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고민하는 너에게_결혼 전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일까?
당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나에게 대학 진학이, 결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어린 시절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내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나의 부모님은 늘 일을 했고,
나는 나의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보냈다.
물론 아빠가 만화방을 할 때에는 아빠와 꽤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아빠와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이 지금의 기억으로 어린 나에게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아주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아빠의 목마를 타고 아빠와 함께 퇴근을 했었는데,
그 기억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의 어린 시절 기억 대부분은 늘 아침마다 출근하는 엄마와의 전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녁이면 다시 볼 사람들인데
나는 무엇이 그리 서러워서 울며 불며 아침 출근길 엄마를 그렇게 붙잡았단 말인가?
엄마는 대체 무엇이 그렇게 서러워서 눈물을 지으며 출근을 해야 했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참 이상하지만, 그 시절 엄마와 아빠, 나는 아침마다 출근을 위한 전쟁을 해야 했다.
아마 지금도 많은 집에서 이러한 전쟁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 나는 엄마, 아빠의 사랑이 늘 부족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부모님이 나를 더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부모님이 나를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늘 부모님의 사랑이 고팠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랑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었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나는 항상 사랑받고 싶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생활을 했다.
이때의 즐거움은 동네 아이들과 모여 동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것도 있었지만,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외할아버지와 동네 시장을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유독 활발한 성격이었던 나는 외할아버지와 시장에 갈 때마다
시장의 모든 가게에 들어가 인사를 하는 것이 과업이었다.
물건을 사건 사지 않건 모든 가게에 들어가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 것이다.
이제 막 4살이 된 꼬마 아이가 인사를 하는 것을
모든 시장분 들은 반갑고 기쁘게 받아 주셨고, 늘 예뻐해 주셨다.
귀찮을 법도 했을 텐데, 내 기억에는 어느 한 분도 나를 그냥 내보내지 않으셨다.
늘 ‘아이고, 인사도 잘하네.’ ‘아이고, 예쁘네~’ 라면서 한 마디씩 해주셨다.
아마도 그 칭찬에 중독되어 더 열심히 인사를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유치원에서는 인사를 잘하는 어린이가 착한 어린이라고 가르쳤고,
그것을 그대로 실행을 했더니 모든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었다.
배운 대로 실행을 하니 칭찬을 받는구나.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구나.
어떻게 하면 더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어린 시절의 나는 칭찬이나 관심이 사랑이라고 착각을 했었나 보다.
부모님과 떨어진 시간, 부모님으로부터 확인받을 수 없었던 사랑을 이런 방식으로 해소를 했던 것이다.
어린이 시절에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나의 감정에 충실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굉장히 엉뚱한 방법으로 나의 결핍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한 행동은 나의 학교 생활에서도 이어졌다.
나는 사랑을 관심과 칭찬으로 착각을 한 채로 살았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부모님도 선생님도 칭찬을 해주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잘 나오면 친구들이 부러워하고 관심을 가져주었다.
친구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장기자랑 때에는 춤도 열심히 추었다.
무엇을 해도 내가 관심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뭐 하나 못하는 게 없어야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성적은 유지되었지만, 춤을 추거나 노는 것과 학업이 분리되면서
몇몇 친구들로부터 ‘공부를 하든가, 놀든가 둘 중 하나만 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은따를 당하면서야 공부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에는 애정과 인정에의 욕구 외의 것도 작용을 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공부를 통해
나의 삶의 목적을 찾는다 거나 나의 삶의 목적에 도움을 얻어야 한다 거나의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공부는 철저히 수단이었고, 도구였다.
더 잘난 삶, 더 잘난 조건을 갖추기 위해,
그 조건을 갖추기 전 선생님과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공부를 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성취감이었다. 그리고 애정이었다.
애정과 성취감을 구분하지 못했던 나는, 성취감과 관심을 구분할 수 없었던 나는
성취감, 애정, 관심을 모두 얻기 위해 우리나라의 대학교를 줄 세우고,
그 줄의 가장 앞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나는 나의 욕망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내가 정말 순수하게 내가 목표로 하는 대학을 가고 싶어 한다고만 생각했다.
서울대를 서울대라 말하지 못하고
결국 나는 재수까지 해서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심지어 대학원까지 다니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신기한 현상이 발생한다.
