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영국적인 것은 이미 세계적인 것
어떤 이에게는 줄거리를 모르는 뮤지컬이었고, 어떤 이에겐 공연예술의 향연이었다. 최근 논란 속 개최된 동경 하계 올림픽 개막식의 모습에 바로 전 리오올림픽 보다 더 비교 된 것이 런던올림픽이다.
나는 영국에서 이 런던올림픽을 어떻게 기억하며, 영국인들에게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한 영국 저널리스트는 가장 ‘좌파적인 올림픽 개막식이었다” 라고 보도했다. 나에게는 영국인이 좋아하는 자기 비하적인 유머와 자부심이 어우러지는 장엄한 파티로 보였다. 그러나 휘황찬란한 마당놀이 속에 아직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 대한 집착과 문화 외교의 결정체가 숨쉬고 있었다.
이 글은 대놓고 '자랑질'을 하는 - 중국의 4대 발명으로 끌고나간 베이징 개막식과 다르게, 예산은 10분의 1도 안되지만, 고차원적인 자랑질을 했던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숨겨진 뜻을 풀어본다.
개막식은 대니보일 감독과 BBC가 공동 제작한 영상으로 시작한다. 팅커벨 처럼 춤추듯 팔랑거리는 카메라 렌즈는 템스 강 상류 글로스토셔부터 빅벤을 지나 런던올림픽이 개최되는 동쪽으로 날아가면서 영국적인 건축물과 운동 (크리켓, 럭비 등 영국에서 시작한 운동)을 즐기는 장면과 전원적인 풍경을 섞어서 담아간다. ‘럭비를 올림픽 종목으로 밀고 있다는 것을 너무 대놓고 선전하는 거 아닌가?라는 위구심을 떨쳐 내기도 전, 귀에 익은 영국 드라마 ‘이스트엔더스 (Eastenders, 영국의 ‘전원일기’로서 런던 동쪽에 정착한 서민들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 배경 음악 및 펑크록 그룹 섹스 피스톨스 등의 비트는 영화의 프롤로그처럼 세계인의 이목을 중심시켰다.
개막식이 펼쳐진 시간, 나는 작가 4명과 함께 카드를 두고 있었다. 사진작가 한 명, 설치 작가 2명, 기획자 2명. 개막식은 나를 카드를 짚어 치고 화면 바로 앞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개막식 시나리오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었다.
“거위들이랑 양들이 대거 동쪽으로 갔다” 라는 신문 기사 밖에 읽은 게 없었다. 거대한 예산을 대놓고 자랑하던 베이징 올림픽과 비교될 런던 올림픽이기에, 그리고 일찍이 동원도딘 거위들과 양들에 대한 보도로 인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정반대의 겸손한 작은 마을의 이미지에 집중되리라는 추측으로 과소평가 되었다, 게다가 엑션, 컬트, 호러, 불록벗스터 등 영화 장르를 자유롭게 넙나드는 대니 보일의 연출이 어떤 결과물을 낳을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2009년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바 있다).
모두를 위한 행사 This is for Everyone
동화와 같은 농장 마을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양떼들과 거위들이 쫓겨나면서 나무가 뽑히고, 잔디밭이 거둬진다. 영국의 철도와 선박 설계자 이점바드 브루넬로 변장한 배우가 등장한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 중 한 구절을 읽는다.
“두려워하지 마라. 영국이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하리라!”
Be not be feared!
I cried to dream again!
급격한 산업혁명의 시대.
거대한 공장 기둥이 땅 위로 솟아 올라온다.
1천 명의 드러머가 쉴 새 없이 기계화되는 세계에 대한 공포감을 표현함과 동시에 격정의 시대가 전개된다. 여성투표권운동, 이민정책, 그리고 민주화까지.
1차 세계대전 전몰자를 상징하는 붉은 양귀비꽃이 비춰 졌을때, 조명이 어두워지고 한줄기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무고히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묵념이 스타디옴을 잠시 숙연함으로 잠재운다. 그러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음악과 화려한 의상의 댄서들! 비틀스가 등장한 1960년대를 배경으로 전후 재건을 위해 이민정책을 상징하는 서인도제도 근로자들, 그리고 그들의 등이 휘어지는 노동과 다양해지는 인종 구성을 상징하는 불타는 용광로.. 그 속에 솟아오르는 새로운 부를 키우는 베이비붐 세대와 펑크 세대. BBC의 사회자가 ‘정돈된 혼란 (Organised Chaos)’이라고 표현했던 개막식의 용광로, 그 속에서 담금질되는 거대한 금빛 원들
그 용광로의 원들이 솟아오르면서
동서남북에서 네 개의 원과 합쳐지고
다섯 대륙을 상징하는 오륜마크가 탄생한다.
