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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Sep 15. 2021

020. 결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니까

결혼을 고민하는 너에게_결혼 전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여태까지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왔지만,

사실 내가 연애에 대해서, 결혼에 대해서, 그리고 출산과 양육에 대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나는 결혼도 출산도 양육도 경험해보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하고 나면 연애에 대해서도 결혼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연애와 결혼, 출산과 양육, 가정의 형성의 장단점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각자의 얼굴가 성향이 다르듯

연애의 목적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각자의 인생의 과업은 각자가 설계하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정해 놓은 인생의 과업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인생에 맞게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사랑과 가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러한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연애가 결혼으로 끝나지 않았다고 해서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스스로에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

결혼이라는 것은 연애보다도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이므로 당연히 선택에 있어서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결혼의 방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 제도적이고 규범적인 결혼은 진실한 사랑에 있어서 크게 필요한 것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결국 현재의 용어로 규정하자면 나는 사실혼을 인정하고, 사실혼 관계로 살고 싶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사실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제도 안에 있는 법적 혼인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많은 사람들은 사실혼 관계나 동거에 대해 관계가 불편해질 때 언제라도 등 질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관계가 불편해질 때 언제라도 등을 지는 것은 제도혼 내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도가 그러한 이별을 조금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나

이 역시 우리의 관습들이 만들어 낸 장애물일지도 모른다.

관계의 종결은 그것이 제도 내에 있건 제도 밖에 있건 관계의 주체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주체들이 그 관계와 상대를 대하는 태도이다.

제도 내에 있더라도 관계와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가볍다면 그 관계는 쉽게 깨어질 수 있다.

즉,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상대와 나의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철학이다.


제도가 우리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제도에 우리의 가치관이 얽매어있을 필요는 없다.

제도는 우리의 삶을 간명하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우리의 삶이 제도에 의해서 최소한이 될 필요는 없다.


나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함께 할 배우자에 대해서 성숙하게 생각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제도 안이건 제도 밖이건 누군가와 진지하게 관계를 맺고 가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었을 때 가정의 형태는 우리에게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가가 가정의 핵심이라면,

자녀들 역시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매우 이상적인 형태이지만,

나는 가정으로부터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서로 배려하는 것, 그 형태가 어떤 형태이건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제도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이라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그 가정을 이루기 위한 결혼이라는 관계 맺기로부터,

그 관계 맺기를 위한 연애로부터 이 것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연애는 단순히 인생의 과업을 넘어

우리가 삶에 대해 가져야 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경험이다.

그러니 우리는 연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타인이나 사회의 속도와 기준이 아닌 자신의 속도와 기준으로 경험해 나가야 한다.

 연애와 결혼, 출산, 육아의 속도와 경험 유무가 우리 인생의 성패를 결정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가끔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편견이 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는 완벽한 존재로 태어나,

사회의 영향을 받아 불완전한 인간으로 자라나,

그 상처와 불완전함을 치유해가며 완전함을 찾아가는 과정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받고 사랑에 상처 받으며 점점 더 성숙해지고 완전해지고 있는 것 아닐까?


평생 완전해질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불완전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불완전한 상태에서 양육을 할 가능성이 더 크다.

수많은 고행과 수행을 거쳐서 성인이 되는데

우리는 우리의 온 삶을 집중하여 고행과 수행을 할 여력도 없고,

고행과 수행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성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적합한 수행의 수준 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런 하루하루의 경험들을 통해 우리가 성장할 기회가 계속해서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성장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는 상대들에 대해서 더 배려하고 존중하게 될 때,

그제야 비로소 나도 가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꿈꾸었던 막연한 36살의 모습은 분명 아니다

난 아이도 없고, 정규직도 아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연애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나의 가정을 꿈꾼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와의 가정을 꿈꾼다.

그런 파트너를 만나기 위해서 나 역시 부단히 나의 삶에 대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결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니까, 언젠가 가정을 이루면

 -제도혼의 방식이건, 사실혼의 방법이건- 지금의 생각들이 또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연애의 목적이 무엇인지,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떠한 형태가 적합한지 알 수 없다.

그저 각자의 삶의 목적과 각자에게 적합한 형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의 목적에 따라 나는 나에게 적합한 형태로 사랑하고, 가정을 이룰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특별한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내가 가정도 직업도 없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원래 특별한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우리는 무엇인가가 엄청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크고 작은 결정을 하며 매우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 삶이 변화하고 있을 것이다.


인생은 드라마틱하게 변화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루하루 나만의 가치관을 잘 세워간다면

어느 순간 크게 용기 내지 않아도 내 가정을 등지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매일매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이 삶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가?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 인생의 과업은 무엇인가?

당신은 그 과업들은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고 싶은가?

그 과업을 이루기 위해 당신이 먼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F of OUTRO

나는 이것들에 대한 나만의 방법을 찾기 위해 다시 고민을 시작하고자 한다.


답은 없다.

각자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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