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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노 Oct 28. 2023

왜 흰 띠 풀이 조짐 역할을 할까?

주역에 나오는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 12

띠 풀은 거칠고 질겨서 지붕을 덮는 데 쓰인다.

띳집은 띠로 지붕을 이은 집으로 

누추한 거처를 말한다.

우리네 식으로는 볏짚으로 이은 초가집이랄까?      


띳집의 지붕은 오래되면 

누렇던 색깔이 흰색으로 변한다. 


흰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질기던 원래 모습은 사라지고 

빗물과 바람, 햇볕 등의 영향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삭아서 부드럽게 변한다.     


주역(28-1)에서는 왜 흰색 띠 풀을 깔개용으로 쓸까?     


초육 씨깔개용으로 흰 띠 풀을 사용하면 

허물이 없군요.

[초육(初六), 자용백모(藉用白茅무구(无咎)]”     


흰색 띠 풀을 깔개로 사용한다는 의미는

누추한 집에서 누울 자리용으로 

지붕을 이을 때 새로 된 누런 띠 풀이 아니고 

걷어낸 지붕 즉 색이 바랜 흰색 띠 풀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띳집의 지붕은 시간이 지날수록 

삭아 문드러지므로 

적당한 시기에 이를 누런 새 띠 풀로 

갈아주어야 한다.      


이때 오래되어서 흰색으로 변한 띠 풀을 

누런 새 띠 풀로 갈아줄 때 

삭아 부드러운 기존 띠 풀을 벗겨내어 

자리용 깔개로 쓴다.      


지붕 위에 있는 흰색으로 변한 띠 풀은 

갈아 주어야 할 때를 놓치면 

비가 새서 용마루나 기둥이 썩어 

집은 서서히 무너진다.     


흰색 띠 풀은 언제 갈아주어야 할까?     


띳집 지붕 위를 항시 관찰하는 사람은 드물다. 

언제 보아도 지붕은 늘 그 모양이니

잘못되리라는 생각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지낸다.     


마치 초육이란 소녀가 사는 모습과 같다. 

소녀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체제하에서 

위에서 하라면 하는 식으로 

주체성 없는 생활을 한다.     


주역은 왜 그 소녀에게 자리 깔개용으로 

하얀 띠 풀을 권할까?     


하얀 띠 풀은 처음에는 부드러워 

자리 깔개용으로 사용하기에 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깔개용으로 쓴 흰 띠 풀은 

곧 삭아서 문드러지므로 

또 다른 흰색 띠 풀을 구해 

바꿔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흰색 띠 풀이 

견디는 시간을 고려해서 

적당한 때에 깔개용 흰 띠 풀을 교체해주어야 한다.     


여기서 흰색 띠 풀은 왜 조짐 역할을 할까?     


흰색 띠 풀은 지붕 위에서 

웬만큼 견디어 온 띠 풀이다. 

흰색 띠 풀은 이미 삭기 시작했으므로 

견딜 날이 그리 길지는 않다.      


이때는 지붕을 조심스럽게 관찰하여 

누런 새 띠 풀로 갈아주어야 한다.


갈아주어야 할 때를 아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며 

현명한 사람은 비가 샐 조짐을 알아차린다.      


그런 비가 샐 조짐을 누가 알아차려야 하나?


초육이란 소녀이다. 

대과 나라의 경우 소녀가 지금 사는 세상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겸손의 가치만을 내세우며 

나라가 썩어 문드러질지 관심이 없다.      


그러면 위 이웃 세상이라도 

곧게 살아가면 좋을 텐데?

거기는 희희낙락 기뻐 날뛰는 분위기로 

내일 걱정을 안 하는 한마디로 철없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주역은 소녀에게 

중심을 잡고 지붕이 새서 위험한지

알아차리는 조짐 역할을 하라는 뜻이다.      


흰색 띠 풀을 깔개로 이용하면서 

비가 샐 조짐이 있는가, 

지붕을 갈아주어야 할 때는 언제인가, 

조심스럽게 매일매일을 체크하면서.      


왜 소녀에게 그런 벅찬 짐을 지게 할까?     


소녀는 부드럽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사람이 부드러운 것의 성질을 잘 안다. 

부드러운 것은 쉽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무너지기 전에 부드러운 사람은 

자기가 살 방도를 구한다. 


즉 소녀는 흰색 띠 풀이 부드러워  

곧 문드러질 때가 왔음을 가장 잘 안다.      


흰색 띠 풀은 부드러운 것을 은유했다.

부드러운 것은 다루기 좋다.

마치 어린 소녀처럼.

그러나 마냥 부드럽다고 함부로 대하면 큰일이 난다.      


왜 그럴까?

부드럽지만 속에서는 차가운 얼음이 있다.

그래서 주역(2-1)에서는 

‘서리를 밟으면 딱딱한 얼음이 있다’라고 말한다.      


얼음?

부드러운 모습이 한계에 닥치면, 

즉 서로 부드러움 속에 같이 공존해야 하는데 

만약 공존에 관한 인내심이 극에 다다르면,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무서운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서리를 밟을 때 얼음이 그 안에 있음을 알고

부드러운 모습을 부드럽게 대하는 

배려가 따라야 한다. 

특히 앳된 소녀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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