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고민하는 너에게_결혼 전에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결혼제도가 없는 결혼생활을 꿈꾼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이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나에게 매우 이상적이고 누군가에게는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제도권에 흡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았는데, 병원을 가야 한다거나 학교를 보내야 한다거나 등등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들이라면,
제도 없이도 자신의 사랑의 진실성과 상대에 대한 신뢰감만으로도 함께 살아갈 수 있고,
그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바라는 결혼 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가족의 삶에서도 문제는 당연히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결혼 제도와 규범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알고 있음에도
무조건 일반적이니까 그것이 규칙이고 규범이니까 라는 이유로
결혼 제도 안에 나를 편입시키기는 어렵다.
선택할 수 있다면, 두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려해보고,
선택해도 좋을 것 같다.
왜 우리는 기존의 것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대안에 대해서 고려해보지 않고,
기존의 것들을 당연한 듯이 선택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의문이다. 물론, 어디에도 답은 없다.
나 역시 기존 제도 이외의 것은 경험해 보지 못했고, 그에 기반하여 기존 제도를 거부하고 있을 뿐,
기존 제도가 없었다면, 나는 이런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일 뿐이다.
나의 이러한 생각들은 점점 깊어졌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형태를 나의 원가족이 수용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들어가지 않을 뿐, 가족을 형성하는 본질은 다르지 않으니
나도 나의 파트너도 가족에게 알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과의 관계 맺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결혼 제도에 편입되지 않는 가정 만들기(쉽게 생각하면 동거)에 대한 생각을
미리 부모님과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봐서 알잖아
독립을 한 후로 집에 자주 가지 않게 되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보수적인 아빠는 나의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놀라면서도 내 앞에서는 태연한 척하시고
내가 집을 떠난 후에야 걱정에 걱정을 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선은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결혼은 영 생각이 없어?”
“엄마, 난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할 생각이 없어. 엄마도 대한민국에서 아내도 해 보고, 엄마도 해 보고, 여자로 살아봐서 알잖아.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엄마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여성에게 짐 지워지는지. 난 엄마처럼 살 자신이 없어.”
“그래. 엄마도 알지. 그래도..”
“그래서 말인데 엄마. 동거는 어떻게 생각해?”
“그래도 동거는 좀…”
“응, 알겠어.”
엄마의 입장은 바로 표현이 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내가 설득한다고 좁혀지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살아온 세월과 엄마가 쌓아 온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설득의 문제가 아니다.
엄마의 생각과 의견은 나의 생각과 의견과는 별개다.
물론 나 자신이 긴 고민 끝에 동거가 나에게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선택 후 엄마께 말씀드리면 된다.
이 경우 나는 나의 ‘일방적인 통보’에 대한 엄마의 서운함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섣부르게 행동하거나 섣부르게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통보’에 대한 엄마의 서운함이 얼마나 큰 지 이미 두 번째 퇴사에서
매우 호되게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남자 친구도 무언가 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채 함께 가정을 이루는 것에 동의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결국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렇기에 부모님과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이미 사건이 발생한 후 알게 되시고, 너무 놀라시거나 배신감을 느끼지 않으시길 바랐기 때문이다.
집에 들렀을 때, 다시 엄마는 물었다.
“결혼은 아직 먼 이야기야?”
“응 엄마. 난 진짜 그다지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고 싶지 않아. 그때도 이야기했잖아. 나는 동거가 더 좋은 것 같다고. 그러다가 아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제도에 편입이 되어야겠지만… 동거는 어때? 동거가 더 나은 것 같지 않아?”
엄마는 쉽사리 대답을 못하시고, 한숨을 약간 내쉬었다.
큰 딸의 생각이 당신의 생각보다 확고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큰 딸이 반복해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어떤 경험을 통해 큰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지금의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엄마는 정확히 알고 계셨다.
그러나 동시에 엄마는 딸의 동거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남의 집 딸이면, 멋있다고, 그 집 엄마에게 딸 멋지다고 이야기해 주겠는데… 네가 내 딸이라서..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내가 널 어떻게 공부시키고, 얼마나 아끼고 아껴서 키웠는데..라는 이야기가 막 하고 싶어.”
엄마는 웃으시면서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엄마에게 미안했다.
나의 엄마도 젊은 시절 진보적인 여성이었고, 그녀만의 꿈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는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의 삶을 엄마와 아내로 수용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엄마와 아내의 삶을 선택함으로써 엄마가 얻는 행복도 있었겠지만,
엄마가 감수해야 하는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을 키우면서 엄마가 생각했던 미래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의 수많은 갈등과 대화를 통해서 나의 삶이 엄마의 기대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서로 이해해왔다.
그 덕에 엄마는 나의 삶을 많이 이해하고 수용해주었다.
다만, 엄마가 생각했던 엄마의 미래가 있기 때문에,
사실 평범하지 않은 나의 결혼관이 엄마에게는 매우 당황스러운 요소였을 것이다.
엄마의 머릿속에서 한 번도 그려보지 않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딸이 그리는 딸의 미래는 딸의 것이고, 딸의 가치관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고,
같은 여자로서 대한민국에서 엄마와 아내의 삶이 가지는 장단점을 알기 때문에
엄마는 쉽게 딸의 의견에 반대하지 못했다.
다만, 엄마가 그리지 못한 엄마 자신의 미래와 딸의 미래에 대해서 웃음과
간접적인 ‘내가 어떻게 키운 딸인데’라는 말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심지어 대놓고 시원하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하지도 못하셨다.
그런 말이 목까지 올라오지만, 말을 못 하겠다고 하셨다.
엄마는 다시 한번 당신의 딸을, 당신 딸의 가치관을, 당신 딸의 삶을 그렇게 존중해 주셨다.
그 뒤로 동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정말 가정을 꾸릴 때, 그 형식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니,
그 전에는 부모님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주면 안 되겠니?라는 말 자체도 폭력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 나의 부모님은 그
저 그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움을 당신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며
나에게 더 이상 화도 내지 않으신다.
그저 온전히 나를 존중해주시고 배려해주신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나는 미안하고, 고마워서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웃으면서 되받아 쳤다.
“엄마,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이야기하기에
엄마 딸은 이미 평범한 과업의 길에서 너무 벗어났어.”
Q of OUTRO
당신의 인생 과업의 과정과 당신 부모님의 인생 과업의 과정은 얼마나 닮아있는가?
당신의 인생 과업의 선택 여부와 시기에 대해서 부모님과 얼마나 이야기 나누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