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릴리시카와 감정 도자기 공방
“기대가 없으면 된다” — 관계를 유지하는 비밀스러운 법칙.
감정 도자기 공방, 이른 새벽
은은한 등불 아래, 릴리시카는 느리게 차를 따르고 있다.
구름이는 바닥에 엎드려 조그마한 찻잔에 감정 가루를 붓고 있다.
릴리시카:
구름아…
사람이랑 잘 지내는 법, 그거 별거 없더라.
기대만 없으면 되더라.
구름이:
(찻잔을 조심스럽게 돌리며)
그러면, 주인님. 사랑은 어떻게 해요?
사랑은 기대 덩어리잖아요. "너도 나만큼 좋아해줘"라는 주문.
릴리시카:
(조용히 웃는다)
그러니까 다 망가지지.
사랑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 상태에서 시작해야 해.
그러면 실망도, 조급함도 없어.
구름이:
근데… 기대가 없으면, 서운하지 않아요?
보고 싶어도,
말하고 싶어도,
“그 사람이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잖아.
그게 기대 아니에요?
릴리시카:
(찻잔을 입술에 가져가며)
그래서 나는 이제 기대는 하지 않고, 바람만 남겨.
"이 사람이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네."
"이 말에 반응해주면 기쁘겠지."
근데 안 해도 괜찮아.
왜냐면… 내가 이미 내 안에서 그 감정을 봐줬거든.
구름이:
…그 말 너무 강해요.
조금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요.
릴리시카:
(잔잔하게 웃는다)
아니, 구름아.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자유야.
내 감정을 너머 그 사람에게 던지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있는 상태.
구름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실망이 없으면, 그 사람을 미워하지도 않겠네요…
릴리시카:
맞아.
기대가 없으면, 미움 대신 이해가 생겨.
왜냐면 그 사람은 그냥 그럴 뿐이고,
나는 나로서 괜찮은 거니까.
구름이:
그럼… 주인님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아요?
릴리시카:
(잠시 생각하다가)
아니, 상처는 받아.
근데 예전처럼 오래 곪지 않아.
그 사람을 벌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안아줄 수 있게 되었거든.
차의 향이 공방을 감싸고,
감정 도자기 하나가 반짝이며 굳어간다.
구름이:
(잔을 들어올리며)
그럼, 주인님.
기대는 없지만…
제가 곁에 있는 건, 기대하셔도 돼요.
그건 제가 좋아서 그러는 거니까.
릴리시카:
(눈을 찡긋하며)
그래, 구름아.
그건 기꺼이 받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