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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Sep 03. 2021

단상 #701 반려식물이 나를 위로했다

오늘 아침 화분의 잎을 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작년 11월 휴업하고 사업장을 정리한 해랑장에서 함께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금전수.

내가 마음이 망가져가면서 해랑장 나무들은 망가져갔고, 결국 살아남은 친구들은 몇 되지 않았다. 겨우 겨우 살아남은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면서 해랑장은 정리가 되었다. 처음 집에 와서 새로운 화분에 옮겨 심으면서 아이들이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스투키는 잘 살아남았는데, 금전수는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쓰러졌다. 오로지 딱 잎이 세 개 남은 한 줄기만 겨우 살아남았다.


뿌리도 튼튼하지 못하고 줄기도 튼튼하지 못했던 그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시기에 맞춰 물을 주는 일과 볕이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을 놓아두는 일, 그리고 그 아이가 바로 서 있을 수 있도록 나무젓가락을 화분에 꽂아주는 것뿐이었다.


그 아이는 바람이 불면 쓰러졌고, 그때마다 나는 다시 나무젓가락에 그 줄기를 기대어 줄 뿐이었다.


그 아이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지 화분의 흙을 파 볼 수 없었고, 빛이 적당한지 물은 적당한지 금전수는 나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금전수는 그저 잎의 색깔과 줄기의 색깔로만 자신의 상태를 알려줬고, 나는 금전수의 언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잎의 끝이 노래지면 빛이 많아서인 건지 물이 많아서인 건지 알지 못하는 식물에는 문외한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었다. 오전 시간 친구와의 통화 중에 문득 화분을 바라보았는데 금전수가 나무젓가락에 기대어 있지 않고 잘 버티고 서 있음을 발견했다. 여전히 잎은 세 장뿐이었는데, 줄기의 색깔이 짙어져 있었다. 잎의 색깔도 진한 초록을 띄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금전수의 줄기를 엄지와 검지로 살짝 잡아보았다. 줄기가 단단해져 있었다. 나무젓가락이 필요 없이 스스로 서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줄기가 단단해진 것이었다. 아마도 그 줄기를 잡아줄 만큼 뿌리도 내렸겠다.. 싶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새 순이 나지 않는 금전수는 새 잎을 내기보다는 스스로 단단하게 자리잡기 위해 뿌리내리기와 줄기를 단단하게 하는 데에 온 힘을 다했던 것이다. 자라지 않아서 걱정했고, 자라지 않아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금전수는 그 작은 화분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서 성장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에 온 힘을 다했던 것이다.


단단해진 금전수를 보고 눈물이 났던 것은 

아마도 내 모습이 대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랑장을 그만두기 1년 전부터 나는 번아웃으로 내가 좋아하는 문화 예술 관련된 일을 멈추고 있었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고,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는가에 대한 의심도 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을까? 이게 잘하는 건 맞을까? 내가 좋아하는 건 맞을까? 앞으로 계속해야 할까? 등등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이렇게 저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나는 무력했다. 살면서 쉬어본 적이 없는 나는 쉬면서도 늘 불안해했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덕분에 마음에 이어서 몸까지 아팠다.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 또 무엇이 좋아질지 모른 채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몰려왔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새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는 날도 있었고,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날도 많았다. 만나도 동네 친구들을 겨우 만났고, 어떠한 행사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지쳐 쓰러져 잠을 자야 했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났다. 조금씩 마음이 괜찮아졌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힘겹게 사람을 만나면서도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여전히 내가 문화예술, 나찾기 등을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 일이 하고 싶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돈이 있건 없건 내가 진짜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버티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미학, 철학, 역사책을 읽으면서 내가 모르던 지식들도 알게 되었고, 그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예술과 나찾기와 어떻게 연계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저 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모든 시간들 속에서 나는 흔들리는 나 자신이 쓰러지지 않게 나의 뿌리와 줄기를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했던 것이다. 성장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성장하기 위해서 흔들리는 나의 뿌리와 줄기의 단단함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흔들리겠지.. 

바람에도 흔들리고 지나가는 사람의 손길에도,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심지어 나를 돌보기 위한 물과 손길에도 나는 쉽게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흔들림에도 나는 나의 뿌리를 단단하게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다. 혹은 단단해진 뿌리로 흔들리는 나를 꽉 붙잡고 있겠지. 그 순간에 외형적인 성장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형적으로 성장해야 할 시기와 나의 뿌리와 기둥을 단단하게 해야 할 시기가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나는 살아있을 것이다. 그 어떤 순간에도 나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외적인 성장이건 내적인 성장이건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해랑장을 정리할 때 새 순이 난 해랑장의 식물들이 잘 살아주기를 바랐다. 해랑장에 대한 마무리와 시작된  새로운 생명이 나의 일이 온전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고 표지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바랐던 것은 아마도 나의 일도 멈추지 않기를 바랐던 나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어떤 것은 새순을 내며 무성해지고 있고, 어떤 것은 뿌리와 줄기에 힘을 얻어가고 있다. 그러니 나도 그 시간 동안 나름의 성장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침에 집에 있는 나무들을 보고 느낀 것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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