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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파노 Jan 28. 2024

‘누런 치마’는 무엇을 은유했을까?

주역에 나오는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 21

주역 2-5에는 이런 글귀가 보인다. 

육오씨누런 치마를 입으면 

으뜸으로 길합니다

[육오(六五황상(黃裳원길(元吉)].”

     

황상(黃裳: 누런 치마)은 무슨 뜻일까?      


어떤 학자는 황색은 중앙을 뜻하며 

상(裳)은 자기를 숨긴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황상(黃裳)은 

‘최고 권력자는 중앙에서 자기를 노출하지 않고 

권위를 지킨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은유의 참뜻을 헤아려 해석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주역은 원래 일반 민중들의 애환을 

해결해 주는 용도로 쓰였다. 

그러므로 민중들이 하소연하는 문제들을 

풀어주려면 쉽게 기술해야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다.     


그런 논지를 따르면 

2 괘는 곤(坤) 괘로 땅 즉 흙을 의미한다.

황(黃)은 흙의 색깔이다. 

흙의 색깔은 누렇다. 

상(裳)은 ‘아랫도리옷, 집에서 입는 옷, 치마’를 뜻한다.      


의상(衣裳)이라 할 때 

의(衣)는 웃옷으로 

주로 대외 과시용으로 신분 등을 나타내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을 말한다.      


상(裳)은 아랫도리옷을 말하며 

주로 낮에 일하는 용으로 입는 

일복 또는 평상복을 말한다.     


그러면 황상(黃裳)은 

‘누런 치마를 입었다.’이다. 

이 뜻은 낮에 일복으로 입고 

흙과 더불어 생활한다는 뜻이다. 

즉 논농사, 밭농사를 경작할 때 

누런 치마를 입고 일한다는 뜻이다.      


왜 주역은 최고 권력자 육오에게 

농사를 직접 경작하는 등 

흙에 뒹굴면서 일하라고 하는가?     


주역은 민중들의 애환을 함께 겪어

그들과 공감하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곤(坤) 나라는 여성 중심의 나라이다.

여성이 정권을 잡을 때는 

약체정권이라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과도하게 공포정치로 기울어진다.     


여리고 무른 여성들은 

공포정치가 싫지만 두려움 때문에 

쥐 죽은 듯이 그냥 받아들인다.     


그런 상황에서 주역은 

최고 권력자에게 넌지시 직면시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이 봐요, 육오 씨, 

(민중을 다스리는 객체로만 여기지 말고)

그들과 같이 누런 치마를 입고 

그들 속으로 깊게 들어가란’ 뜻이다.      


다시 말해 공포정치를 펴 민중을 

두려움에 쩔쩔매게 하지 말고 

그들의 애환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으로 어루만지라는 뜻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민중들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 보라고 상담한들 

그런 조언과 상담이 씨가 먹힐까?      


‘왕은 실수가 없다’란 원칙을 

고수하려는 왕에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그런 이유로 주역은 바로 행동으로 

‘누런 치마를 입으면 으뜸으로 길하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역이 행동으로 상담하는 이유가 있다. 

원래 모든 상담학파는 감정 변화를 중시한다. 

그러나 현실치료학파는 

감정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감정은 쉽게 바뀌므로 

행동보다 변화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현실치료학파는 

행동에 직접 영향을 주는 말에 의미를 둔다.      


예컨대 여기서처럼 

‘누런 치마를 입는다.’라고 

구체적 행위를 얘기할 때 변화되기가 훨씬 쉽다.      


특히 최고 권력자는 모든 것을 

지배의 논리로만 생각하고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논리로서 

생각해 보기란 쉽지 않다.     


획일화된 사고로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할 때는 

반드시 상대방이 겪는 일을 경험해야 한다.     


옛날 모내기 철에 대외 과시용으로 

최고 권력자는 종종 관련 각료들과 

모내기 행사를 했다.      


쇼이지만, 또 쇼라는 것을 

모든 국민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보여주기 같은 쇼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 경험함으로써 농민들의 애환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를 바로 행동으로 보여줄 때

‘변화되고 있군’이라고 

민중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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