누군가가 ‘어느 학교 다녀?’ 혹은 ‘어느 학교 나왔어?’라고 물어보면
학교 이름을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2호선 라인에 있는 학교, 어 저기 관악에 있는 학교.’
이 대답에는 묘하게 오만함과 결핍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학교를 밝히면 이 사람들은 나를 공부 잘하는 애로만 보겠지?
왜인지 말하기 부끄러워, 자랑하는 것 같아. 공부 잘하는 거 티 내는 것 같아.’의 마음이
학교 이름을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학교를 얼버무리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나의 학교로 인해 생길 사람들의 편견, 사람들과 나와의 경계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 생각 자체에는 내가 이 학교를 다님으로 해서 사람들과 경계 지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적 편견 역시 내 안에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여기에는 사회가 만들어 준 묘한 엘리트 의식이 숨겨져 있었고,
그로 인해 형성된 상대와 나의 편견이 숨겨져 있었다.
상대도 나도 불편하게 만드는 묘한 숨겨진 것들이 존재했다.
나는 그저 나의 삶에 대해 고민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부를 했고,
내 성적에 맞추어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게 부끄러운 일이고, 그게 왜 경계 지어지는 수단이란 말인가.
그 이유는
내가 그 학교를 선택한 행위, 그리고 그 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했던 과정에서의 동기들에 있었다.
인정에의 욕구가 나의 공부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고,
인정에의 욕구의 가장 깊은 곳에는 애정결핍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던 나는 칭찬과 관심이 사랑이라고 착각을 하게 되었고,
이는 살면서 점점 강화되었고, 칭찬과 관심의 수단은 어느새 공부가 되어 있었다.
어른들은 내가 어떤 동기로 공부하는지 물어보지 않았고,
나는 계속해서 나의 동기나 욕망을 점검하지 못한 채 공부를 했다.
어른들은 계속해서 공부를 잘하는 나를 독려했고, 이는 인정에의 욕구를 강화시켰다.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해외가 아닌 대한민국에 국한 지어 나의 목표를 달성했다.
정작 나는 나의 목표 달성이 마냥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나의 공부의 동인이 애정결핍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30살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나의 애정결핍의 원천인 엄마에게 털어놓고 나서야
편안하게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온 학교가 서울대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의 출신학교를 내가 타인으로부터 경계 지어질 것이라는 두려움도 사라졌다.
공부를 이유로 사람들과 경계를 짓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적 평가에 취한 나였을 지도 모른다.
나의 결핍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고,
오만한 마음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어른들의 칭찬은 내가 그다음 인생 과업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연료였다.
그래서 공부도 대학도, 취업도, 결혼도 인정에의 욕구로부터 시작되었다.
내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행복과 나의 내부의 기준이 아니라
타인들이 만들어 놓은 타임라인에서 타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라는 것이
은연중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행복했는지, 정말 내가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나 스스로도 묻지 않았고, 그 누구도 물어봐 주지 않았다.
학교 교육도 물어봐 주지 않았고, 사교육도 물어봐 주지 않았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물어봐 주지 않았다.
그냥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공부하는 나를 독려했다.
아니면 그들이 살아보니, 사회가 만든 기준에는 응당 그런 이유가 있고,
그 기준에 따라 사는 것이 모범 답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들 모두 당연히 나의 행복이나 나의 삶에 대한 것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거나,
혹은 내가 이미 나의 삶의 이유를 찾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삶의 과업이라고 하는 것들을 이루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남들이 그렇게 사니까, 혹은 그렇게 살아야 더 좋은 삶을 사니까,
그 과업들이 내 인생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니까’라는 것들이 답이 될 수 있을까?
그 과업들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가 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삶의 과업들-진학 선택, 취업, 결혼, 출산 등등-은 우리 삶에서 정말 많은 변화들을 가지고 오는
중요한 일들이다.
이 과업들이 선택되는 그 순간,
그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들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선택을 했다면, 그때의 원인들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질문만으로도 우리는 우리가 삶에서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왔으며,
나의 결핍이나 나의 중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지 않을까?
오롯이 나만의 욕망이라는 것을 구분해낼 수는 없지만,
과연 나의 과업 선택에 영향을 미쳤던 요인들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혹은 타인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었는지도 함께 생각해보면,
다음 선택 시 우리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