관중의 함성이 결정을 이룰 때 바그너적인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올림픽의 개막식 중계는 이 '영화' 속 '작은 영화'의 화면으로 이어진다. 2016년 올림픽 개최국인 브라질 국기를 단 유치원생들이 버킹엄 궁전 바문과 함께 등장한 '007 제임스본드'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인 대니엘 크레이그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함께 런던 시내를 비행한다. 그리고 상공에서 낙하하는 여왕 대역의 유머러스한 공수쇼
"Madame et monsieur (신사숙녀 여러분) "
프랑스어와 영문의 소개로 자크 로게 IOC 의원장이 등장하고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이 왕립해군과 왕립공군에 의해 게양된다,
근엄한 왕립해군의 군복과 대조되는 잠옷을 입은 청각장애인으로 구성된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영국 국가 - 소박하지만 자신감 있는 국가에 대한 긍지를 표현했다. 다음 장면은 정치적 공방의 대상인 영국의 국민보건 서비스에 대한 대한 대니 보일ㅇ의 개인적인 정치적 의견을 보여준다. 풍요한 잔치 속에서도 없는 이들에 대한 경각심일까? 불경기 속에 입지가 좁혀지는 국민보건 서비스의 역할이었을까?
'해리 포터'의 저자 조앤 K. 롤링이 읽는 '피터팬'의 구절이 스타디움을 매울 때 영국의 그레이트 오먼드 스트리트 아동병원의 백 명의 실재 간호사들이 누워 있는 아이들의 침대를 돌보고, 아이들은 악몽을 꾼다.
근데 왜 하필이면 악몽일까?
그에 대한 급 반전을 기대하시라.
문화 역삿상 수억 명의 아이들의 상상 속에 각인된 영국 문학계의 악당들이 등장한다.
영화 '치티치티뱅뱅'의 차일드 캐처 (Child Catcher)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붉은 여왕에서부터 최근 아강의 대마왕 '해리포터'의 볼트모트의 등장.. 이 때 이들을 물리치는 것은 하늘에서 우산을 들고 떨어지는 수십 명의 메리 포핀스!
메리 포핀스는 간호사이며 수호천사였던 것이다.
대니 보일은 이 수많은 암시와 암호 속에 전 세계의 많은 관객들에게 영국, 더 나아가 유럽의 무놔적 유산과 정치적 근대사를 화두를 던진다. 그는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다 이해를 못해도 크게 상관없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보편적 인문 가치 (유머, 문화, 상쌍, 그리고 열정)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제임스 본드, 영국 왕조그 미스터 빈을 등장시키는 유머, 그러나 그 밋소 속에 내제된 긴장감.
세계적인 명성의 지휘자 싸이먼 레틀 경이 불의 마차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때 미스터 빈의 등장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속, 체리엇 오브 파어이가 가진 의미와 영국 영화계에 대한 경의가 표현된 것 처럼 말이다.
공연은 비틀즈, 게라쥐 음악, 퀸, 프로디쥐, 랩퍼 디즈 레스칼에 이르기지를 라이브 음악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대니 보일은 전 세계의 이목이 주목되는 최대의 축제를 빌미로 개최국의 국가 브랜드를 조용하지만 자신 있게 각인 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역대 올림픽의 개막식과는 판이ㅣ하게 다른 서사법을 선사한다. 영국의 복잡한 대립 보다는 서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계급 구조로서 그대로 담은 솔직함에 불편함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를 위한 행사"라는 거대한 문구는 대니 보일이 가장 하고 싶던 이야기를 담았다.
산업혁명 후 부(富)의 선두에 섰다가 포스트 현대 사회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국.
그러한 긴장감을 표현함과 동시에, 창조산업과 문화적 고부가가치 영역 속에 이젠 문화외교의 절대강국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영국인들의 고집스러운 자긍심. 영국적인 유머와 런던 시가지와 같은 정돈된 혼란함이 버무려지는 미학적 스토리텔링은 다시 한 번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애초부터 개막식이 "베이징보다 커질 수 업사"라고 잘라 말했던 대니 보일은 어쩌면 물질적인 규모의 공세에 맞서 그 어떠한 역대 행사보다 올림픽 정신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개막 행싸는 요란한 쇼 속에 서구 유럽이 지향했던 가치, 그 과정 속에서 불거졌던 갈등들, 그리고 이들이 앞으로 변화하는 도전 속에 어떻게 나갈 것인가에 대한 더 큰 질문을 던졌다. 그 해답은 곧 사회 통합, 창의력, 긍정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태권도 격파 시범이 전 세계에 한국적인 정신을 알렸던 순간에서 지금의 BTS 까지 많이 변화했다. 우리가 이제 생각할 것은, 영국이 이번 개막식에서 보여준 또 다른 감동처럼 우리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지가 아닐까?
이미 수많은 영국적인 것들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됐음을 보여주는 자부심.
영국에 사는 20년 동안 지난 2-3년 만큼 한국이 '힙'한적은 없었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구슬과 딱지치기를, 깍뚜기, 깐부를 설명하는 나를 보고, 기획자로서의 나의 중심을 생각하게 된다.
보수당 정권 하에서 좌파 연출가의 자유로운 작품 세계를 알리게 해주는 성숙한 자심감.
런던 올림픽의 화려한 개막식은 단순한 쇼가 아니었다.
김승민 큐레이터 (슬리퍼스써밋 & 이스카이 아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