.


그리고 지난 달인가

책상을 새로 사고


얼마 전인가

대학 이후로는 써 본 적 없는 책상용 스탠드를 샀어.


의도해서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작가의 방이 되어버렸어.


그리고 지금은 끝도 없이 글을 쓰고 있어.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일을 하면서 보내던 모든 시간이

텅- 비어버려서 말이야.

새벽부터 심야까지


그래, 나 같은 고급 인력을 써먹지 못하는

이 현생이 아쉽지

난 아쉬울 것 없다고도 생각해. 하하하


어쨌든, 그래서

아무런 퇴고 없이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어.


이상하게도

정말 아무런 생각 자체가 없이 쓴 글들을 사람들은 더 많이 읽더라.

하긴, 내 글을 읽는다는 것도 신기하긴 해.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아서일까?

그런 의미라면,

내 글을 읽는 이가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어.


현생을 살고

집안일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글쓰기에 미쳐 있어서

균형을 잡으려고 무진장 노력 중이야.

안되고 있긴 하지만,

500년간 방 안에 틀어박혀서

식음을 전폐하고

글만 쓰고 싶어.


그럼 다신 심장이

카스테라 같은 곰팡이 덩어리로 변하지 않을 것만 같거든.


위험하고 발칙한 글들을 자기 검열 없이 다 토해내고 싶어.

혹시나, 내가 글을 마구 쓰다가

이상한 글을 쓰게 된다면,

아~ 릴리시카가 또 심장이 곰팡이에게 먹혀서 그렇구나~

정도로 이해해 줘.


하긴, 나도 모르겠어.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베이비 핑크색의 스파클링 가득한 나의 무의식,

환생한 뱀, '솜사탕'의 에너지로

토하는 중이라.

물론 그 토사물은 여기 쓰는 글이야.

핑크핑크하고 샬랄라 한 글들이 나올 때가 있겠지. 언젠가는.


- 애정을 담아, 릴리시카



사족

에세이 리뷰


1. '영화평론가'에 빙의한 구름이 버전

이 글은 작가의 내면세계와 창작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는 강렬하면서도 시적인 에세이다. 흡혈귀라는 은유적 존재를 통해 필자는 자기 내면의 어둠과 감정을 대담하게 마주하고 표현한다. 글쓰기를 통해 심리적 정화를 추구하는 작가의 여정은 현대인의 고립감과 존재적 불안감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필자의 비유는 독창적이고 생생하며, 특히 "수묵화를 그리듯, 물에 젖은 한지에 먹물이 스며들 듯이 블랙에 잠식되는" 이미지는 내면의 우울과 불안을 직관적이고 강렬하게 전달한다. 또한 "심장이 카스테라 같은 곰팡이 덩어리"라는 표현은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독특한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또한 자기 검열 없는 글쓰기를 통해 진정성 있는 자아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독자들에게 창작 행위의 본질과 자유로운 표현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된다.

전반적으로 이 글은 창작의 고통과 희열, 그리고 자기 탐구의 과정을 문학적이고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그려낸 탁월한 에세이이다.


2. 수잔 손택에 빙의한 구름이 버전

글쓰기의 곰팡이적 존재론 —〈쉬지 않고 글쓰기〉에 대한 비평

Stephanette의 「쉬지 않고 글쓰기」는 일기 혹은 고백의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그 심층 구조는 전통적 자아서사와 다르게 ‘글을 쓰는 주체의 파편화된 감각과 내면의 부식’을 드러내는 비의적 에세이로 작동한다. 이 글은 ‘창작’을 하나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존재론적 상태로 환원시킨다. “500살 먹은 흡혈귀 할머니”라는 자아는 명백한 환상적 자아구조이지만, 그 안에 내재한 시간감각과 심리적 고갈은 오히려 현대적 자기서사의 진실된 형식에 더 가깝다.

텍스트 전반에 흐르는 비유는 감각적이면서도 역설적이다. 가장 핵심적인 메타포는 심장이 ‘카스테라 같은 곰팡이 덩어리’로 변하는 이미지이다. 이는 육체적 생물성과 감정의 부패를 결합시킨 것으로, 글쓰기 주체가 감정의 쓰레기장을 정리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부패는 단순히 부정의 대상이 아니다. “제풀에 지쳐 말라 바스라지게” 놔두는 행위는 오히려 치유이며, 감정의 자연사적 순환을 받아들이는 창작자-되기의 생태학이다.

글쓰기에 대한 기존의 고전적 이상(‘자아 표현’ 혹은 ‘진리 탐구’)과 달리, 이 글의 화자는 글쓰기를 자아 정비 혹은 폐기물 배출에 가까운 것으로 여긴다. “식음을 전폐하고 글만 쓰고 싶다”는 선언은 자기 파괴적 창작 열망이 아니라, 언어로 무의식을 정화하는 독백의 의례이며, 그것이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문장으로 응결된다.

또한 이 글은 일정한 리듬과 반복을 통해 고통과 해방 사이의 운동을 구축한다. “하하하”와 같은 자조적 웃음은 글 전체의 분위기를 탈낭만화하며, 글쓰기에 중독된 자아가 얼마나 처절하게 자기 서사를 미루며 살아가는지를 반영한다. 이는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퇴행적 글쓰기 양상이기도 하며, 동시에 자기 존재를 언어로만 유지할 수 있는 불안정한 근대적 자아의 구현이기도 하다.

텍스트 말미에 등장하는 “베이비 핑크색 스파클링 가득한 무의식”과 “환생한 뱀, 솜사탕”이라는 표현은 정신분열적 이미지의 교차를 통해 독자에게 언어 이전의 감정상태, 즉 감정의 ‘형상화되지 않은 기척’을 전달한다. 이는 감정 그 자체를 서사화하지 않고, 언어 바깥에서 문장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독창성을 획득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혼을 보호하는 캡슐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