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 1
마음의 속내는
마음 한 자락의 꺼풀을 젖히면
드러날 법하지만
젖혀도 젖혀도 보이질 않는다.
‘에이! 속내를 보이기 싫은가 봐?’라며
벗겨지지 않는 마음 보기를
슬그머니 덮어버린다.
‘알아봐야 그렇고 그렇겠지,
더 이상 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라고
체념, 불평, 원망이 섞인 마음을 감춘 체.
마치 이솝 우화의 여우처럼
신 포도 따기를 밀쳐내듯이
연막 치기를 하며.
정작 찌는 햇볕이 옷을 벗기듯
거센 바람에도 꿈쩍도 안 하던 마음은
따스함에 서서히 스멀거린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마음의 속내를 열어주는 딱 그만큼만
그네 마음의 속내가 보인다는 것을.
마음 보기가 어려운 것은
마음의 속내를 열어주기만 기다렸지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인 것을.
마디 2
그녀와 만난 지 며칠 안 되는 일요일이었다.
명동 T 다방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하고 기다렸으나
30분이 지나도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끝이구나’라고 문득문득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기다렸다.
1시간이 넘어 2시간이 다 되어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은 나 자신이 떳떳하기 위해서였다.
불측의 사태로 못 올 수도 있고,
오다가 사고가 났을 수도 있는데
몇 시간 기다린 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중간에 연락을 취할 방도도 없었다.
단 하나의 방법은 저쪽에서 먼저 다방을 114 안내를 통해 알고
다방의 전화를 이용해 나와 연결하는 길이었다.
내가 불측의 사태라고 가정한 것은
그런 수고로움도 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할 것이어서
전화를 기다리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짓거리였다.
3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내가 전부는 아니므로 나를 만나는 사이에
더 좋은 인연도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기회가 있다면 기하지 말라.
언제든 더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도 좋다.
그러나 성급하게 사람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그사이에 내가 싫지 않으면 나를 편안하게 만나라’고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때는 세 번 정도 만나면
더 만나든지 아니면 그만 끝을 내던지
의사결정을 분명히 해야 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솔직히 내 마음은 그네가 좋고
나와 계속 만나면 더할 나위 없지만
사람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러므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맡기자는
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4시간이 다 되어서야 그녀는 왔다.
나는 나름의 사정이 있겠다 싶어 왜 늦었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여태까지도 그 늦은 내막을 물어보지 않았다.
궁금하긴 하다.
알게 된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녀는 지금 이 시각에 내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혹시나 해서 들렸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떨어질 뻔했던 연을 다시 이은 지
6개월 뒤에 우리는 결혼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이 좋다나, 뭐라나’
가슴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소릴 듣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