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그만큼만

by 스테파노


마디 1


마음의 속내는

마음 한 자락의 꺼풀을 젖히면

드러날 법하지만

젖혀도 젖혀도 보이질 않는다.


‘에이! 속내를 보이기 싫은가 봐?’라며

벗겨지지 않는 마음 보기를

슬그머니 덮어버린다.


‘알아봐야 그렇고 그렇겠지,

더 이상 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라고

체념, 불평, 원망이 섞인 마음을 감춘 체.


마치 이솝 우화의 여우처럼

신 포도 따기를 밀쳐내듯이

연막 치기를 하며.


정작 찌는 햇볕이 옷을 벗기듯

거센 바람에도 꿈쩍도 안 하던 마음은

따스함에 서서히 스멀거린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마음의 속내를 열어주는 딱 그만큼만

그네 마음의 속내가 보인다는 것을.


마음 보기가 어려운 것은

마음의 속내를 열어주기만 기다렸지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인 것을.


마디 2


그녀와 만난 지 며칠 안 되는 일요일이었다.

명동 T 다방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하고 기다렸으나

30분이 지나도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끝이구나’라고 문득문득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기다렸다.


1시간이 넘어 2시간이 다 되어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은 나 자신이 떳떳하기 위해서였다.


불측의 사태로 못 올 수도 있고,

오다가 사고가 났을 수도 있는데

몇 시간 기다린 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중간에 연락을 취할 방도도 없었다.

단 하나의 방법은 저쪽에서 먼저 다방을 114 안내를 통해 알고

다방의 전화를 이용해 나와 연결하는 길이었다.


내가 불측의 사태라고 가정한 것은

그런 수고로움도 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할 것이어서

전화를 기다리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짓거리였다.


3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내가 전부는 아니므로 나를 만나는 사이에

더 좋은 인연도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런 기회가 있다면 기하지 말라.


언제든 더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도 좋다.

그러나 성급하게 사람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그사이에 내가 싫지 않으면 나를 편안하게 만나라’고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때는 세 번 정도 만나면

더 만나든지 아니면 그만 끝을 내던지

의사결정을 분명히 해야 하는

그런 분위기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솔직히 내 마음은 그네가 좋고

나와 계속 만나면 더할 나위 없지만

사람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러므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맡기자는

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4시간이 다 되어서야 그녀는 왔다.

나는 나름의 사정이 있겠다 싶어 왜 늦었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여태까지도 그 늦은 내막을 물어보지 않았다.

궁금하긴 하다.

알게 된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녀는 지금 이 시각에 내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혹시나 해서 들렸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떨어질 뻔했던 연을 다시 이은 지

6개월 뒤에 우리는 결혼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이 좋다나, 뭐라나’

가슴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소릴 듣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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